[기사수정 : 2월 24일 오후 1시 45분]
K-시리즈로 세계가 들썩인다. 일찍이 반도체 시장과 스마트폰과 배터리 등의 영역에서 한국 IT기업이 두각을 드러냈고, K-POP(케이팝)을 비롯 K-Beauty(케이뷰티), K-Food (케이푸드) 등 소프트파워 부흥과 관련이 있는 문화상품의 비상도 있었다. 그리고 근자에는 'K-방산'의 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를 상대로 국산전투기를 수출하고 있고, 이집트 및 호주를 대상으로도 전차 등 대규모 수주를 달성했다. 쇠퇴하는 제조업으로 여겨졌던 조선분야에서도 혁혁한 성과를 거두는 등 코로나로 전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서도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불과 70여년 전 참혹했던 전쟁으로 인해 전국이 폐허가 되었던 나라, 20여년 전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던 나라 대한민국이 역사상 유래가 없는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여 이렇듯 다방면에 걸쳐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대한민국의 저력에 놀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0년 전 조국을 떠나 소위 인건비가 싼 후진국의 '외국인근로자'로 일본에 건너온 필자는 이렇듯 많은 방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공을 이루어낸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참으로 자랑스럽다.
일본에서 몸소 느끼는 '한국의 비상'
근자에 들어 일본정부가 여러 분야에 있어서 한국정부에 대해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걸어오는 것을 보면, 저들이 우리의 눈부신 발전을 보며 대한민국 경제의 발전으로 인해 자국 경제가 입을 타격에 대해 위기감을 품고 있음을 반증하는 태도로 보이기까지 한다. 일본 신문지상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시게 활약하는 한국을 부러워하는 뉴스가 연일 이어지고, 일본의 식자들은 일본정부와 기업들을 향해 "한국에도 뒤처지는 일본"이라며 경종을 울리고 있다.
한편 한일간의 외교관계가 역대급 최악인 지금 상황에서도 일본의 안방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기생충>, <사랑의 불시착>, <오징어게임>, <이태원클래스> 등 수많은 한국영화·드라마이다.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BTS(방탄소년단)와 Black Pink(블랙핑크)로 대표되는 K-POP이 한국의 이미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한류문화가 일본의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본의 여론 지형상 대다수 일본 가장들은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뉴스와 SNS 등을 통해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이 집에 돌아오면 세상이 달라진다. 부인은 한류드라마에, 자녀들은 K-POP에 푹 빠져 있는 상황을 접해야 한다. 이에 "한국이 뭐가 그리 좋으냐"며 핀잔을 날리게 되는데, 이로 인해 가정 내에서 가장과 부인·자녀간에 '한국관'에 대한 의견대립이 일어나고 결국 가장이 고립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나라 밖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모습은 참으로 자랑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깝게도 외국인들의 시선이 아닌 한국 국민으로서 접하는 조국의 상황은 정말 한국이 외국의 부러움을 살만큼 잘 사는 나라인가, 선진국이 맞는가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한국 콘텐츠 비상의 원인에 대한 또 다른 가설 하나
요즘 들어 일본인들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세계무대와 거리가 있어 보이던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느닷없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게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이다.
필자도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았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관련 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특히 필자가 거주하는 일본의 경우에 한해서 이야기하자면 김대중 대통령 시절 <겨울연가>(2002.1)로 시작해서 한때 일본의 연예계를 주름잡았으니 일본에 대한 김 대통령의 문화개방 정책 및 각종 예능산업 진흥 정책 덕분이 아닐까라는 모법 답안을 생각하다가, 문득 무릎을 칠만한 답이 떠올랐다.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가 세계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그만큼 국내시장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인데, 특히 한국인의 삶 그 자체가 영화보다 더 영화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일상이 너무 드라마틱해서 웬만큼 재미있는 스토리가 아니면 한국에선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이니, 그런 격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작품이니까 세계시장에서도 인기를 끄는 것 아닐까라는 답이 떠올라 혼자 쓴 웃음을 지어본다.
실제로 검찰권력을 다룬 <더 킹>(2017)이라는 영화를 보면 기득권을 지키려 애를 쓰는 지금의 대한민국 검찰의 모습이 떠오르고, <내부자>(2015)라는 영화를 보면 정치권력, 언론권력, 사법권력, 재벌권력이 똘똘 뭉쳐서 어떤 방식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는지 알게 됨과 동시에 실제 있었던 어느 '여배우의 죽음'을 둘러싼 스캔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또한 <아수라>(2016)라는 영화를 보면 부동산 사업을 둘러싼 정계, 관계, 재계 권력들의 부패비리가 등장하는데, 근자에 벌어지는 성남 대장동의 개발사업을 둘러싼 부패비리 스캔들이 떠오른다. 작가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 아니건만 현실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일들이 일상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니 영화를 보는 안목이 높아질 것이고 대본을 쓰는 분들의 능력도 높아지리라 생각이 든다. 그러니 "이런 이유로 외국의 영화계가 웬만한 스토리와 작품성으로는 한국영화를 따라올 수가 없는 것 아닐까요?"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한없이 자괴감이 든다.
우리나라가 여러 분야의 물질적 기준에서 풍요로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국민 모두가 부유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빈부의 격차는 심각해졌고 고착화되었으며, 권력과 금력의 세습은 심각한 사회의 균열과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참으로 가슴이 아파온다.
돈이 되는 일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재벌들과 입으로는 언론자유를 부르짖으면서도 정확한 진실을 추구하고 알려야 할 사명을 도외시하고 직접 정치에 뛰어드는 대한민국의 언론들, 국민들 앞에서는 민주주의를 외치지만 본인들의 정치적 이권을 위해 신념도 신조도 없이 권력을 따라 움직이며 권력투쟁을 위해 국민간 갈등을 자양분으로 삼는 정치철새들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을까라는 참담한 생각마저 든다.
갈등, 갈등, 갈등
우리나라는 '갈등 공화국'이라고 이야기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물리적으로는 남북의 갈등, 영남과 호남의 갈등, 또한 정치적으로는 보수와 진보세력의 갈등, 경제적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의 갈등,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갈등이 있으며, 거기에 더해 종교집단간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과 남녀간의 갈등 등 사회전반에 걸친 갈등이 치유불가능한 수준에 다다른 듯하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더욱 더 성장할 역량을 가지고 있는듯 보이고 실제 그러한 객관적 수치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지만, 이러한 갈등 요소가 우리나라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라는 생각은 필자만의 고민은 아닌 듯싶다. 이러한 갈등 요소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성장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자명하다. 정치는 이러한 갈등을 치유하고 해소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아야 할 터이지만, 작금의 상황은 정치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갈등에 기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코앞에 와 있다.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살아가며 조국의 미래를 근심하는 재외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소망이 있다. 부디 이번 대선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눈앞의 이익만 보지 말고, 네편 내편 가르는 진영논리에 빠지지 말고, 대선후보의 역량을 꼼꼼히 따져 진정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지도자를 선택하는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사)돌바내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를 내다본다"라는 모토로 출발한 진보정치의 플랫폼으로 정책생산과 입법활동, 정치활동을 하는 국회등록 사단법인이다. 이에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 내셔날 어젠다(국정과제) 형성에 일조하고자 매월 격주 정책칼럼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