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주권자 연속기고8-1지역/청년/페미니스트에게도, 성평등 정부가 필요하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페미니스트 주권자 연속기고의 마지막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2030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2022년 대선 정국에서는 소위 '이대남'으로 대변되는 남성 유권자들의 표가 가장 중요한 결정권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수도권 외 지역의 문제들은 주요한 이슈로 부각되지 않는다. 청년 문제에서 드러나지 않는 청년 여성, 그리고 수도권 중심의 정치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 지역. 그렇다면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 여성들은 이번 대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지역/청년/페미니스트 5인과 지난 2월 21일, 약 2시간 동안 온라인 집담회를 열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사회자), 기쁨 제주여민회 활동가(제주, 활동 1개월 차), 로렌 한국여성의전화 진해지부 활동가(진해, 활동 5개월 차), 반달 여성인권티움 활동가(대전, 활동 4년 차), 토리 대구여성노동자회 활동가(대구, 활동 1년 차), 포키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광주, 활동 3년 차)가 집담회에 함께했다.
집담회 내용은 두 차례에 걸쳐 공유한다. ⑧-1는 지역/청년/페미니스트들이 지역을 삶터로 두고 여성단체 활동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⑧-2는 지역/청년/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살펴본 대선 후보 4인의 여성, 지역 공약에 대한 생각들을 다룬다. - 기자 말
- 기쁨: 스무 살 때 학교 때문에 경기도로 이주했었다. 그런데 학교는 그만두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때 제주도로 내려올까 고민했으나 부모님이 제주도는 아무래도 섬이라는 공간적 특성이 있고 일자리가 다양하지 않고 좁은 세계라는 생각에 더 넓은 세계로 나가라고 제주로 오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 몇 년 근무를 했다. 그러다 건강 상의 이유로 2019년에 제주로 돌아왔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원래 관심을 갖고 있었고 제주에 머물면서 제주 환경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제주의 환경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제주에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여 제주여민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 반달: 대전에서 중, 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교를 서울로 가게 되면서 수도권에 7년 정도 거주했다. 졸업을 2018년 8월에 하고, 대학원 진학과 취업을 고민하던 중에 대전에서 지금의 일자리를 구해서 대전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밥을 굶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르바이트도 했지만 서울이 집값도 비싸고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생활이 7년 정도 계속되니까 지쳤다. 부모님 계신 곳으로 내려와야 집세도 덜 들고 하니, 대전에서 취업 자리를 알아보기도 했다. 운 좋게 일자리를 구하게 되어 5년 째 근무 중이다. 제 친구들도 비슷한 시기 졸업을 해서 논산에 내려와 활동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내려온 친구들과 서울에서 겪었던 사소한 경쟁부터 큰 경쟁들 속에서 너무 지쳤다는 이야기를 한다.
- 로렌: 중학생 때 방학 기간 몇 개월 간 서울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것 제외하고는 쭉 경남권에 살았다. 분위기를 비교해보자면 서울은 순환되고 활발한 분위기가 있고, 경남은 서울에 비하면 좀 정적인 느낌이다. 경직되고 보수적인 경향이 짙다.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서울에 비해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기회가 닫혀 있다. 반면에 교통편에 있어서 막히는 것도 없고 물가도 싸고 돈 모으기 쉽다는 것이 지역에서 사는 장점이다.
- 토리: 한 번도 대구를 벗어난 적이 없고 평생 대구에서 살았는데, 서울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람이 많은 게 싫고 벗어나는 걸 두려워하는 타입이라서 서울에 가는 건 좀 꺼려했는데 주위 친구들 보면 나 말고는 다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가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일자리나 다양한 기회의 측면이 서울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되게 놀랐던 것은 여성노동자회에서 90년대생 여성 노동자 실태 조사를 했었는데 대구지역 통계를 내보니 대구를 떠나 살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73%였고, 그 중에서 80%가 일자리 때문에 이동하고 싶어 했다. 그만큼 지방이 기회가 부족하구나 확실히 느꼈다. 주위 친구들이 나에게 우물 안 개구리 같다고 하기도 한다. 주변에 이미 서울에 갔거나 서울로 가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도 많다.
