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가 퇴색하는 세상입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 그 자체가 종말을 고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마주했던 노동 현실의 민낯을 보며 현장의 관찰자이자 조율자로서 신입 노무사가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독자와 공유합니다.[기자말] |
노동의 1차 목적은 임금을 얻기 위함에 있다. 임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다른 재산도 생산수단도 없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 된다. 이에 국가는 최저임금제도와 같이 국민의 최저생계수준을 보장하기 위하여 사회적인 최소한도를 사업주에게 부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며 사회 전반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서, 노동의 본질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회복지시스템의 정비로 최저생계의 문제에서 벗어나는 노동자들이 '중산층'이라는 분류하에 등장하게 되면서, 노동력 제공의 대가인 보상을 단순히 임금 하나만으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 기업들은 기존처럼 '높은 급여'라는 단일 보상시스템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의 욕구를 맞출 방법을 고안하게 됐다. 특히 이직의 자유가 보장되는 현시점에서 기업은 우수인력의 유치 및 유지 관리라는 차원까지 고려하여 효과적인 임금 외 보상 방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복리후생(Fringe Benefit)은 이러한 논의에서 탄생하였다. 이 제도는 사내 휴게시설 설치, 연수·자격을 위한 휴가 및 비용 지원과 같은 업무효율과 상대적으로 밀접한 부분부터 시작되었으나, 최근에는 가족 건강검진 비용 지원, 가족의 날 지정, 영화 등 문화생활 지원비 등 노동자의 삶의 질 그 자체에 영향을 주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복리후생제도를 설정하는 기업도 이를 이용하는 노동자들도 유의하여야 할 사항들이 있다. 복리후생이라는 개념이 법에 어떠한 하한선이나 기준 등이 정해져 있지 않다 보니, 시행 과정에서 법 해석적·실무적으로 판단해야 할 점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문제 ①] 현물로 지급된 복리후생비는 임금인가
인사담당자가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반드시 현금으로 지급한 경우에만 그 성질을 따져 임금에 포함될 수 있을 뿐이고 문화상품권과 같은 현물로 지급된 경우에는 임금성이 배제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법원은 임금을 "사용자가 노동의 대상으로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으로서, 노동자에게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고 그 지급에 관하여 단체협약, 취업규칙 등에 의하여 사용자에게 지급의무가 지워져 있는 경우 명칭 불문하고 모두 포함된다"고 판단하면서, 현금뿐만 아니라 현물로 지급된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고 판단하고 있다(대법원 1990.12.7., 90다카19647).
현물인 임금의 대표적인 예로 설 및 추석 연휴를 앞두고 지급하는 명절 선물이 있다. 이미 대법원은 지난 2005년 단체협약 등 내규에 따라 일정 금액의 선물비를 책정하고 그 가격에 상응하는 선물을 현품으로 지급하여 온 경우, 그 월 평균액을 구하여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포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05.9.9., 2004다41217).
직원의 근속과 사기 진작을 유도하기 위하여 지급하기로 정한 현물 포상의 경우에도 임금성을 가질 수 있다. 법원은 ① 소속 노동자들의 생일마다 3만 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지급하기로 정한 경우(대법(전합) 2013.12.18., 2012다94643), ② 단체협약에서 개근 시 매년 금 1돈을 지급하도록 한 경우(대법원 2012.2.9., 2011다20034) 모두 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다만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복지포인트의 임금성을 부정하는 판단을 하여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이 판례에서 법원은 '선택적 복지제도'라는 개념을 들면서 이에 기초한 복지포인트 제도가 임금과 같은 근로조건에서 제외되며, 사용 기간이 지나면 소멸되어 양도가능성이 없다면서 임금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대법(전합) 2019.8.22., 2016다48785).
정리하자면, 현시점에서 사내 규칙이나 오랜 관행에 따라 지급의무 및 지급액이 구체적으로 정해져 정기·계속적으로 지급되는 금품은 모두 임금에 해당한다고 볼 것이다. 다만 복지포인트 판례와 같이 금품의 성질상 특정 시간 내 사용하지 않을 시 금전적 가치가 소멸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 이후 기간에서의 임금성이 부정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문제 ②] 복리후생제도 운영상 차별
노동시장 유연화의 부작용으로 많은 기업에서 현대판 신분 제도라 불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소위 중규직(무기계약직 전환 노동자)의 고용 형태를 구분하여 운영해 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차원에서 차별 소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복리후생제도 또한 그 논란에 포함된다. 대표적인 비정규직 관련 법률인 기간제법 및 근로자 파견법에서는 명시적으로 '근로조건 및 복리후생 등에 관한 사항'이 차별적 처우가 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규직들과 달리 기간제 근로자에게만 명절휴가비, 교통비 또는 가족수당 등 복리후생적 금원을 지급하지 않은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는 수많은 판결(서울고법 2016.10.21., 2016누30189, 서울행법 2010.4.29., 2009구합36651 등)이 나왔는데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다.
