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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하루가 전쟁이다. 

지난 일주일, 아이 어린이집에서는 같은 반 친구들이 하루 걸러 한 명씩, 총 4명이 코로나 확진자가 됐다. 친정 부모님과 아이 아빠가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맡고, 나는 직장에 아이 둘을 데리고 출근하기도 했다. 나는 그나마 주변에 돌봄을 나눌 사람이 있고, 양해 가능한 직장에 다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있을까.

코로나가 강타한 사람들을 매일 만난다.
 
 "노무사님. 재택근무 하는 동안 허가 없이 10분 이상 자리비움 표시를 하면 고과에 반영한다는데, 문제없는 건가요? 회사에 보고한 것과 다른 장소에서 일하면 페널티를 준다네요. 애들도 갈 데가 없어서 애들 보면서 일도 해야 하는데요."

"회사가 적자노선을 폐지하고, 버스기사 인력감축을 한다네요. 정리해고가 싫으면 임금을 절반으로 삭감한다고 합니다. 이미 매표직원들과 영업직은 다 아웃소싱을 했는데... 기사들도 그동안 돌아가면서 무급휴직을 했고, 버티기 힘들어 그만둔 사람들도 있습니다. 회사는 어렵다고 말은 하지만, 여유자금이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도 정리해고는 어쩔 수 없는 건가요?"

"52시간이 법정 최대근로시간인데. 우리 회사는 특별연장근로를 인가받았기 때문에 주 70시간도 가능하고, 싫으면 관두라고 합니다. 너무 힘들다고 사람을 더 뽑아달라고 요구해도, 아무 문제 없다고 버티기만 하네요."

 "확진자와 밀접접촉한 직원이 나왔다는 이유로, 퇴근 이후 아무도 만나지 말라는 공지를 붙였어요. 확진된 직원이 나오니까, 이제는 아예 회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는 게 적발되면 징계한다고 합니다. 정말 너무 화가 나요..."

'우리는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말에 대해 곱씹어본다. 코로나 시대 이전과 이후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정말,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걸까.

코로나 이전엔 허용되지 않던 것들...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돼버렸다

코로나 시대 기업이 어려워졌다는 것은 사실인가.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진실은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기업이 어렵다'고 하면 모든 것이 허용됐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 이야기했던 최저임금 1만 원도, 노동시간 단축도,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도 모두 좌절되거나 왜곡됐다. 그 와중에 기업은 '고용유지지원금' 등으로  숨쉴 수 있는 기회와 국가의 보살핌을 받았다. 고용유지지원금은 3년 연속 지원 제한 규정이 있지만, 지난 2월 22일 안경덕 고용노동부장관은 3년 차에도 계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원대상은 2021년 실적이 적자이거나, 21년 실적이 흑자인 경우에도 당기순이익이 적자인 대규모기업까지도 포함됐다.

심지어 모든 기업이 힘든 것도 아니다. '코로나 특수'를 누리며 그 어느 때보다 매출이 폭등한 기업도 동시대 다수의 이야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은 사상 최대 매출과 역대급 영업이익을 남겼다. IT, 자동차, 철강, 배터리 등 주력산업은 대부분 역대 최고, 사상 최대라는 실적을 발표했다. 금융권도 마찬가지로 대출금리가 크게 오른 가운데, 4대 금융그룹(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의 순이익은 2019년 이후 최고치인 14조5000억 원 규모다.
 
 정리해고된 아시아나항공기 청소노동자들과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 원직복직을 위한 공대위 회원들이 지난 2021년 4월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복직을 촉구하며 박삼구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자택까지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정리해고된 아시아나항공기 청소노동자들과 아시아나케이오 정리해고 원직복직을 위한 공대위 회원들이 지난 2021년 4월 22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복직을 촉구하며 박삼구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자택까지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 권우성
 
하지만 반대로 노동자들은 감시와 통제, 장시간 노동, 또는 무급노동과 고용조정 등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게' 됐다. 노동시간이 단축됐다? 사실 이보다 새빨간 거짓말이 있을까. 탄력적 근로는 확대됐고, '필요성'만 있으면 인정되는 특별연장근로 인가로 얼마든지 52시간 초과 노동이 가능해졌다. 이것을 문제 삼고 싸우면, 또다시 코로나 확산 주범으로 공격받으며 싸움이 가로막힌다.

