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는 1938년생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청년기를 보냈고, 한국전쟁과 유신독재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백 교수는 1948년 1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19대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대통령을 겪어봤다. 그런 그에게 오는 3월 9일 치러지는 대통령선거는 어떤 의미일까?
이런 저런 역사의 산맥을 거쳐왔기에 이젠 덤덤할 수도 있을 터인데 그는 매일 대선 관련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단다. 1964년 계간지 <창작과비평>을 창간하고, 1974년 출판사 <창작과비평사>를 설립한 그는 '품격있는 참여지성계'를 대표하는 문학평론가이자 사상가인데 "요즘은 주로 오마이TV를 비롯한 열린공감TV, 서울의소리 등 유튜브를 매일 본다"고 했다. 그는 그 이유를 "레거시미디어는 재미가 없기도 하지만, 나름의 간절함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간절함. 절실함.
이 두 단어는 <오마이뉴스> 창간 22주년에 즈음하여 그와 마주한 1시간 20분간의 인터뷰를 꿰뚫는 들보였다. 오마이TV의 <오연호가 묻다>에 생방송으로 출연(2월19일)한 그는 이번 대선은 "더 간절한 쪽이 이긴다"고 전망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회전"
백낙청 교수는 "이번 대통령 선거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회전'이다"라고 했다. 국어사전은 건곤일척을 '운명을 걸고 단판걸이로 승부를 겨룸'이라고 풀이한다.
백 교수는 2017년 대선은 "처음부터 뻔했다"고 했다. "촛불 대항전의 결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에 갑자기 선거가 치러졌고, 이쪽도 준비없이 '어어어' 하는 사이에 정권을 잡았고, 저쪽도 '어어어' 하는 사이에 정권을 뺏겨 버렸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2022년 대선이야말로 "양 세력이 전열을 가다듬고 치르는 최초의 본격적인 선거"라고 본다.
"촛불에 패퇴했던 세력은 그동안의 전열을 가다듬고 이를 갈면서 와신상담해왔지요. 이번에 한 번 더 깨지면 우리는 다 죽는다, 이런 절박한 심경을 가지고 나와 있어요. 그래서 만약 그들이 정권을 재창출한다면, 그간 이어져온 촛불혁명은 거기서 거의 끝난다고 봐야죠. 그래서 촛불혁명이 계속되느냐 아니면 좌절하느냐 하는 건곤일척의 큰 싸움이 이번 대통령선거입니다."
백 교수는 "선거는 더 간절한 쪽이 이기는데, 사실 이번에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당만을 비교하면 국힘쪽이 훨씬 더 간절하다"고 봤다. 그는 그 간절함이 절실해서 "눈에 헛것이 보일 정도가 되었"고 그래서 윤석열 후보가 만들어졌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번에 지면 당이 깨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들은 그간 권력에 붙어서 쭉 살아온 사람들인데, 이번에 지면 희망이 없다는, 간절함이 진짜로 있어요. 너무 간절하다보니까 상식이 있는 국민이라면 도저히 끝까지 밀어줄 수 없는 그런 후보를 내세웠어요. 상식적으로 보면 홍준표씨가 흠결도 덜하고 훨씬 안정감도 있는데, 그래가지고는 못 이기겠다, 간절함이 충족되지 못하니까 눈에 헛것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헛것'을 실드 쳐주는 엘리트 카르텔이 있다"
그런데 백낙청 교수가 "헛것"이라고 부른 윤석열 후보는 한동안 여론조사에서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백 교수는 "한국사회의 엘리트 카르텔이 총동원돼 실드(shield)를 쳐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가 헛것이라고 말한 것은 국힘이 후보를 잘못 골랐다는 뜻인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한동안 여론조사에서 1위를 하고 있으니까) 잘 골라서 이렇게 잘하고 있지 않냐, 그럴 거예요. 지금까지는 그 이가 꽤 기세등등하게 잘 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사회의 기득권 카르텔이 철저히 실드를 쳐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 교수는 이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하는 세력이 "야당인 국민의힘만이 아니"라고 했다.
"미국의 마이클 존스턴이라는 학자는 부패를 여러 가지로 분석했는데 한국은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라고 했어요. 우리 사회에는 곳곳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 세력, 소위 엘리트 카르텔이 있어요. 그들이 지금 총동원되어 나오고 있죠.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만의 촘촘한 결탁관계가 있는데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기들이 편안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아주 전면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언론계도 그렇고 검찰, 법조계, 학계에도 엘리트 카르텔이 있어요."
백 교수는 '헛것'을 실드 쳐주는 일에 "레거시 언론들도 함께하고 있다"면서 "주류언론이 검증을 잘했으면 선거는 벌써 끝났다"고 했다.
"미국의 레거시미디어들, 예컨대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를 보면 엘리트에 속하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건전하고 다른 엘리트를 견제합니다. 만약 우리나라의 주요언론들이 <뉴욕타임스> 같은 기능을 해서 후보 검증을 했더라면, 선거는 벌써 끝났습니다. 이미 승패가 다 끝났다고 봐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백 교수는 대한민국의 언론지형을 분석하면서 "그동안 소위 진보매체로 불리던 것들(<경향신문> <한겨레>를 지칭)을 포함한 레거시 미디어 전체가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로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내놓고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고 있는데" 진보매체는 "기계적 중립성이니 성역 없는 비판이니 하면서 사실상 (기득권 엘리트 카르텔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우리는 국민이 살아있어요"
그러면서도 백낙청 교수는 희망을 말했다. 그 엘리트 카르텔에 저항하는 국민들이 있고, 풀뿌리 언론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국민이 살아있어요. 시민들이 살아있고, 유튜브 등 풀뿌리 언론이 있어요. <오마이뉴스>가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내세운 것도 풀뿌리 언론과의 연대죠. 그런데 엘리트 카르텔은 이 시민과 풀뿌리 언론이 (우리 사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가질만한 영역까지 올라가는 것을 죽기살기로 차단합니다. 완고한 벽이죠. 만약 우리가 그 벽을 뚫고, 엘리트들이 '헛것'에 실드 쳐주는 것을 뚫고, 촛불혁명을 진전시킨다면, 그땐 아마 세상이 많이 달라질 겁니다."
