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의 3.1명동사건 탄압상은 일제강점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3월 24일 외신회견에서 "3.1사건은 학생데모를 선동겨냥하는 것"이라 매도하고 문교부는 대학총장회의를 열어 학생들을 학내에 유치하고 엄격히 학사관리를 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그런가하면 고등학생이 <3.1선언문>을 소지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두 명을 구속하였다. 일제는 3.1혁명 후 <독립선언서>를 소지하면 무조건 구속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경우 활동이 크게 침체되었다. 사제단의 핵심인사들이 구속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것은 유신권력의 노림수였다. 어느 단체를 막론하고 구심이 무너지면 원심이 작동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속에서도 3.1사건으로 구속된 사제들을 위한 미사가 3월 15일 저녁 명동성당에서 주교 3명과 사제 200여 명, 신자 2,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미사에서 주교회의 의장 윤공희 대주교는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낭독하고,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이 이어졌다.
주교단의 명동 3.1절 기도회사건에 대한 성명
① 3.1절 기도회 사건으로 말미암아 신부 3명이 구속 입건되고 4명이 불구속 입건되었다. 검찰 발표에 의하면 이들은 몇몇 재야 인사 및 개신교 측 목사와 전직 교수 수 명과 함께 정권탈취를 위한 정부 전복을 음모 책동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신부들이 재작년 이래 기도회를 통하여 사회정의와 인권수호를 거듭 제창하면서 정부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취해 왔음을 알고 있으며, 아울러 이런 행동이 그들로서는 크리스찬 신앙과 애국심에 입각한 판단의 발로였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그들이 어떠한 의미로도 현 정부의 전복을 기도한 일은 결코 없었고, 또한 이번 3.1절 기도회에서도 그런 의도는 없었다. 따라서 이 사건에 연루된 신부들이 마치 현 정권의 전복을 모의한 양 발표된 데 대하여 우리는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한다.
② 이 사건이 앞으로 공정한 재판에 의해 다루어질 것을 우리는 정부에 촉구한다. 그것은 입건된 모든 이가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변호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할 것을 뜻한다.
③ 우리는 계속 이 사건의 처리를 주시하면서 관련된 신부들이나 교회뿐 아니라, 정부와 국민 모두를 위해서 하느님 정의의 빛이 내리도록 기도할 것이다. (앞으로 시국 기도회는 1975년 2월 28일자 주교단의 행동 지침을 따라야 한다) (주석 1)
구속 사제들을 위한 미사는 계속되었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뿌려진 씨앗이 세속의 권력이 짓누른다고 쉽게 묻힐 리 없었다. 한국 천주교의 전통은 핍박과 순교의 역사다. 6월 1일과 7일 오후에 명동성당에서 구속 사제를 위한 특별미사가 열렸다.
1일의 미사는 사제 17명의 공동 집전으로 수도자, 신자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헌되었고, 7일에는 지학순 주교의 주제로 전국 사제 60여 명과 수도자, 신자 1,000여 명이 참석하였다.
7월 9일에도 구속 사제들을 위한 특별기도회가 지학순 주교 및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열렸다.
수도자 및 일반 신자 8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기도회에서 지학순 주교는 강론을 통해 "'구속 사제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바로 우리 교회의 고통'이라고 전제하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구원의 등대로 기대되고 있는 교회는 철저한 자기 희생과 고난에 찬 생활의 실천으로 일치,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으로 무장하여 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고 역설하였다.
이날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신자들에게 구속 사제들을 위해 19일부터 27일까지 9일 기도를 바치도록 당부하였다. (주석 2)
유신권력은 천주교사제단을 옥죄고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검찰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3.1구국선언 사건으로는 유죄 확정이 어렵다고 판단, 사제들이 종교의식을 빙자하여 정부 비판을 하고, 다른 곳에서 행한 강론까지 끌어다 덧씌웠다.
정의구현사제단이 7월 5일 발표한 〈교회의 입장에서 본 3.1명동사건〉의 관련 부문이다.
교회의 입장에서 본 3.1명동사건
공소장은 교회 내지 교회활동을 고의적으로 비방 또는 교회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결성하여 미사나 설교 등 종교의식을 방자하여' 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복음 성서와 교회가 가르치는 신앙행위를 모독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공소장은 '은밀한 방법으로 외신을 조정, 종교와 양심의 자유가 압살당하고 있다는 등의 맹랑한 허구사실을 조작하고 있다'고 하여 마치 종교와 양심의 자유가 있는 데도 종교인들이 없다고 사실을 왜곡하여 주장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당국은 김승훈 신부의 3.1절 기념미사 강론과 신현봉 신부의 원주에서의 강론 내용을 문제 삼고 있다. 이같이 강론이나 설교 내용이 문제된 것은 공식적으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의 본 모습을 회복하여 하느님의 영광에로 인도하려 하는 우리의 신앙 실천 활동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려는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주석 3)
주석
1> <한국가톨릭인권운동사(1)>, 354쪽.
2> 앞의 책, 360쪽.
3> <암흑속의 횃불(2)>, 114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