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시급 6287원, 최저임금 위반율 94%. 작년에 청년유니온에서 발표했던 패션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패션어시) 현황이 아니다. 우리가 한 달에 한 번은 꼭 가는 미용실 스태프 노동자의 노동 현황이다.
약 10년 전 청년유니온은 전국의 주요 프랜차이즈를 비롯한 198개 미용실 스태프의 근로 조건을 조사했다. 당시 최저임금 위반율은 무려 100%였다. 평균 시급은 2971원으로 2012년 기준 최저임금 4580원에 턱없이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64.9시간으로 일주일에 하루 쉰다고 가정했을 때 하루에 11시간 가까이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0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달라졌을까. 청년유니온 사무실로 미용실 노동 환경에 변화가 있는지 물어오는 전화가 종종 왔다. 그 이후 상황은 파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조금 나아졌다"라는 대답만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패션어시 노동실태를 조사하면서 미용실 노동자의 노동 환경과 자주 오버랩되고는 했다. 특히 진입 장벽이 낮으면서 20대 초반 여성이 많이 일한다는 점이 그러했다.
2021년에 실시한 미용실 노동자 조사는 그전과 다르게 스태프와 헤어디자이너를 분리하여 조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조사하였으며 스태프 333명과 헤어디자이너 172명, 총 505명의 유효 응답을 받았다. 조사 결과를 보면서 양가적인 생각이 들었다. 절대적인 임금 수준은 높아졌지만, 최저임금 미달, 장시간 노동,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미용실 노동자는 무법지대에 놓여있었다.
미용실 스태프의 평균 시급은 6287원으로 2021년도 최저임금의 72%에 불과했다. 스태프의 경우 일을 하면서 교육을 받는데 여기에 한 달 부담하는 교육비와 재료비, 평균 월 22만 원을 뺀다면 실질적으로 받는 금액은 더 적을 수도 있다.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경우도 94%에 달했다.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8.0시간으로 과거 64.9시간이라는 극단적인 장시간 노동에서는 벗어났지만 역시나 통상적인 전일제 근로자의 근로시간보다 길게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상사의 갑질, 직장 내 따돌림, 폭력적인 언행을 겪었다는 답변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주관식 답변에서 종종 언급되었던 '벌스'라는 단어가 있었다. 아무리 찾아보고 유추해 봐도 알 수가 없어서 설문조사에서 연락처를 남겨준 응답자들을 초대한 오픈 채팅 카톡방에 '벌스'에 대해 물어봤다. '벌스'는 '벌서는 스케줄'로 청소가 제대로 안 되어 있거나 공지 없이 바꾼 출근 시간에 지각했다는 이유로 무급으로 일을 시키는 시간의 의미였다.
매출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벌금을 매기거나 4대 보험에 들지 말라고 눈치를 주고, 연차나 추가 수당 등을 챙겨주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미용실 스태프의 경우 프랜차이즈 본사나 외부에서 교육을 받는데, 교육을 받는 데에 들이는 비용에 비해 교육의 질이 너무 낮거나 무조건 듣도록 강요되는 일도 있었다. 사적인 업무지시는 물론이고 최근 매장들 사이에서 네이버 리뷰로 경쟁을 하곤 하는데 매장의 점수를 높이거나 리뷰를 작성하기 위해 스태프의 개인정보까지 요구하는 사례도 있었다.
아직도 달라지지 않은 "너 아니어도 여기서 일할 사람 많아"라는 식의 태도와 일하는 노동자가 아닌 일을 배우는 '학생'이니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 청년 노동자를 착취하고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현실은 여전했다.
이름만 프리랜서인 헤어디자이너
헤어디자이너는 스태프와 다르게 인센티브 방식이 일반화되어있다. 으레 헤어디자이너가 스태프보다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고 수입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헤어디자이너 상황은 스태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평균 월 소득은 214만 원으로 스태프보다 100만 원가량 높지만, 평균 근로시간은 53.8시간으로 스태프보다 더 장시간 근무한다. 평균 시급도 7697원으로 2021년도 최저임금 8720원의 88% 수준이다. 스태프보다 조금 더 나은 상황이긴 하지만 노동법에 미달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헤어디자이너는 스태프와 다른 문제 상황에 놓여있다. 4대 보험에 일부라도 가입된 경우가 11%에 불과하고 53% 가까이 기본급을 전혀 받지 않는다. 제시된 조건만 봤을 때 헤어디자이너는 프리랜서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노동은 전혀 '프리'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응답자의 96%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답했다. 원하는 날짜에 휴무를 쓰지도 못하거니와 예약 손님이 없어도 데스크를 보거나 다른 손님을 응대하게 하면서 시간을 전혀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
어떤 고객에게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지시를 받는 등 헤어디자이너는 매장 관리자와 명백히 종속 관계로 이어져 있다. 그런데도 기본급 없이 성과급으로만 급여를 받는 경우는 60%에 육박했다. 이들의 부당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객 배정에는 정해진 룰이 있는데 원장 또는 실장에게 밉보이게 되면 고객 배정에 배제되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등의 부당한 경험을 한 사례도 있다.
스태프로 일하면서 긴 교육 기간을 거치고 헤어디자이너가 되었지만, 미용실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크게 좋아지지 않는다. 이들 대부분은 20대 여성이며 최저임금 미달, 장시간 노동,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용실,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인데 아직도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우선 사업장 규모가 작다는 이유와 사회초년생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또 일을 가르친다거나 혹은 일할 장소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부당한 사안들이 눈감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최소한의 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노동 현장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먼저 미용실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위반 실태조사와 근로감독 그리고 행정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사업장의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근로감독과 지도를 허술하게 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로 미용 시장에 큰 영향을 주는 헤어프랜차이즈 본사를 집중 점검해야 한다. 헤어프랜차이즈들은 개인사업장에 비해 소비자에게 높은 가격을 받고 있지만, 프랜차이즈 내에서 일하는 스태프와 헤어디자이너의 처우는 개인사업장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이다. 교육을 듣도록 강요하고 반강제적으로 교육비를 내지만 교육의 질은 담보되지 않는다.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은 헤어디자이너와 프리랜서 계약을 하지만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자유롭게 휴가도 쓸 수 없다. 사업장에 유리하게 프리랜서로 계약을 하고선 실제로는 종속 관계가 명확한 노동자인 것이다. 방치된 헤어프랜차이즈들의 노무관리를 점검하고 이를 시정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는 행정지도에 나서야 한다.
세 번째로 미용 시장에 영향력을 펼치며 사업을 키워가는 헤어프랜차이즈들은 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해결할 의무가 있다. 사업주 지시 하에 있는 헤어디자이너를 프리랜서로 계약하거나 스태프들에게 강요되는 장시간 노동, 특히 94% 이상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현 상황에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여있으면서도 조직되기 어려워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미용실 노동자와 같은 노동자를 대변하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 특히 최저임금 위반과 위장 프리랜서 계약과 더불어 장시간 노동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 현장은 없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이채은 청년유니온 위원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YOUTHTORY'에도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