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대참사였다.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던 공군은 1994년 3월 5일 조근해 참모총장 부부 등 6명의 생명을 졸지에 앗아간 헬기 추락 참사에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42기 졸업식 및 임관식 예행연습 지휘감독 차 용산 헬기장에서 청주를 향해 가던 중이었다. 이 사고로 조 총장과 그의 아내 조인화(당시 48세)씨, 조종사 강성윤(35) 소령, 부조종사 유영재(28) 대위, 전속부관 이상훈(31) 대위, 헬기 승무원 전해술(35) 원사가 유명을 달리했다. 대한민국 국군 창군 이래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현역 대장이 사망하기로는 1984년 제2야전군사령관이던 육군대장 김홍한 장군 이후 2번째다.
UH-60 블랙 호크 사고 헬기는 이날 하오 2시36분쯤 용인군 외사면 백암리 야산 상공을 지날 무렵 꼬리 부분에서 검은색 연기를 뿜으면서 심하게 기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에서 사고 순간을 목격한 김병섭씨는 "나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르르하는 소리가 나 놀라 하늘을 쳐다보니 집채만한 시뻘건 불덩이가 수직으로 떨어지고 있었다"면서 "사고 헬기가 떨어진 뒤 꽝 소리가 들리고 2~3초 뒤 시커먼 연기기둥이 치솟았다"고 증언했다.
불붙은 헬기의 화염이 근처 잡목에 옮아붙으면서 파편도 100m 정도 튀었으나 부근의 가옥이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헬기가 두 동강이 난 상태에서 화염에 싸여 추락했다는 일부 주민들의 주장에 대해 국방부 측은 '추락한 뒤 폭발했다'며 공중폭발을 부인했다.
사고 현장은 여기저기 흩어진 헬기잔해와 불길에 그을린 잡목들이 쓰러져 있는 등 참혹한 모습이었다. 사체 수습에 나선 구조대원들은 불길에 달궈진 헬기 몸체가 식기를 기다렸다가 수습에 나섰다. 헬기 잔해는 산등성이에서 200여m 떨어진 곳까지 날아가는 등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부서졌으며 잔해마다 불길에 그을린 채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화재는 주변 잡목에 옮아붙었으나 반경 10m 가량만을 태우고 때마침 내린 진눈깨비로 곧바로 꺼졌으며 추락한 헬기는 뒤집혀져 있어 구조작업에 나선 군인들이 이를 바로 잡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추락 현장은 해발 80m 정도의 구릉으로 소나무와 잡목이 울창해 주민들의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사고를 목격한 마을 주민 10여 명은 헬기가 추락하는 것을 목격하고 삽과 곡괭이를 들고 구조작업을 위해 현장으로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헬기 추락으로 발생한 불길이 강풍을 타고 번진 데다 오전부터 끼어있던 안개 등으로 접근이 어려워 주민들은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주변 잡목들을 제거하는 작업만을 벌이며 발을 굴렀다.
오후 3시쯤 연락을 받고 백암리에서 출동한 소방차 3대가 현장에 도착, 본격적인 구조에 나섰으나 이미 헬기는 완전히 타버렸고 백암의용소방대원 10명이 조 총장의 부인 등 비교적 온전한 시신 3구를 수습했다. 조 총장을 비롯한 나머지 3명은 추락 당시의 충격으로 심하게 훼손되어 수습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공군사고수습대책위는 조근해 총장 등 6명의 유해를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수도통합병원으로 옮겨 안치했다.
조근해 총장은 공군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정통 '빨간 마후라' 전투기 조종사다. 공사 9기 선두주자로 1993년 5월 참모총장에 임명된 그는 1961년 공군 소위로 임관한 뒤 전투비행단장과 교육사령관, 작전사령관, 국방부 정보본부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조 총장은 한때 한국공군의 주력전투기였던 F15등 3000여 시간의 비행경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장군이 돼서도 수시로 전투기 조종간을 잡기도 했다.
사고 원인은 악화된 기상 상태에서 비행 중 피토관(Pitot Tube, 공기의 힘인 동압을 측정해 속도로 환산하는 장치)의 결빙으로 비정상적 계기 지시에 따라 고도를 급히 올리려다가 꼬리 날개 부분이 파손되며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조근해 총장의 유족들은 대한항공과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 코퍼레이션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원심은 "피고회사들의 계기 결빙 경고장치 미장착으로 조종사가 계기 이상을 알지 못해 사고를 낸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그러나 이 사고의 경우 헬리콥터 자체 결함보다는 계기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조종사의 책임이 더 크다고 판단되는 만큼 피고회사들의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고, 항소심 또한 같은 이유로 상고를 기각했다.
희생자들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서구 등촌동 국군통합병원 영현실에는 김영삼 대통령이 조문한 것을 비롯, 김수환 추기경 등 각계 주요인사와 군 관계인사 400여 명이 조문했다. 최동환 공군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한 장례위원회는 사고희생자들의 장례를 5일 공군장으로 치렀고 조 총장 부부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다른 희생자들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추락한 UH60 헬기의 정식명칭은 'UH60 블랙호크 다목적 헬기'로 최대속도 296㎞(시속)·작전반경 600㎞의 성능을 갖추고 있다. 3명의 승무원 외에 완전무장한 11명의 병력을 수송할 수 있고 105㎜ 곡사포 등 3630㎏의 화물운반 및 M60 기관총,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 등 자체방어를 위한 무장탑재도 가능하다. UH1H 헬기보다 안전도·탑승인원 등 면에서 뛰어나 대장급 지휘관들이 사용하고 있다.
사고헬기는 1991년 제작된 것으로 그해 6월 67억 원을 주고 도입했다. 사고 발생 직후 김영삼 대통령은 당초 진해 해군사관학교 졸업식 참석을 위해 성남공항까지 헬기로 이동, 공군 1호기로 바꿔 탈 예정이었으나 육로로 이동했다. 조 총장 사고 헬기가 대통령 지방행사 시 운용했던 헬기와 같은 기종이었기 때문이다.
조근해 공군참모총장 부부와 함께 사고 헬기에 탔던 장교 3명은 모두 조종특기로 보라매의 꿈을 제대로 펴보기도 전에 순직했고 유일한 하사관인 전해술 원사는 공군이 오랫동안 길러낸 베테랑 정비사여서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조종사 강성윤 소령은 83년 임관한 뒤 헬기만 12년째 조종했으며 울릉도·백령도 등 오지의 환자 구조 활동을 벌인 공로로 1993년 국군의 날 참모총장상을 받기도 했다. 조 총장의 부관 이상훈 대위는 88년 임관한 뒤 F4E 팬텀기 후방석 조종을 해왔다. 이 대위의 부인이 출산을 앞둔 만삭인 것으로 알려져 주위 사람들을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부조종사 유영재 대위는 미혼으로 90년 임관이후 헬기조종을 계속해왔다.
조 총장을 비롯한 순직 장병 5명에게는 수교훈장 광화장(조 총장), 보국훈장 삼일장(강성윤·소령, 이상훈·유영재 대위), 보국훈장 광복장(전해술 원사) 등 훈장이 추서됐으며 조 총장 이외의 4명은 각각 1계급씩 특진됐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