- 포키: 기존에도 전라남도에서 거주했고, 대학교를 광주로 진학한 후 현재까지 10년 넘게 거주하고 있다. 수도권으로 이주할 경우 본가와의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이주가 부담됐다. 또한, 대학 졸업 당시 사회 복지 분야는 어느 정도 일자리가 보장됐기 때문에 취업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몇 달 동안 경기도에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분명 다양한 장점들은 있었다. 같은 직종이라도 지방보다 조건이 좋고, 문화생활에 풍요로운 삶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빽빽이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공황이 온 적도 있어서 절대 수도권에선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고정 지출 및 생활비 등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결국, 조금 덜 즐겁더라도 여기서 편하게 살자는 생각으로 타협했다.
"지역 여성단체의 존재 자체가 희망적"
"나와 가치관이 맞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에 행복"
- 권수현: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한다는 건 기업에 다니는 것과는 다른,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수도권에서도 시민사회단체는 정규직 기업의 월급보다 월급이 많지 않고 여러 가지 어려움들이 있다. 그리고 주변 어른들도 취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지역에 살면서 지금 활동하고 있는 단체에 들어가게 된 계기와 왜 그 단체를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 포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페미니즘을 접하고, 늘 마음 한편에 자리하던 불편함의 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 후로 항상 머릿속에는 페미니즘이 있었다. 당시 근무하던 직장에서 번아웃과 슬럼프를 겪고 회복하는 데 집중하면서 내가 관심 있는 게 뭔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러던 중 '광주 청년 일경험드림'이라는 일자리 사업을 발견했다. 몇백 개의 사업장 중 희망하는 일터 3개를 골라서 제출할 수 있었는데 직무 내용란을 보자마자 '다니고 싶다!'라고 느낀 광주여성민우회만을 적어냈고 몇 달간 인턴으로 일했다. 활동가가 되기 전에는 광주에서 누군가와 페미니즘을 이야기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친구들을 비롯한 어디를 가더라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조금은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페미니스트로서 활동한다는 것이 참 좋았고, 같은 뜻을 가진 동료가 있어 다른 조건은 중요하지 않았다. 인턴 기간이 끝날 무렵 뜬 채용공고 덕분에 계속 일 할 수 있게 됐다.
▲포키 활동사진n번방에 분노한 광주사람들 퍼포먼스 ⓒ 한국여성단체연합
- 반달: 마찬가지로 2015년 이후 페미니즘의 물결에 휩쓸려서 공부를 시작했다. 제가 나온 학교에서 여성주의 학회나 소모임 동아리가 많이 만들어지는 시기가 있어서 이런 의제를 맞닥뜨렸고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페미니즘이 나의 삶에 완전히 들어왔다. 그런데 여성 단체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업으로 삼는 순간 오로지 이것을 신념으로만 가져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회의적이었는데 사실 일자리가 필요했고, 그렇다면 내가 가장 관심 있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 맞겠다는 타협을 내 안에서 봤다.
▲반달 활동사진대전역 성매매집결지 폐쇄 관련 캠페인 ⓒ 한국여성단체연합
- 기쁨: 수도권에 5년 정도 있으면서 세 군데 정도 근무를 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제주도에 내려온 뒤에 한 곳에서 11개월 간 근무를 했었다. 수입이 적은 곳도 있었고 많이 주는 곳도 있었는데 수입과 관계없이 결핍을 느꼈다. 작년에 일을 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 시간 속에서 기존에 관심 있는 여성 문제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제가 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 이야기를 했고, 이 이야기를 들은 독서모임 멤버가 제주여민회에서 활동가를 채용한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처음에는 시민단체 활동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제주에는 페미니즘 관련 단체가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서 제주여민회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입사 지원을 고민하며 제주여민회 관련 소식을 찾아보다가 제주도가 폐쇄적이고 가부장적인데 제주에 이런 활동을 단체가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으로 느껴졌고, 이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기쁨 활동사진기후위기 대응 제2공항 백지화 캠페인 ⓒ 한국여성단체연합
- 로렌: 학부 때부터 권익 옹호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러면서 관련된 일을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가지게 되었다. 사회적 약자를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많이 알아보고 관련 일자리를 찾다 보니 여성의전화가 눈에 띄었다. 진해성폭력상담소 상담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단체에서 일하며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고 있다. 제 주변에 페미니즘은 여성 우월주의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많다. 저도 활동 이전에는 페미니즘에 거부감이 살짝 있었는데, 제대로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페미니즘은 인권 존중의 시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진해지부에서 일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활동 중이다.