백 교수가 잊혀져가는 촛불을 소환했기 때문일까?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하는 내내 오마이TV의 실시간 댓글 창에는 1초에도 수십 개씩 시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눈이 번쩍 띄인다", "촛불을 잊고 있었네!", "우리가 주인이다!".
백 교수는 지난해 11월 펴낸 책 <근대의 이중과제와 한반도식 나라만들기>(창비)에서 "촛불혁명이 시작된 후로 '주인노릇'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근현대사 속에서 2016~2017년 촛불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재조명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게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 평화적인 시위를 끈질기게 벌이며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자 삶의 주인임을 과시했기 때문"이란다. 백 교수는 그런 점에서 "촛불은 과거지사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중"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힘주어 말했다. "2022년 대선의 주인은 거대 양당도 아니고, 후보들도 아니고, 유권자 시민이다. 촛불이다."
그런 점에서 백 교수는 "2022년 대선은 엘리트 카르텔의 절실함과 촛불시민들의 절실함의 싸움"이라고 본다. 그는 민주당에서 후보로 이재명을 선택하게 된 과정도 "촛불혁명이 여전히 진행중에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이재명 같은 사람이 촛불혁명 이전이라면 어떻게 민주당 후보가 됩니까? 민주당 국회의원 다수와 정부의 각료들이 볼 때는 이재명은 속되게 말해서 완전히 '듣보잡'이죠. 그 사람이 됐다는 것도 촛불 시민들의 기운으로 된 거예요. 이재명 후보의 탄생은 우리가 촛불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촛불혁명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증거의 하나라고 봐야죠."
백 교수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을 보면 그 절실함이 국민의힘에 비해 덜하지만, 촛불시민과 이재명은 절실함이 있다"면서 절실함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가 완강한 기득권 카르텔의 벽을 뚫고 당선이 되려면 그 촛불 시민들의 선한 기운과 그 당당한 기상을 되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못이기죠. 그렇지 않고, 현 정부가 잘못했다고 사과나 자꾸 하고, 이것 저것 해주겠다고만 하면 한계가 있어요. 그렇게 해주는 게 꼭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나에게 몇푼 주면 찍어주겠다는 것과 촛불 시민은 너무나 다른 차원이지 않습니까. 지도자가 그렇게 국민을 쪼잔하게 취급하면 국민들이 쪼잔해져요. 그리니까 좀 크게 놀아야죠. 크게 놀면서도 얼마든지 실용주의자로서의 면목을 보여주는 길이 있다고 봅니다."
백 교수는 "민주당 캠프 일부에서는 지금 촛불 이야기 해봤자 남는 장사가 아니다, 중도를 잡기 위해 괜히 과격한 이미지만 줄 수 있는 촛불 이야기 자꾸 하지 마라,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서 "그런 자세야말로 촛불을 지우려는 기득권 카르텔 세력이 만들어낸 '정권교체 프레임'을 깰 수 없다"고 했다.
"정권교체 프레임을 깨라, 촛불 + 유능이 시대정신"
백낙청 교수는 "촛불과 유능을 연결시키는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는 '유능한 경제대통령'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필요한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촛불을 끌어내야 하지요. 1기 촛불정부(문재인 정부)는 준비없이 들어가서 여러 사람을 실망시켰는데, 2기 촛불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같이 유능한 경제대통령이 필요하다, 이렇게 연결해야죠. 이재명 후보가 전에는 그러지 않다가 최근에는 이 점을 강조하기 시작한 거 같은데 저는 대단히 반갑게 생각합니다."
백 교수는 "보수언론이 여론조사에서 자주 사용하는 '정권교체냐, 정권유지냐'의 프레임은 촛불을 지우는 최고의 수단"이라면서 "이것을 '촛불정신의 계승이냐, 기득권카르텔의 정권 재창출이냐'의 프레임으로 바꾸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3월 9일 선택의 기준'은 "어느 후보가 2기 촛불정부를 이끌기에 가장 적합한가에 있다"고 말했다.
백낙청 교수는 1964년 <창작과비평> 계간지를 창간한 이후 59년간 독자와 교감하며 살아왔다. 매체 베테랑의 눈에 비친 22살 <오마이뉴스>는 어떨까?
"세계언론사에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건, 현재까지 살아있는 매체 중에서는 두 개죠. 국민주신문인 <한겨레>와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내세운 <오마이뉴스>. 창간 22주년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싱싱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더 발전하고, 촛불정신을 함양하는데 큰 기여를 해주기 바랍니다."
백 교수는 '대회전', '전면전', '절실함'을 이야기하면서도 인터뷰 내내 조용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의 책 서문을 읽다가 밑줄 친 이 문장이 떠올랐다.
'느긋한 마음으로 변함없는 희망을 품다.'
덧붙이는 글 | 백낙청 교수 전체 영상인터뷰는 오마이TV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qS7zojlfrTU) 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