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영방송 뉴스 생방송 도중 방송국 직원이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를 벌였다.
현지 시각 14일 오후 9시 30분께 러시아 국영방송 '채널1'이 뉴스를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도중 한 여성 직원이 앵커 뒤에 갑자기 나타나 반전 메시지를 적은 종이를 들어 보였다.
이 직원이 펼쳐 보인 종이엔 러시아어와 영어로 "전쟁을 멈춰라. 프로파간다(정치 선전)를 믿지 말라. 여기서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전쟁을 반대하는 러시아인들"이라고 적혔다.
앵커는 방송사고를 막기 위해 목소리를 키웠지만 여성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뉴스는 중단됐다.
시위를 벌인 여성은 해당 방송사 직원인 마리아 오브샤니코바로 확인됐다. 오브샤니코바는 곧바로 경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러시아 국영방송은 정부에 의해 강력한 통제를 받고 있으며,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수 군사작전'이라고 보도하면서 오히려 우크라이나를 신나치주의 정권이 이끄는 침략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브샤니코바는 시위 직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가 러시아인이라고 밝히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범죄다. 그리고 러시아는 침략자다. 이 침략의 책임은 오직 블라디미르 푸틴의 신념에 있다. 불행히도 나는 지난 몇 년간 이 방송국에서 크렘린(러시아 대통령실)의 선전을 전파한 것이 지금은 너무 부끄럽다. 국영방송에서 거짓말을 하도록 한 것, 러시아인들을 좀비로 만들도록 한 것이 수치스럽다.
러시아인은 영리하다. 이 광기를 멈출 수 있는 것은 러시아인의 힘밖에 없다. 우리는 그동안 이 반인권적 정권을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고, 결국 전 세계가 러시아에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은 이 수치를 스스로 씻어내릴 수 없다. 모두 항의 집회에 나서자. 러시아 정부는 우리 모두를 구속할 수 없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자.
젤렌스키 "진실 전하려 싸우는 러시아인들에게 감사"
오브샤니코바의 영상이 공개되자 4만 명이 넘는 누리꾼이 "당신은 영웅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등의 공감과 댓글을 달며 지지했다. 현재 푸틴 정권에 의해 감옥에 투옥 중인 러시아의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대변인도 "멋지다"라고 추켜세웠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영상 메시지를 통해 "진실을 전하고자 가짜뉴스와 싸우는 러시아인들에게 감사하다"라며 "특히 러시아 국영방송 스튜디오에서 항의 시위를 벌인 여성에게는 개인적으로 감사를 전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항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의 나라가 세계로부터 완전히 닫히기 전에 (정부와) 싸워야 한다"라며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다른 러시아인들에게도 계속 진실을 전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현재 경찰서에 구금된 오브샤니코바는 '내란 조장' 혐의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최근 러시아는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을 새로 도입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최대 1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