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콜센터 상담사이다. 고객의 말 한마디에 울고 웃는다. 아침 9시, "한국장학재단 김윤숙 상담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친절'한 인사말로 첫 고객을 만난다. 어떤 날은 대학교 입학을 앞둔 고3 학생의 전화로, 또 어떤 날은 자녀 등록금 납부 걱정인 학부모와의 상담으로, 그리고 어떤 날은 잔뜩 화가 난 고객을 달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기도 한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콜센터 상담사로 일한 지 벌써 4년이 흘렀다니 새삼 놀랍다. "친절하게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고객들이 건네는 감사 인사와 응원 목소리에 힘을 받고 보람을 느꼈기에 일을 계속할 수 있었고,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상담을 진행하고 나의 상담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고객들도 있지만, 손톱으로 할퀴는 듯한 말로 나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고객들도 있다. 요즘은 과거에 비해 고객들의 괴롭힘이 더 지능적이다.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콜센터를 찾았을 텐데 정확한 답과 설명을 듣기보다 본인의 말에 "네, 아니요"로만 답하라며 상담사를 무시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답을 상담사가 할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고 끈질기게 강압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다 상담사가 정확한 안내를 위해 고객의 말에 굽히지 않으면 그때부터 상담사의 말투나 목소리 등 상담 내용과 무관한 태도를 트집 잡고 상담사가 불친절하다고 주장한다.
본인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상급자를 연결하라고 하거나 상급부서에 직접 연락 또는 대외 민원 기관에 민원을 접수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고객이 남긴 상처는 짧게는 몇십 분 마음을 어지럽히게도 하고, 길게는 몇 달이나 잠자리를 뒤척이게 하기도 한다.
상담사에게 폭언하는 고객들은 대체로 본인의 요구조건이 관철되기를 강경하게 요구한다. 그 요구사항이 합리적인지와는 관계가 없다. 본인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비아냥거림과 짜증 섞인 말투로 "월급 받고 하는 일이 뭐냐? 왜 제대로 해주는 것이 없느냐?" 또는"상담사 주제에 뭘 안다고 떠드냐? 묻는 말에만 답해라"라는 등 '욕설'을 피해 비꼬는 말투로 가시 돋친 말들을 쏘아붙인다.
이런 말들을 듣고 나면 나의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고 모든 것에 자신감이 없어지며 모든 일이 내 잘못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보다 더 서글픈 것은 내 감정이나 자존감은 추스를 새도 없이 다음 전화를 받고 상담을 해야 할 때이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서글프지만, 눈물을 꾹참고 쉴 새 없이 다음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 고객 대기가 있다며 빨리 전화를 받으라는 재촉이 오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민원이 걸릴까 걱정이 되니 고객의 요구에 대해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고 적당히 받아넘겨야만 한다.
나의 감정의 아픔과 억울함은 숨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관리자의 호출로 시작하는 피드백이 피드백에서 업무평가로 이어지고, 그 업무평가로 인해 회사에 저성과자로 낙인찍혀 불편한 회사 생활까지 감내해야 하는 수모를 겪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감정 노동, 더 위험한 노동 형태
어떤 이들은 말한다. 네가 선택한 길이 아니냐고. 내가 상담사가 되기를 선택한 것은 맞으나, 상담사가 되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나를 향한 비수마저 고이 맞으며 피를 흘리는 것이 정당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상담사가 느끼는 억울함과 고통에 대해 상담사는 고객에게 당당하게 상담의 중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회사 또한 상담사의 권리를 지키고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 현실을 반영하여 감정 노동에 대해 언론에서도 기사를 많이 내고 있고, 관심을 두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콜센터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 사회를 덮치기 전부터 비대면 노동현장이었고 대표적인 감정 노동 사업장이기도 하다.
감정 노동. 사전적 의미로는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행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일을 하는 노동을 말하며 이러한 직종의 종사자를 감정노동종사자라 한다.
육체 노동은 노동을 통한 신체의 손상도가 눈에 보이기에 손상을 빠르게 인지하고 휴식시간을 통해 대부분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감정 노동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날카로운 말들을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내고 마음의 손상도가 신체로 늦게 나타나기 때문에 육체노동보다 손상을 빠르게 인지할 수 없으며 이를 감안하면 더 위험한 노동 형태라고 볼 수 있다.