▲로렌 활동사진디지털성범죄예방캠페인 <당신이 멈출 수 있습니다> ⓒ 한국여성단체연합
- 토리: 메갈리아와 강남역 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관심이 생겼는데 잘 알지는 못했다.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느끼게 된 계기는, 아이돌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돌이 여성혐오 발언을 했고, 팬덤 안에서 그 발언이 여성혐오 발언이다/아니다로 싸움이 났다. 그때 당시 팬들도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전이라서, 비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공격을 받고 있었다. 비판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살펴보니 여성혐오가 뭔지, 페미니즘이 뭔지 확실히 느꼈고, 그 과정에서 나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했다. 이후에 미러링이 옳은 건지, 메갈과 페미니스트가 무슨 차인지 등에 대해 알고 싶어서 페미니즘 강의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대구여성노동자회에서 하는 젠더 노동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 때의 인연으로 대구여성노동자회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이후에 회원으로도 참여하게 됐다. 청년인턴 사업으로 대구여성노동자회에서 8개월을 근무했고, 그러면서 세상이 달라보였다. 페미니즘도 그렇지만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다 보니, 그 이전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고 느꼈다. 나와 가치관이 맞는 곳에서 일한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고, 임금이 좀 적어도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싶어 활동가를 계속 하고 있다.
▲토리 활동사진대구문화재단 부당해고 및 직장 내 성폭력 문제 관련 1인시위 ⓒ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전히 뜨겁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계속 지속 중"
- 권수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약 7년 정도가 지났는데 여러분들이 판단하기에 페미니즘 리부트가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지, 지역에서의 페미니즘 흐름은 어떤 상황인지 말씀 나눠주면 좋겠다.
- 로렌: 최근에는 미투운동 때보다는 열렬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후퇴하지는 않은 것 같고, 워낙 역차별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고 그러다 보니 좀 조심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주변을 살펴보면 완전히 식지는 않은 것 같다.
- 반달: 2018년 10월, 대전에 왔을 때 단체에서 하는 프로그램 참여도가 굉장히 높았다. 제 나이 또래 여성들이 강의만 열렸다 하면 얼굴 자주 보는 분들이 모이는 경험을 했다. 그런데 코로나19랑 맞물린 게 영향이 크다. 대형 강의나 모임을 열지 못하다 보니 요즘 들어서는 함께했던 여성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대학교와 함께 젠더 폭력 관련한 인식 개선 주제로 강의와 캠페인 사업을 했었는데, 2020년에 후속 사업을 진행하고자 했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연결됐다는 느낌이 잘 안든다.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지표는 강의와 같은 대면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런 사업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그라들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 토리: 대구의 경우에도 코로나19 때문인지 백래시 때문인지 강의 등 프로그램 할 때 많이 안 모이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19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감각이 있어서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있기도 하다. 우리 단체는 청년 페미니스트 모임을 하고 있는데, 2019년까지만 해도 새로 회원 모집이 되었는데 이후에는 새로운 회원이 잘 모집되지 않아 고민이다.
- 포키: 2020년에 광주 비혼 여성 모임이 생겼는데 그때 카카오톡 방에 200명 이상이 모였던 것으로 안다. 온라인으로 활발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오프라인 역시 모임을 지속하고 있지만 코로나 19가 심해지면서 모임 횟수 및 인원 등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광주여성민우회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 시설이 부설 기구로 있어서 다른 단체보다 코로나19 방역에 더욱 힘쓰고 있다. 그래서 오프라인 프로그램도 취소하거나 거의 온라인으로 변경됐다. 온라인 모임이 활성화되는 반면, 회원 연령대가 20대보다는 3~40대 이상이 많다 보니 온라인참여를 어려워하는 일도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낙태죄 폐지, n번방,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관련 행동에 동참하고 새로운 이슈 등에 관심을 보인다. 또한, 최근 몇 년간 기후위기, 비건, 동물권 등 청소년, 청년 다양한 연령층의 활동모임이 생기고 있고, 이들이 페미니즘에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활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광주는 페미니즘이 여전히 뜨겁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계속 지속되고 있지 않나 싶다.
- 기록: 구지혜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 정리: 양희주 제주여민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