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기 해고자 중 한 명인 김진숙 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공장으로 복직한다. 영도조선소 앞에서 복직투쟁에 돌입한 지 600여 일만, HJ중공업(옛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서 해고된 지 37년 만이다.
1986년에서 2022년까지... 긴 터널 끝에 노사 합의서
HJ중공업과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23일 오전 11시 부산 영도구 영도조선소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의 즉각적인 명예회복과 퇴직에 합의하는 서명식을 열었다. 합의서에는 HJ중공업 홍문기 대표이사와 정홍형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 심진호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서명했다. 내용은 김 지도위원이 25일자로 복직하고, 이날 퇴직한다는 것이다. 퇴직과 관련한 모든 사항은 노사협의를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김 지도위원은 21살이던 1981년 여성 용접공으로 입사했고, 1986년 노조 활동을 이유로 징계 해고됐다. 이후 그는 해고 없는 사회를 바라는 노동운동가로, 연설가로 현장을 지켜왔다.
2011년에는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에 반대해 85호 크레인에 올라 306일간 고공농성을 펼쳤다. 그러자 전국의 누리꾼과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을 찾아 김진숙과 연대했다. 이후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갔지만 회사의 반대에 김 지도위원만큼은 복직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과 2020년 두차례에 걸쳐 '김진숙의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와 부산시의회도 각각 복직을 권고하는 결의안을 내놨다.
그런데도 갈등은 오랜 기간 풀리지 않았다. 김 지도위원은 만 60세 정년까지 사태 해결을 바랐다. 2018년부터 암 투병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던 김 지도위원은 2년 전인 2020년 6월 23일 금속노조, 동료들과 함께 복직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싸움을 공식화했다. 건강 악화 상황에서 복직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장기간 출근선전, 농성, 여러 번의 기자회견, 청와대로 가는 도보행진이 이어졌다. 김 지도위원의 도움을 받았던 동료들은 수십 일간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는 중앙노동위원회와 부산지법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사법부 판결을 근거로 김 지도위원이 복직을 끝까지 거부했다. 매각을 거쳐 다시 회사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김 지도위원의 처지는 달라진 게 없었다. 결국 복직 시한도 해를 넘겼다.
김 지도위원의 복직 문제는 20대 대선에서도 소환됐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지난달 영도조선소를 찾아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거듭 촉구했다. 심 후보는 "박근혜씨도 풀려났는데 김진숙 지도위원이 아직 해고 상태라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을 말해주는 게 아니냐"며 "면목이 없다"라고 정치권을 대신해 고개를 숙였다.
이런 상황 속에 노사는 최종 협의를 거쳐 사태의 마침표를 찍었다. 회사는 HJ중공업으로 이름까지 바꾼 상황에서 이번 문제를 해결하고 재도약에 집중해야 한다고 봤다. 노조도 명예로운 복직과 퇴직의 시점을 지금이라고 판단했다.
HJ중공업측은 "법률적 자격 유무를 떠나 (김 지도위원이) 시대적 아픔을 겪었던 것에 안타깝게 생각한다"라며 "인도적 차원에서 합의서에 서명하게 됐다"라고 의미를 밝혔다. 노조도 "600일이 넘는 싸움 끝에 얻어낸 결과이자 더는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합의"라고 반겼다. 노조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김 지도위원의 건강이 매우 안 좋아 복직을 더는 미뤄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최강서 열사가 일했던 곳으로 반드시 돌아가겠다던 김 지도위원은 오는 25일 공장으로 들어가 동료들을 만난다. 노조는 이날 오전 11시 영도조선소 단결의광장에서 복직과 퇴임 행사를 열겠다고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