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법은 약자에게 가혹합니다. 법의 바깥으로 내몰린 삶도 존재합니다. 유권자가 가장 대접 받는 대선 시기, 유권자로 주목받지도 호명되지도 않는 사람들을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가 만납니다. 이들을 대변하는 정치를 꿈꿉니다.[편집자말]
ⓒ unsplash
 
'가출 청소년'이라는 단어에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인 '문제아'가 떠오르는가. 그런 이미지부터 떠오른다고 해도 이해는 간다. 가끔 범죄 뉴스에 오르내릴 때를 제외하고는, 우리 사회에서 탈가정 청소년이란 존재는 철저히 비가시화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지워진 시민들'이다. 그들은 대개 폭력의 가해자라기보다는 피해자이고, 집을 나온 청소년들은 저마다 사정과 맥락이 있다. 

현재의 청소년 제도와 정책은 '보호'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보호에도 정해진 형태와 규격이 있어서, 청소년은 친권자(부모)에 의해 보호받아야만 한다고 규정된다. 그런데 여기서 보호의 난점이 발생한다. 나를 보호해야 할 친권자가 나를 위협하고, 내가 안전해야 할 집이 오히려 위험한 공간이 되어버린 청소년들의 경우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탈가정 청소년들이 집을 나와 가장 먼저 부딪히는 것은, 청소년이기에 아무것도 결정할 권한이 없고 모든 것이 보호자에게 위임돼 있는 현실이다. 이를테면 청소년 스스로는 집을 계약할 수도 없고 근로계약을 맺을 수도 없다. 각종 복지제도는 부모를 경유해 접근할 수 있도록 짜여 있다.

게다가 민법상 친권자가 자의 거소를 지정할 권한을 갖기 때문에, 친권자가 지정한 거소를 벗어난 이들은 존재 자체로 탈법의 존재가 돼 버린다. 청소년쉼터에 가거나 경찰에 도움을 청해도 본인의 의사에 반해 원가정으로 돌려보내지는 경우가 많은 이유도 바로 이러한 법 체계 때문이다. 

비합법 '난민'이 돼 버리는 탈가정 청소년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집을 나온 청소년들이 스스로 생존을 도모할 수 있는 어떠한 권한도 보장하지 않은 채,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알아서' 생존을 도모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결국 탈가정 청소년들은 일시쉼터와 길거리, PC방과 고시원 등을 떠도는 '난민'이 되곤 한다. '난민'이란 표현은 단지 비유가 아니다. 법 바깥의 존재로 내몰린 채, 안정적인 주거도 일자리도 찾지 못하는 이들의 처지는 말 그대로 난민에 가깝다.

청소년 보호를 말로만 외쳤을 뿐, 가장 어려운 상황의 청소년들은 예비 범죄자 취급하며 외면해왔던 이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의 책임이 크다. 그런 책임감 속에서 지난 2월 21일, 탈가정 청소년을 지원해온 현장 활동가 세 분과 이야기를 나눴다.

- 민법상 '친권자의 거소지정권' 탈가정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A: "탈가정 청소년을 위한 쉼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이 쉼터에 가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친권자의 거소지정권 때문인 측면도 있어요. 청소년들이 쉼터에 찾아오면 부모에게 연락해서 위치를 알리고 허락을 구하게 돼 있거든요.

일주일씩 머무는 일시쉼터는 연락을 안 하기도 하는데, 몇 개월 이상 사는 단기쉼터부터는 보호자에게 연락을 하게 돼 있어요. 집에서 뛰쳐나온 청소년들이 다시 집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결국 쉼터에 가지 않아야 하는 것이죠."

- 학대가 있었음에도 부모의 의사에 따라 원가정으로 복귀시켜버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나요?

B: "부모와 분리가 되려면 아동학대가 증명돼야 하는데, 그 증명이 쉬운 게 아니잖아요. 경찰이나 아동보호기관에서 청소년의 말을 잘 믿어주지 않고 부모의 말에 비중을 두는 경우가 많아요. 눈앞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지 않는 이상 어떻게 증명하겠어요.

