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37년 만에 명예복직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23일, 국내 영화인들은 자신들의 일인 것처럼 기뻐하며 긴 시간 해고자로 살았던 김 지도위원에게 잇따라 축하를 보냈다.
2011년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85호 크레인에 올라 306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인 김진숙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만든 다큐멘터리 <깔깔깔 희망버스>의 이수정 감독은 "10년 전에 뵙고 멀리서 소식만 들으며 마음을 졸이곤 했는데, 노동자의 권리 찾기를 향한 하나의 매듭을 짓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주신 것 같다"고 했다. <두 개의 문> 김일란 감독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눈물이 난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사측의 정리해고를 막기 위해 300일 동안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인 김진숙의 분투에는 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연대했다.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죽음과 같은 해고를 막기 위해 나선 김진숙의 손을 우리 사회가 맞잡은 것이다.
당시 보수 정권은 온정이 담긴 작은 연대마저 탄압으로 일관했지만 그렇다고 굽힐 사람들이 아니었다. 영화인들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10월 8일 희망버스는 한국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장면이었다. 공교롭게도 희망버스 운행 기간이 부산국제영화제 기간과 겹치면서 영화인들이 별도의 희망버스를 조직했기 때문이다.
당시 보수언론과 부산시는 전국적인 희망버스가 예고되자 부산영화제를 핑계대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여균동 감독은 "부산영화제는 세계 최고의 영화와 영화인들이 모여든다. 한진 김진숙과 크레인 85호는 지금 상영되는 세계최고의 영화다"라며 "세계 영화인들도 보고 싶어 환장할 거다. 영화는 그곳에서 완성된다"고 보수언론과 부산시의 주장을 일축했다.
레드카펫과 희망버스로 김진숙 응원
그해 부산영화제 개막식 레드카펫에서 영화인들은 김진숙 지도위원을 응원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크게 주목받았다. 김꽃비 배우가 한진중공업 작업복을 입은 후 여균동 감독, 김조광수 감독과 함께 85호 크레인 농성과 당시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던 강정마을 지지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를 선보였다.
당시 김진숙 지도위원은 "레드카펫을 밟는 게 개인적으로 대단한 영광인데, 그런 자리에서 노동자들의 작업복을 입는 용기에 대단히 놀랐고, 감독이 입을 줄 알았는데, 배우가 직접 입었다고 해서 더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이틀 뒤 전국에서 희망버스가 모이기로 한 날, 영화인들의 희망버스는 해운대에서 출발했다. 양기환 당시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의 인솔에 따라 정지영 감독과 이준동 대표(현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를 중심으로 김경형 감독, 권칠인 감독, 변영주 감독 등이 참여했다.
'영화인 희망버스' 출발에 앞서 부산 해운대의 한 호텔 앞에 모인 영화인들을 대표해 정지영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담는 도구입니다. 사회적 아픔들에 대한 해원의 마음과 사회적 갈등들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마당입니다. 김진숙씨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가 우리들의 영화와는, 영화제와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더 아프고, 더 감동적인 이 현장을 찾는 영화인들의 생각입니다."
해운대를 출발한 영화인 희망버스는 영도로 향했으나, 영화인 희망버스가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경찰은 희망버스의 한진중공업 접근을 막기로 한 상태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리를 건너 영도에 진입한 순간 경찰이 막아섰다. 차 문을 열게 한 후 직접 버스에 오른 영도경찰서장은 안전을 이유로 들며 "갈 수 없다. 보수단체가 반대 시위를 하고 있어 충돌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영화인들의 항의가 있었으나 경찰은 보내줄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은 차를 돌리라고 했으나, 영화인들은 모두 차에 내렸고 걸어서라도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경찰이 막아 대치가 시작됐다. 몸싸움이 우려되는 상황 속에 양기환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이사장은 "합법적으로 문화인답게 행동하겠다"며 경찰에 이렇게 제안했다.
"말하지 말라고 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고, 숨 쉬지 말라고 하면 숨도 참고 김진숙을 보러 가겠다. 몰려서 가지 말라고 한다면 한 사람씩 거리를 두고 가겠다. 85호 크레인까지 길을 터달라."
외신기자들에게도 관심 사안이었던 영화인 희망버스
당시 영화인 희망버스는 부산영화제를 찾은 외신기자들에게도 관심 사안이었다. 해외의 시선이 쏠린 상태에서 만일 경찰이 무리하게 해산을 시도할 경우 국제적 망신을 살 수도 있었다. 영화인 중엔 당시 부산영화제 심사위원 등의 역할을 맡은 분들도 있었기에 자칫 긴 시간 대치가 이어지면 영화제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계속 막으면 밤샘 농성이라고 하겠다는 각오를 보였고, 일부 영화인들은 골목길로 우회해서 접근하는 길을 택했다. 경찰도 난감해했다. 모든 희망버스를 막고 있었으나 영화인들의 결의가 만만치 않자 고심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결국 '김진숙 지도위원이 농성 중인 크레인 앞에서 전화통화만 하고 올 테니 3명의 대표자(정지영 감독, 이준동 대표, 권칠인 감독)들만이라도 통과시키라'는 영화인들의 요구를 경찰이 받아들였다. 대표자들 외에도 몇몇 영화인들과 촬영을 맡은 이수정 감독이 따라붙었고, 영도경찰서장이 직접 안내했다. 크레인 앞에 다다랐을 때는 우회해서 온 영화인들도 합류했다.
정지영 감독과 이준동 대표는 크레인 앞에서 손을 흔들며 전화통화로 "영화인들도 마음을 같이 하고 있다"고 응원했고,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영화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정지영 감독은 경찰에 사의를 표했고, 경찰 간부들은 정중히 인사했다.
그렇게 행사를 마치고 버스가 출발하려던 찰나, 옆에서 희망버스 반대 시위를 하던 보수단체 사람이 버스에 달려있던 '영화인 희망버스' 펼침막을 떼어 냈다. 감정적인 일종의 화풀이였다.
깃발을 뺏긴 것과 다름없었기에 영화인들도 그냥 떠날 수가 없었다. 버스는 멈춰 섰고, 누군가 이를 되찾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순간 경찰이 쫓아가더니 펼침막을 빼앗아 되돌려주었다. 영화인 희망버스의 완벽한 성공이었다.
리멤버 희망버스 출발
그리고 11년의 흘러 김진숙의 명예 복직이 이뤄지는 25일 오전, 서울에서 마지막 희망버스인 '리멤버 희망버스'가 출발한다. 2011년 희망버스 대표 차장 문정현 신부님 등이 탑승하고 고 백기완 선생님 사진도 모시고 갈 예정이다.
김진숙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연석회의는 "이 버스는 1100만 비정규직과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민중의 오늘을 기억하는 버스이고, 지난 2011부터 11년간 함께 해주셨던 모든 이름 없는 희망버스 승객들을 한 분 한 분 기억하고 모시는 버스"라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좀더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향해 달리는,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잃지 말고자 서로 노력하고 북돋는 버스"라고 밝혔다.
아울러 "김진숙은 자신의 동료들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 다시 여기서 싸우고 있는 평범한 이들의 투쟁에 대해 말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