간과하기 쉬운 점은, 기간제 외에 단시간 노동자에 대해서도 이러한 복리후생이 적어도 비율적으로는 적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하급심에서는 업무 내용이 동일한 전일제 돌봄전담사와 방과 후 돌봄전담사에게 그 노동시간에 비례하는 수준의 맞춤형 복지비가 지급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여(서울행법 2019.8.30., 2018구합78640), 전혀 지급하지 않은 경우에는 차별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여기에 파견과 관련하여서도 지난 2018년 중앙노동위원회는 파견법상 파견근로자로 운전직에 종사한 자에게 동종 직고용 운전기사에게는 지급되는 교통비, 자기개발비, 근로자의 날 및 가정의 달 수당, 피복비를 지급하지 않은 것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중앙2018차별37, 43, 2018-12-06).
이에 재계에서는 기간제법 등 제정 당시부터 차별 사항의 범위에서 업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은 복리후생제도는 삭제할 것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복리후생제도의 본래 목적이 노동자의 삶의 질 그 자체를 향상하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주장은 오히려 법의 취지를 무시하는 불합리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문제 ③] 실무상 효율성을 극대화한 제도 설계
딱딱한 법률 얘기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실무적인 부분을 살피자면 먼저 예산으로 인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복리후생제도 자체가 범위가 매우 넓고 추상적이며 직원 개인의 성향이 전부 다르기에, 제도를 마련할 때에는 "모든 니즈(needs)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대전제를 생각해야 한다.
이에 기반하여 기업에서는 복리후생제도 도입의 가용 예산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특히 기존에 복리후생제도가 없었던 기업에서 처음부터 너무 많은 종류를 도입하려고 욕심을 부리게 되면 비용 대비 효용이 과도하게 낮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 최초에는 가용 예산 전부를 잡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늘려나갈 수 있도록 점진적으로 구성하는 편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그러다 보니 개별 노동자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노사협의회 등 간접적 의견 청취뿐만 아니라 전사 설문 등 최대한 많은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절차를 통해 대다수가 원하는 복리후생 중 도입 가능한 것을 우선 검토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노동연구원의 2018년 연구(노세리 외 2인 <기업의 복리후생제도 발전방향 연구>) 자료를 참고하는 방법도 있다. 이 연구에서는 기업 구성원의 연령, 성별, 가구형태(혼인 및 자녀 여부 등) 및 고용형태(정규직·비정규직)에 따라 선호하는 복지 유형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다.
사회 통념상으로도 당연한 이야기겠으나, 자녀 학자금 지원제도를 20대 미혼 노동자가 반길 리 없다는 점과 같은 생애적 특성은 한정된 예산 안에 많은 이의 만족을 이끌어내는 데 당연히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개별 사업장의 노동자 인구 구조를 고려하여, 이와 같은 연구자료 및 사업특성 등을 반영한 제도를 짜야할 것이다.
제도 시행 이후에도 할 일은 많다. 직원으로서는 선호했던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막상 실제로 이용해 보니 불편한 점이 있을 수 있다. 가령 여름휴가에 휴양시설로 지원받은 리조트가 생각보다 별로라거나, 심리상담 프로그램이 신설되었다고 하여 찾아가 봤더니 전문성이 낮은 것 같아 체감 효용이 낮아질 수 있다. 이런 부분에 있어 꾸준한 피드백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나아가 국가적 지원사업 해당 여부 등도 살펴야 한다. 일례로 '워킹맘'들이 0순위로 꼽는 직장 내 어린이집 설치는 기업 규모에 따라 고용노동부에서 설치비뿐만 아니라 보육교사 인건비 등 운영비 상당액을 지원하고 있다. 직장 내 어린이집은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운영할 수도 있는 만큼, 중소기업이라도 사업자 간 공동운영을 통해 금액도 분담하고 여성 인력의 경력단절 방지라는 사회적 기여도 할 수 있다.
노·사 상호 협력으로 완성되는 복리후생제도
이와 같이 기업이 복리후생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노동자들은 이를 마치 당연한 권리인 양 여기지 않아야 한다. 복리후생제도는 어디까지나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이 지속 가능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다. 이 때문에 복리후생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언제든지 지원이 끊길 수 있는 '한시적 제도'임을 고려해야 한다.
복리후생 차원에서 사업장 내외에 마련된 시설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본인도 최소한의 책임을 진다. 으리으리한 기기나 시설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장이 큰마음먹고 들여놓은 탕비실 커피머신은 혼자 사용하는 기계가 아니고, 외부 헬스장 등 제휴업체를 이용하더라도 자신은 일반 개인이 아니라 그 회사의 직원이라는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직원 선호도가 높지만 돈이 많이 들어 당장 시행이 어려운 제도가 있다면 그 재원 일부를 혜택을 받는 직원으로부터 충당하거나,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대표되는 방식으로 일정 금원을 꾸준히 확보하여 제도를 지속 운영하는 등 노·사 공동의 노력으로 복지제도 운영의 난관은 얼마든지 풀어나갈 수 있다.
제도가 잘못되면 잘못됐다고, 잘 되면 좋다고 피드백을 주면서 회사의 배려를 남용하지 않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나타날 때, 회사는 유·무형의 효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더 나은 복리후생제도를 제시할 것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하듯, 복리후생이야말로 노·사 간의 상생이라는 시선에서 함께 만들어나가야 할 시스템임을 인지할 때 비로소 성공적인 복리후생제도가 안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