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NGO단체 초청으로 이루어진 국악공연
인구 12만 되는 미국 소도시 로체스터 (Rochester, 경기도 양평군 정도 되겠다). 한국 마트는 물론 한국 식당 그 흔한 한인회조차 없는 이곳에서 3월 5일 한국의 전통 국악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연 주최 측은 로체스터 실내악 협회(Rochester Chamber Music Society)란 음악 관련 NGO로 한국인 1명도 없는 단체였다.
초등학교 때 배운 국악이 전부인, 국악 소리는 책으로 배운 나이지만, 미국 현지인들이 주최하는 국악 공연인데 관객이 너무 없으면 창피하니까 '국뽕'의 마음으로 공연을 보러 갔다. 그런데 공연 당일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이런 비 오는 토요일 저녁에 누가 공연을 보러 올까?
'하필 이런 날.. 오늘 공연은 망했군.' 궂은 날씨 때문에 더 가기 싫었지만, 적은 관객들이면 왠지 자존심 상하는 기분이 들어 애국하는 심정으로 애들 모두 데리고 갔다. 가서 머릿수나 채우자!
나의 걱정은 기우였다.
이런 비를 뚫고 국악 공연을 보러 온 관객이 150여 명. 한국 사람은 스무 명 남짓이었고 모두 미국 현지인이었다. 공연을 보러 와줘서 고맙긴 한데, 가야금, 대금, 장구연주를 과연 이들이 좋아할까?
관객을 이해를 돕기 위해 이수진 가야금 연주자가 공연 소감과 국악기 소개를 이어갔다. 또, 추임새 '좋다'란 말은 'Great'란 뜻이라고 기타 등등 간단하게 설명했다. 천년만세, 비나리, 청성곡, 가야금 산조 등 대여섯 곡이 끝나자 박수와 함께 비속어 같은 한국말이 분명하게 들렸다. "좃타(좋다)."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분명 이 시점에 적절한 추임새가 아니지만, 우리의 전통 음악이 환영받는 반증이라 오해 살만 한 발음과 상관없이 좋았다.
미국 사람들이 국악을 왜 좋아할까?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야금이나 대금 같은 소리는 아름답고 평화롭기 때문에 좋아한다. 명상이나 요가를 통해 마음 수양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들이 찾는 고요한 음악으로 전통 음악이 적합하여 환영한다. 또한 오리엔탈 문화에 관심이 높다 보니 국악에 흥미를 가지기도 한다.
K-pop의 선두 주자인 BTS 혹은 블랙핑크 외에 우리 전통 소리가 또 다른 K-pop의 한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이 새로운 한류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번 공연은 미국 NGO의 경제적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이 단체에서 연주자 초청 비용, 대관 비용 일체를 제공한 것이다. 연주자 중 두 명은 시카고에 있는 국악 연주 단체(KPAC: Korean Performing Arts Institute of Chicago)의 연주자를 초청했는데 KPAC 또한 국악에 뜻이 있는 개인이 만든 NGO단체라고 들었다.
훌륭한 개인의 노력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 되었으면 또다른 한류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해외의 전통문화에 관한 사업과 지원책이 있지만 한국 사람이 많은 곳을 따지거나, 지원자의 비자 상태 등에 대한 제약이 너무 많다 보니 정작 필요한 사람이 지원 받을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문득 막내 아이가 마르고 닳도록 보았던 사운드 북이 생각났다. 오케스트라 악기 소리를 누르면 그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 사운드 북이었다. 우리나라 악기도 소개해주는 사운드 북,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문 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환영받는 우리 소리에 대한 자긍심과 지원 부족이란 아쉬움을 동시에 느낀 후, 이수진 가야금 연주자에게 물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유명하지도 않은 국악 공연을 굳이, 이렇게 작은 동네에서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좋아서요. 국악 소리가 좋으니까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요."
예술인에게 저급한 시장논리로 물은 내가 한참이나 부끄러웠다. 그 좋은 소리, 아름다운 우리 소리, 온누리에 울려퍼졌으면 좋겠다. "좋다!" 이 소리도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