2021년 12월 말경, 같이 일하는 상담사가 접수된 불친절 민원으로 일주일 넘게 힘들게 버티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일을 하다 보니 숨이 차 상담 중 숨을 몰아쉬었는데 고객이 한숨을 쉬었다며 접수한 민원이었다.
그 상담사가 오해를 풀려고 다시 전화도 걸었지만, 통화를 거부하며 끊어버린 고객은 홈페이지에 민원을 접수하였고 이 상담사는 그때부터 팀장으로부터 "왜 안내를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라며 고객 문의와 상관없는 안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달렸다고 한다. 이 상담사의 억울함에 대해 공감해주거나 보듬어 주는 관리자는 없었다.
이 상담사는 며칠 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졌지만, 아직 말을 못 하는 상태라고 한다. 어쩌면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두려움이 나를 포함한 다른 상담사들까지 움츠러들고 공포에 떨게 했다.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근무 환경
상담사들의 감정 노동을 심화시키는 요인은 비단 고객의 폭언만은 아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고 있는 현장에도 있다. 초 단위로 상담사의 현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전자감시시스템(ERS)'. 관리자들은 이 시스템을 통해 상담사가 통화 중인지 상담 이력을 남기는 중인지 자리를 비웠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장학금 신청, 대출 신청 등 장학사업 중요 일정이 있는 시기에는 쉴새 없이 콜이 밀려 들어온다. 하루에 밀려드는 콜은 몇만 건인데 상담사 인원은 정해져 있어서 아무래도 상담사 연결은 평소보다 늦어질 수밖에 없다.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응대율을 높이고 성과지수를 맞추기 위해 전자감시시스템을 통해 상담사를 1분 1초 감시한다.
상담 이력을 남기는데 1분이 넘어가면 어김없이 "후처리 푸세요", "고객 대기가 많은데 빨리 정리하고 콜 받으세요"라며 관리자들은 재촉하고 자리를 비운 시간이 10분이 넘어가면 상담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득달같이 찾아 나선다.
지금 일하고 있는 장학재단 콜센터는 노동조합이 생기기 전까지는 화장실 가는 것도 메신저팀 방에 '영희>은정>윤숙···' 이런 식으로 화장실 갈 순서를 정하는 줄을 서야 했다. 그리고 자기 앞사람이 화장실을 다녀와서 자리에 앉았다는 '착석'이라는 채팅이 올라와야만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혹시라도 내 순서가 되기 전에 화장실이 급하면 팀장에게 보고하고 가야만 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센터는 편안하게 화장실 갈 자유도 인권도 없는 곳이었다. 전자감시시스템으로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근무 환경을 통해 받는 자괴감과 스트레스는 우리 상담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고객 응대로 지칠 대로 치진 우리 상담사들에게 회사와 관리자들은 도리어 거센 채찍질과 박차를 가해 상담사를 쥐어짜 실적을 강요하는데, 말 그대로 숨이 막혀온다. 고객 응대로 소모한 감정이 회복되지 않은 상담사에게 행해지는 실적 강압은 참으로 가혹하다. 가혹한 환경은 상담사들의 감정을 메마르게 한다. 그리고 메마른 상담사의 감정은 고객의 불편함으로 전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들겠다던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아직 콜센터에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많은 노동자가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감정 노동으로 혹사당하는 콜센터 상담사들이 있다. 콜센터 상담사들도 마땅히 존중받고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다.
2018년 10월 감정노동자보호법이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콜센터 상담사들은 감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감정노동자보호법의 문제점 중 하나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사용의 책임을 부여하지 않는 것에 있다.
폭언, 폭력에 대한 법률적 대응을 위해 필요한 증거 자료는 모두 원청이 보유하고 있지만, 상담사에게 법률적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원청의 지원 없이는 법률적 대응은 사실상 어려운 형편이고, 콜센터는 대부분 도급 방식으로 운영된다. 회사들은 원청의 요구에 맞추어 콜센터를 운영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으므로 상담사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신체적 건강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콜센터 상담사를 보호하는 첫 번째 방법은 원청이 상담사들의 감정 노동에 관심을 두고 감정 노동강도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담사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관리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건강하게 감정 노동을 할 수 있도록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원청이 직접 관리, 감독, 지원하도록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윤숙 한국장학재단 콜센터 상담사가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3,4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