그리고 청소년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폭력이지만, 성인들은 그걸 폭력이 아니라 '훈육'이라고 판단해버리기도 하고요. 민법상 친권자의 징계권 조항이 폐지돼서 이제 더 이상 물리력의 행사는 합법적 훈육으로 간주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체벌을 학대라고 판단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A: "지금의 탈가정 청소년 정책들과 쉼터운영의 기조는 '원가정 복귀'에 맞춰져 있어요. 아동학대 신고를 해도 청소년의 말을 잘 믿어주지 않고, 설령 학대라고 인정이 되더라도 처벌 수위가 너무 낮아서 그냥 부모가 교육을 좀 듣는 걸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고요. 쉼터에 와도 결국 집에 돌려보내지니까 청소년들은 시설을 이용하지 않고 거리로 나가 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죠."

- 청소년들이 머물고 싶지 않게 되는 쉼터 자체의 문제도 있을 것 같아요. 

B: "쉼터라는 게 집단시설이잖아요. 내 집처럼 계속 머물면서 살 만한 환경이 아니에요. 좁은 방 안에 여러 사람이 같이 자야 하는 데다 사생활도 없고 규칙도 엄격해요. 외출하려면 외출 사유를 대고 허락을 일일이 받아야 하는 쉼터들이 많고, 통금시간도 있고 시간되면 일제히 소등을 해버리고요. 휴대폰 사용 시간을 제한하는 곳들도 있어요."

C: "어떤 쉼터들은 안전상의 이유라고 하면서 방문을 없애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쉼터가 보호를 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감옥같다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 이런저런 이유로 쉼터를 이용할 수 없는 청소년들은 어떻게 살아가게 되나요?

B: "부모에게 연락하기 때문에 쉼터에 못 가는 청소년들의 경우, 부모에게 연락이 가지 않는 일주일짜리 일시쉼터를 매주 옮겨다니기도 해요. 전국 순회를 하는 거죠. 그러다 말 그대로 거리에서 밤을 지내기도 하고, 친구 집 같은데 잠깐 있다가 24시 패스트푸드점에서 지내다가 PC방을 전전하는 식으로 홈리스 상태가 되는 경우도 많고요(코로나로 영업시간 제한이 걸리면서 선택지가 많이 줄어들었어요)."

A: "주거가 안정이 되지 못하니까 일을 하기도 어려워요. 그러니 일반적인 노동을 해서 돈을 벌기가 어렵고, 그러다보니 성매매나 범죄로 내몰리게 되기도 하고요.

생존을 위해 명의도용으로 내몰리는 청소년들

- 청소년의 경우 민법상 계약의 주체가 되지 못하잖아요. 합법적으로 주거지를 구하거나 근로계약도 보호자 동의 없이 맺지 못하는데, 명의도용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릴 것 같아요.

B: "그렇죠. 주거 계약을 맺을 수가 없고 원래는 고시원 같은 곳들도 신분 확인을 하고 입주하지만, 신분 확인을 덜 빡세게 하는 고시원에 그나마 들어가는 정도죠. 아는 언니나 아는 형 신분증 빌려서 일하기도 하고요.

법적으로는 보호자 동의가 있어야 근로계약을 맺을 수 있는데 그런 확인을 제대로 안 하는 곳에서 일을 하려다 보면 근로기준법을 잘 안지키는 곳에 가서 일을 하게 되죠. 그리고 노동권 침해를 당해도 합법적으로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대응을 잘 못하게 되고요."

- 뉴스에 탈가정 청소년의 범죄 소식이나 '가출팸'에 대한 자극적인 내용이 보도되곤 하는데, 실제 현실은 어떤가요?

A: "'가출팸'이라고 보도가 되는 뉴스들은 죄다 굉장히 자극적인 이야기들뿐이잖아요. 그런데 저희가 봤을때는 처음부터 그런 청소년은 없어요. 가출팸도 처음부터 범죄를 계획하고 시작되는 경우는 잘 없고요. 기댈 곳 없는 청소년들끼리 어떻게든 함께 의지해서 살아내보려고 모이는 게 가출팸의 시작이고요. 그런데 이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없어도 너무 없다 보니까 범죄에 가담하거나 연루되는 일들이 발생하게 되는 거예요.

탈가정 청소년들은 일을 하는 게 어렵고, 생존하는데 돈은 필요하니까 주변에 있는 아저씨나 삼촌들이 '돈 줄테니 뭘 해보자' 하면서 범죄에 연루되거나, 하루만 성매매를 하자고 했다가 그 길로 가게 되거나... 이 청소년들이 내가 의도적으로 그런 일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내가 그 상황에 그냥 어쩔수 없이 놓여버리는 일들이 생기는 거예요."

