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신혼예찬>에서 독자들이 가장 좋아해 준 꼭지는 '코딱지'였다. 신혼 초, 남편이 침대에 누운 채 코딱지를 바닥으로 휙 던지는 걸 보고 말았다. 서로에게 잘 보이고 싶던 신혼 때라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꾹 삼키고 있을 성격은 또 아니라서, 면전에서 하기 어려운 말을 글로 쓴 게 '코딱지'라는 글이다.
쌓인 먼지를 닦아내기 위해 화장지 갑을 들어 올린 순간, 문제의 물질이 눈에 띄었다. 그 물질은 납작하게 눌린 쥐포와도 같은 모양이었는데, 크기는 쌀알보다 조금 더 크고 빛깔은 노리끼리했으며 자세히 살펴보니 미세한 구멍 같은 것이 군데군데 나있었다. 괜한 호기심에 그것을 집어 앞뒷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냄새도 맡아보고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도 봤다. 처음에는 어떤 냄새를 가진 물질일 수도 있었겠으나 말라비틀어져 수분도 모두 빠져나간 지금은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맛보기를 제외한 오감을 활용하여 관찰한 결과, 나는 그 물질을 '남편의 코딱지'로 결론지었다. - 신혼예찬 <코딱지> 중
말로 할 때는 순간의 격양된 감정이 큰 목소리로 나오거나 자존심을 세우다 덩달아 높아지는 어조 때문에 의도보다 과장되게 표현되기가 쉽다.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글은 다르다. 내 감정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글을 읽을 상대방의 기분도 생각하면서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게 된다. 글을 쓰면서 모른 척 외면하던 내 잘못이 드러나 감정이 저절로 정리될 때도 있다.
남편과는 연애 때부터 교환일기장을 썼다. 어색해서 말로는 어려운 애정표현을 하거나 내게 해줬으면 하는 걸 넌지시 전하기에 그만한 수단이 없었다. 특히 서운한 게 있을 때 얼굴 붉히지 않고 표현할 수 있어서 좋았다.
결혼 후 교환일기장은 더 이상 쓰지 않지만 브런치와 블로그가 그 역할을 일부 대신하고 있다. 남편은 내 글의 주 독자다. 남편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쓴 글을 보고는 내게 묻는다.
"이거 내 얘기 같은데?"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이미 글에 쏟아냈기 때문에 내 마음은 처음보다 풀려 있고, 그걸 읽은 남편은 내 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응한다. 글은 소중한 사람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아끼면서 내 마음을 전하는 효과적인 도구다.
글에는 힘이 있다. 신혼 초 시댁에서 명절을 보낸 후 적잖은 실망을 했다. 경상도 집안의 장남이신 시아버지의 맏며느리로 참여한 명절 풍경은 옛날 드라마에서 본 딱 그 모습이었다. 시댁에 머무르는 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마음을 글로 썼고, 그 글이 실린 책을 시댁 어르신들이 읽게 되셨다.
결혼 후의 명절에 대해 막연히 걱정하던 때, 누군가로 인해 명절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당연히 시어머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아침부터 다리 한번 펴지 못하시는 시어머님께, 그리고 숙모님께 나는 오히려 동질감을 느꼈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었다. 추석 아침, 말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들 뒤로 상 차리기 편한 복장의 여자들이 있었다. 여자들이 제사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모르는 게 아닌 이상, 함께 팔을 걷고 나서서 각자의 몫은 하는 것이 남자들의 마땅한 도리가 아닐까. 협력해서 얼른 음식 준비를 마치고 저녁시간에는 편한 분위기에서 안부를 나눌 여유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면, 결혼 후에 명절이 싫어졌다는 유부녀들의 마음가짐도 달라지지 않을까?
- 신혼예찬 <어머님, 왜 저희만 바쁘죠?> 중
내가 글쓰는 며느리가 아니었다면 시부모님은 끝까지 모르셨을 거다. 어른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문화니까. 분위기를 망가뜨리기 싫어서, 혹은 나쁜 며느리로 보일까 봐 젊은 며느리는 속마음을 말해주지 않으니까.
그렇게 글이 된 속마음이 시부모님께 전달되고 몇 달 후, 명절이 달라졌다. 아버님이 손에 밀가루를 묻히기 시작하셨고 "남자는 빠져라. 뭐하노?" 하시던 작은아버님도 한 자리를 차지하셨다. 온 가족이 함께 준비한 차례상은 전보다 빨리,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차려졌다.
우리 집 얘기를 쓴 글이지만 다른 집 며느리도 읽고 공감했을지 모른다. 어쩌면 다른 집 시아버지가 내 글을 통해 그 집 며느리의 마음을 읽었을 수도 있다. 어떤 목적을 위해 쓴 글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공감을 얻고 내 편이 한 사람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을 쓸 이유는 충분하다.
글은 손끝으로 내는 목소리. 때로는 말보다 더 솔직하고 힘이 센 목소리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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