왜 이번 대선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들을 수 없는가

촛불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대통령을 뽑았을 때, 우리는 이런 삶을 살기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지난 5년간 우리는 무수히 많은 문제를 겪으면서도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조차 없는 시간을 살았다. 이런 삶을 살아가고 감내하는 우리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데, 왜 이번 대선에서는 아무런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걸까?

이번 대선의 키워드는 우리가 만들 국가의 비전과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경쟁이라도 하듯 후보들의 비리로 얼룩진 역대급 진흙탕 대선으로 기억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한편에서는 더욱 더 극대화된 사람들의 정치혐오 때문에 다른 한편에서는 민중들의 고단한 일상으로 인해 목소리를 내기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이것이 아니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은 오직 뭉쳐서 하나의 세력이 됐을 때 구조적·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낼 힘이 생긴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구조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노동운동 세력이 없다. 거대한 구호들은 있지만 노동자들은 진짜 자기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정치인, 시민단체, 노동조합을 만날 기회가 없다.

목소리를 낼 운동세력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에서 열린 노동 정책 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지난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에서 열린 노동 정책 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운동세력이라고 해서 지금을 헤쳐나갈 길이 쉽게 보일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대부분의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들이 앞다퉈 정책협약하기에 바쁘거나, 지난 시기 개혁에 실패한 당의 후보를 지지선언 하는 것이다. 

이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모습이 아니다. 지금의 운동세력들이 모두 그 후보가 대안이라고 생각해서 지지하는 것은 아닐거다. 그래서, 이런 현상에 대해 '옳은' 소리만 하며 함부로 돌을 던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라는 위기감과 정세 판단을 통한 선택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 선택이 과연 최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최선이 아닌 차악이라면 그것을 현재의 시대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역사의 퇴행을 막기 위해, 개혁의 퇴행을 택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임했던 초기 국정과제였던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사라진 지 오래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언감생심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일하는 죽는 사회다. 5인 미만 노동자들의 노동권은 구호로만 그치고 있다. 이런 틈을 타고 '주120시간 노동'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노동'이라는 역사적 퇴행의 목소리들이 난무한다.

지금 우리에게 단 하나의 길이 있다면, 제도권 정치 안에서 답을 찾지 말고 우리가 직접 답을 내는 것이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지만 그것이 궁극적인 본질은 될 수 없다. 우리 목소리를 대신해 줄 적합할 인물을 찾는 것에만 갇혀버리면 답이 보이지 않는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는 얼핏 보기에 오지선다에 제시된 후보들 중 하나를 고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의 시민들은 그보다 더 강력한 행동에 나설수 있다.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당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결집된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답안지의 후보들은 유권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거기에 맞게 자신들의 답안을 더욱 높여갈 수밖에 없다. 주어진 답안을 넘어 가치를 제시하고 그 힘을 모아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며 강력하다. 