- 일부 정치인들은 청소년 범죄를 엄벌해야 한다, 처벌연령도 하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어요.

A: "사회가 잘못해놓고 개인에게 책임 지운다고 해서 청소년 범죄가 줄어들 수 있을까요? 같은 범죄를 저질러서 똑같이 재판 받아도, 부모가 보호해줄 수 있는 청소년은 훈계 받고 가정으로 되돌려보내져요. 부모가 훈육을 할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부모와 관계가 소원하거나 부모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청소년들은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쉽게 소년원으로 보내져요. 게다가 탈가정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생계형인 경우가 많잖아요. 어떤 청소년들은 부모가 필요한 걸 사주는데, 그렇지 못한 조건의 청소년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범죄에 연루되는 순간들이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과연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결될까요?"

탈가정 청소년이 20살에 되면, 빚이 생긴다

"탈가정 청소년들이 스무 살이 되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이렇게 묻자, "빚이 생겨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성인이 돼 계약서에 스스로의 이름으로 서명할 권한이 생기자마자, 휴대폰을 대리개통해주면 얼마를 주겠다는 둥 하는 작업대출자들의 먹잇감이 된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생계가 급박하기에 이들은 위험한 제안을 수락하고 사기 대출의 늪에 빠지게 된다. 주변에서 제대로 된 조언을 들을 기회도, 올바른 정보를 제공받을 자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탈가정 청소년들은 법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간다. 보호자의 의사에 반해 가출한 것 자체가 민법상 친권자의 권한에 따르지 않는 것이다. 친권자 없이는 스스로 결정할 법적 권한이 없기에 법의 빈틈에서 생존을 도모할 수밖에 없다. 살아남기 위해 명의도용을 비롯한 법 위반을 저지르고, 절박한 상황에서 범죄의 피해를 입거나 어느 순간 가해자가 돼버리기도 한다.

반면에 이들이 스무살 성인이 돼 결정할 권리가 생기더라도, 자원과 정보의 부족 때문에 작업대출을 비롯한 각종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①생계 때문에 쫓기지 않고 ②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으면서 ③스스로 좋은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이것이 위기에 처한 청년과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이다.

청소년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보호'라는 명분으로 모든 권리를 막아두면서, 성인이 되자마자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라고 아무런 안전망 없이 내모는 사회는 얼마나 무책임한가.

존중 없는 보호는 억압일 뿐, 친권의 재구성 논의 시작해야

탈가정 청소년들의 손을 잡아줄 정치가 필요하다. 어떤 청소년들에게 '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거나 외로운 장소일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청소년의 말에 귀를 기울여 학대와 가정폭력을 판단해야 한다. 부모의 집에 살 수 없는 청소년들은 시설(쉼터)에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집다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독립생활을 하는 청소년을 위한 주거 정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주거와 같은 물리적 지원 뿐 아니라, 문화적·관계적 지원 역시 중요하다. 탈가정 청소년들이 친밀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자립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는 일을 공적 영역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는 위기에 처한 외로운 청소년들이 나쁜 관계를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일환이기도 하다. 내 옆에 다른 누군가가 아무도 없다면, 설령 파괴적이거나 착취적인 인간관계라 할지라도 기존의 관계를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 누구나 겪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탈가정 청소년들에게는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야 한다. 좋은 부모를 만난 청소년들이 집안에서 제공받는 소소한 조언과 정보 같은 것들은 사소해보일지라도 중요한 안전망이 된다. 부모와 함께 살지 못하는 청소년들 역시 자신의 삶에서 최선의 결정들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지지하는 체계가 있어야 한다.

청소년의 말을 경청하고 의견을 존중하는 나라에서 청소년은 더 잘 보호받을 것이다. 존중 없는 보호는 억압일 뿐이다. 청소년들의 '가출' 결정은 범죄가 아니다. 탈가정 청소년은 죄인이 아니라 상황이 어려운 청소년일 뿐이다.

탈가정 청소년을 법의 가장자리로 내몰지 않는 국가를 원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적 청소년 정책 패러다임의 전면적인 수정과 함께, 청소년의 권리를 중심에 두고 친권을 재구성하기 위한 심도 깊은 논의가 시급하다. 누구보다 '국가'의 존재가 절실할 탈가정 청소년들을 위해, 정치가 더 이상 미루지 않아야 할 과제들이다.

#정의당#강민진#청년#청소년#탈가정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강민진입니다. 현재는 청년정의당 대표로 재직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