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당장 오는 16일 7억 달러 상당의 국채를 갚아야 하지만, 러시아 당국은 "러시아 비거주자에 대한 국채 상환은 서방 제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러시아의 의도적인 채무불이행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오는 16일 7억 달러(약 8500억원) 상당의 러시아 국채를 상환해야 한다. 현재 러시아의 외환 보유고가 6400억 달러 상당으로, 이론상 자금력은 충분한 상황이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 등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로 자산을 대부분 동결하면서, 지불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파이낸셜타임즈>는 경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가 당장 가용 가능한 외환 규모는 300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미국 투자은행인 JP모건은 첫 번째 위기 날짜를 러시아 국채상환일인 3월 16일이라고 명시했다. JP모건은 자사 고객들에게 "미국의 러시아 정부 기관 제재, 유럽 등 제재로 인한 지불 시스템의 혼란은 러시아가 해외에서 채권을 상환하는데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알렸다.
러시아 신용등급도 줄줄이 강등
러시아가 16일 국채를 상환하지 않더라도 30일간의 유예 기간은 있다. 문제는 러시아 정부의 의지다. 러시아는 해외 투자자들에 대한 국채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공언한 상황이다. 30일이 지나도 국채를 상환하지 않으면 러시아 채무불이행은 현실이 된다. 러시아의 대외 채무액은 총 400억 달러 규모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 재무부는 성명을 통해 "러시아 비거주자에 대한 국채 상환은 서방이 러시아에 부과한 제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국채가 달러가 아닌 루블화로 지급될 가능성도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외국 채권자에게 국채 상환을 루블화로 지급하는 것을 허용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러시아가 경제 제재를 핑계로 채무를 갚지 않거나, 달러 대신 루블화로 상환하는 것도 지금 시점에선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 영국 컨설팅회사인 캐피탈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는 오는 3월 16일 러시아의 부도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은 일찌감치 러시아 국가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정크)으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주 스탠더드앤푸어스(S&P)와 피치는 러시아 신용 등급을 '투자부적격(정크)'으로 강등시켰다. 무디스는 지난 6일 러시아의 신용등급을 '정크(B3)'에서 디폴트 직전 단계인 'Ca' 등급으로 4단계나 낮췄다.
러시아의 루블화 가치도 폭락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75루블이었지만, 침공 이후 한때는 달러당 110루블이 넘었다. 7일 현재 외환시장에서 루블화 가치는 달러당 106.5루블이다. 러시아 경제 전망도 암울해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러시아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2%였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7%로 대폭 낮아졌다. 루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러시아 물가상승률은 10% 이상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 기업들이 당분간 역외 예치한 자금을 사용하여 외화채권 디폴트를 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당국의 광범위한 자본통제가 이어지면서 국채와 회사채의 디폴트 위험이 고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