과거 2002년 대선 당시, 보수성향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효순·미선양 부모집을 방문, 불평등한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규정을 개정할 것을 약속할 정도로 나서게 만들었던 힘은 정책협약이 아니었다. 강력한 시민들의 의지와 힘 그리고 이를 결집시켜 역동적 방향으로 표출해낸 시민사회단체, 즉 운동단체가 존재 했기에 가능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고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의 진상규명과 SOFA개정,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거리에 나선 학생과 시민들. 한양대에서 열린 청년학생 결의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서울시청앞 49재에 참석하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2002년 "미군 장갑차 고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의 진상규명과 SOFA개정, 부시 미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거리에 나선 학생과 시민들. 한양대에서 열린 청년학생 결의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서울시청앞 49재에 참석하기 위해 행진을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금 대선에서 노동 이슈가 사라진 것은, 주어진 답안에 머물며 어떠한 노동의 미래도 제안하지 못한 "노동운동 없는" 대선이 됐기 때문이다. '역사에 퇴행하는 후보', '개혁에 퇴행하는 후보' 중 누가 덜 나쁘냐를 선택하는 선거는 힘이 빠지고 답답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선택은 그들이 정신 번쩍들게, 우리의 가치를 내세우고, 외치고, 일어서 행동함으로써 바꿔낸 것이어야 한다. 도토리 키재기 같은 저울질에 고민하며 우리의 미래를 맡기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새로운" 운동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이번 대선에 대한 규정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 이번 대선은 역사적 퇴행과 개혁의 역주행을 막는 대선이 돼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을 견제하고 비판할 '새로운' 시민사회세력 출현이 중요하다. 할 말은 있지만, 후보 지지 선언 속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이번 대선은 촛불개혁이 실패한 대선이라고 규정하고 다시 촛불시민의 개혁 기준을 세우고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되돌려야 할 촛불 시민의 개혁 기준과 가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지금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한다.

장시간 노동, 노동시간의 탄력적, 유연적 운용이 손쉽게 허용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노동시간의 변칙적 운용은 예외적이고 엄격한 경우에 한정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임금 삭감, 무급휴직, 구조조정은 당연하지 않다. 사람은 쉽게 쓰다 버리는 일회용이 아니고, 비용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것이 상식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개인의 삶을 함부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방역' 기준이 권리를 지키는 투쟁 위에서 지배적으로 군림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삶이 위협당하고 권리가 침해당하면 누구나 싸울 권리가 있다는, 단결과 결사의 헌법적 권리가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개인이 각자도생하며 알아서 감내하고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공공의 영역 확대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의 방향이 돼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후보자 지지 선언이 아닌, 가치와 개혁을 선언하자
 
 2월 12일,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자신의 요구를 외치고 있다.
2월 12일,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에 참여한 시민들이 자신의 요구를 외치고 있다. ⓒ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지난 2월 19일,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 포럼은 시국토론과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다양한 나이, 직업, 성별, 성적 지향, 피해의 경험, 투쟁의 경험을 놓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페미니스트 역시 제도권 정치에 많은 이들이 편입된 시대였지만, 제도권에 들어가지 않은 이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제도권에 속해 있어서 어떤 문제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대지 않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주권자가 돼, 세력이 돼, 가치와 방향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여성운동단체가 결합하면서 이러한 주권자 운동이 벌어졌다. 페미니스트 주권자 행동이 주는 울림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목소리를 내고 싶은 이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들과 함께 할 새로운 운동세력이 대안이라는 것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공간과, 깃발이 필요하다. 운동세력이 이런 공간이 되고, 깃발로 부활해야만 주 120시간 노동과도 싸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기 위해, 이제는 누구를 지지할지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가치와 방향을 선언하자. 누가 대통령이 되던, 그래야 우리가 바라는 세상으로 끌어낼 수 있다. 역사는 늘 제도권 정치에 끌려가는 순간이 아닌, 정치권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세력화 돼 등장하는 순간 만들어졌다.

2002년 모든 대선 후보가 거리에서 촛불을 든 청소년들에게 사과하고 미국에 당당한 나라를 선언했던 순간이 있었다. 2016년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외쳤던 순간, 우리는 촛불 정권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역사는 모두, 우리가 어떤 가치를 외쳤을 때, 어떤 후보가 아닌 개혁 그 자체를 지지할 때 가능했다. 우리 모두 스스로가 새로운 운동세력이 되어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필요한 시대정신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신지심씨는 법무법인 오월 공인노무사입니다.


#대선#노동운동#노동없는대선#코로나#운동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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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오월 공인노무사.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 <함께노동(준)>에서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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