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9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는 천안함 '46용사(勇士)' 합동안장식이 엄수됐다.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한 지 33일 만이었다.
이날 안장식은 대전현충원이 문을 연 1979년 이래 최대 규모였다. 당시 장의위원장인 김성찬 해군참모총장과 유가족, 친지, 천안함 동료 등 2함대 장병, 국방부, 국가보훈처 등 정부부처 주요 인사, 합참 및 육·해·공군 관계자, 역대 해군 참모총장과 해병대사령관, 대전시장과 충남도지사 권한대행, 시민 등 3000여 명이 참석했다.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 병사 46명이 숨진 것은 3월 26일.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PCC 772 천안함이 격침된 것이다. 일명 '천안함 피격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두 동강 난 함정이 뒤집힌 채 침몰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서 중계되고 젊은 병사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사고원인을 둘러싸고, 또 사고 이후의 미흡한 조치 등으로 사망한 장병은 물론, 살아남은 58명의 장병 모두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군 관계자, 사고 직후 사고원인 5가지 추정
군 관계자는 사건 직후인 3월 29일 사고원인을 ▲잠수함의 어뢰 공격 ▲반잠수정의 어뢰공격 ▲탄약고 폭발 ▲기뢰에 의한 피격 ▲암초에 의한 좌초 등 5가지로 추정했다.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히기 위해 정부는 민간·군인 합동조사단을 구성했다. 조사단에 한국 정부를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에서 참여했다.
이후 조사단은 5월 10일 "천안함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북한은 강렬히 반발하며 자신들과 무관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조사단의 공식 발표에도 침몰 원인을 놓고 곳곳에서 선내 폭발설, 좌초로 인한 피로 파괴설, 잠수함 충동설, 미국의 자작극 등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 구성원 간 갈등이 증폭됐다.
국회의 반응도 엇갈렸다. 당시 한나라당은 "합동조사단 발표로 조사 의혹이 완벽하게 해소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은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3명 중 2명이 믿지 못한다. 각종 문제가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국제기구인 유엔안보리와 아세안포럼(ARF)의 의장 성명에서도 쟁점은 명확히 해소되지 않았다. 성명 내용을 보면 한국 정부가 천안함 폭침은 북한 소행이라고 주장한 것과 북한이 책임이 없다고 주장한 내용이 나란히 실렸다. 침몰 원인은 '공격'(attack)에 의한 것으로 규정하면서도 '공격의 주체', 즉 가해자는 명확히 하지 않은 것이다.
합동조사단 결과는 '북한의 어뢰 공격'... 논란은 '지속'
이런 가운데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 누리꾼들을 국가정보원이 내사했다. 충남도의 한 공무원은 천안함 북한 격침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블로그 글을 퍼 날랐다가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가장 큰 상실감을 느낀 사람은 사망 장병들의 유가족들이었다. 유가족들은 국토방위를 위한 임무 수행 과정에서 희생됐음에도 명예가 손상됐다고 반발했다. 살아남은 장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가운데 천안함 피격사건이 발생한 같은 해 10월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 일행 부대 방문 행사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이 뒤늦게 확인돼 논란을 빚었다.
문건에는 당시 국가안보총괄회의에서 김종태 기무사령관이 "천안함 사건 발생 며칠 전 북한의 수중침투 관련 사전 징후를 인지하여 국방부 합참에 보고했으나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침투징후를 예하 부대에 전파도 하지 않았고,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음" 등 국방부와 합참이 기강해이로 북한의 수중 침투 징후를 묵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천안함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희생된 46인 장병의 유가족들은 사회적 불명예를 씻어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살아남은 장병들은 여전히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안고 있다. MBC <PD수첩-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제작진은 지난 9월 <신문과 방송>에 쓴 취재 후기를 통해 "살아남은 장병 대다수가 11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약을 복용 중이었다. 체격 좋은 건장한 전역 군인도, 군복을 입은 현역 군인도, 나이가 지긋한 분도 인터뷰를 마칠 때쯤이면 모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인터뷰 중단 요청을 하더니 아예 엎드려서 엉엉 운 생존 장병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군에서 제대한 생존 장병 34명 중 국가유공자가 되지 못한 21명은 자신의 치료비를 전액 사비로 부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엔과 아세안포럼 의장 성명에 가해자 명확히 해야
대전현충원에는 천안함 46용사 묘역이 따로 조성돼 있다. 가로 10위, 세로 5위씩 총 165㎡ 규모로 조성된 희생 장병 합동묘역 맨 앞줄 중간에는 '서해안 임무 수행 중 희생된 천안함 46용사가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라는 내용을 적은 표지석이 서 있다.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인 고 이창기 준위도 유족들의 뜻에 따라 장교묘역이 아닌 천안함에서 생사를 같이 한 전우들과 함께 안장됐다. 합동묘역 건너편 50m 거리의 장교 제3묘역에는 구조작업 중 순직한 고(故) 한주호(53) 준위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전현충원에 잠든 '천안함 46용사'를 비롯해 생존 장병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이라도 천안함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제기구인 유엔안보리와 아세안포럼(ARF)의 의장 성명에 가해자는 명확히 적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정부에 천안함 사건 당시 미군이 파악, 입수한 정보 공개를 요구해 유엔안보리 등 국제기구의 대응 또한 정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 규명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