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과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가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롱리스트)에 올렸습니다. 오는 7일, 부커상 재단은 롱리스트에 오른 후보작 13편 중 최종 후보작(쇼트리스트) 6편을 선정해 발표하는데요. 또 다시 낭보가 전해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는 지금, 이번에 롱리스트에 오른 작품 <저주토끼>를 읽어봤습니다. [편집자말] |
영국 부커상의 인터내셔널 후보에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과 정보라의 <저주토끼>가 나란히 후보에 올랐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읽어본 적이 있으나 <저주토끼>는 처음 듣는 작품이라 이 기회에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SF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정보라가 SF를 많이 쓰는 작가라는 지인의 말만 듣고도 기대가 됐다. 읽으려고 쌓아둔 책상 아래의 모든 책을 제치고 <저주토끼>가 오늘, 내 손에 들렸다.
내가 생각했던 SF가 아니네?
단편 소설집으로 총 10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깔끔하게 똑 떨어지는 문장,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 전개로 쉽게 이야기에 몰입된다. 제일 처음 나오는 소설은 책 제목이기도 한 <저주토끼>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할아버지의 친한 친구네 집이 경쟁사인 거대 기업의 횡포로 모두 망하고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할아버지는 친구 대신 복수를 결심하고 저주 용품인 토끼 전등을 만든다. 결국 그 전등으로 인해 경쟁사가 망하고 그 집 삼대가 모두 죽는다.
앗. 내가 생각했던 SF가 아니다. 작가 소개를 다시 보니 '한국 SF/판타지' 대표작가가 아니라 '한국 호러 SF/ 판타지' 대표작가다. 어쩐지. 뭔가 으스스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다음 단편은 <머리>이다.
<머리>의 주인공은 어느 날 변기에서 나온 '머리'와 눈이 마주친다. 내 배설물을 받아먹고 자랐다는 '머리'는 날 '어머니!'라고 부른다. 조금 오싹한 기분으로 계속 책장을 넘긴다. 섹스 없이 임신한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몸하다>란 단편에서는 작가의 발상에 감탄해 웃음이 터졌다.
"몸이 정상이 아닐 때 피임약을 그렇게 오래 먹으면 부작용으로 임신이 되는 수가 있어요." (p.83)
"지금 같은 경우에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서 임신이 된 게 아니기 때문에 남성 배우자가 없으면 태아가 제대로 분열하고 발육하질 못해요. 달걀에도 무정란이랑 유정란 있는 거 아시죠? 같은 이치예요." (p.85)
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파격적인 설정과 거침없는 전개가 몹시 흥미롭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품마다 뭔가 작가가 의미하는 상징이 있는 것 같아 내가 과연 이 글들을 제대로 이해한 건지 의심스럽다. 난 그제야 책의 맨 뒤를 넘겨 작가의 말을 읽었다.
"<저주토끼>는 쓸쓸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저주토끼>에 실린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외롭다. (중략) 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방식을 통해서, 낯설고 사나운 세상에서 혼자 제각각 고군분투하는 쓸쓸하고 외로운 독자에게 위안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조그만 희망이다."
작가의 말을 읽고 보니 각 단편의 주인공들이 다르게 보인다. <저주토끼>에서 복수의 방법으로 쓴 '저주'가 무척 쓸쓸한 느낌이 든다. 옛날 영화나 코미디에서처럼 '우리 아버지의 복수다! 내 칼을 받아라!' 하면 뭔가 명확한 복수의 느낌이 드는데 저주 용품을 사용한 복수는 시원하지가 않다. 죄 없는 사람도 함께 죽고, 죽으면서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사과와 뉘우침 없이 그냥 망해 버리는 저주의 복수는 씁쓸하다.
게다가 타인을 저주하면 자신에게도 그 영향이 미친다. 할아버지는 어느 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손주는 할아버지의 무덤 위치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 날씨가 흐리고 적적한 날이면 할아버지는 (마치 유령과 같은 형태로) 집으로 돌아와 항상 하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손주는 할아버지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지만 할아버지가 자신의 질문에 놀라 더 이상 오지 않을까 두려워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다시 보니 이 이야기에는 '사랑'이 있다. 몇 번이고 할아버지의 똑같은 이야기를 듣는, 그리고 자신의 궁금함을 꾹 참고 묻지 않는 손주가 있다. 각자 쓸쓸하고 고군분투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서로를 향한 사랑이 아닐까.
쓸쓸함을 '견딜만하게' 하는 것
뒤이은 단편, <머리>에서 여자 주인공은 변기 속에서 자꾸 나타나는 '머리' 때문에 힘들어 가족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별일 아니라고 한다. "알을 스는 것도 아니고 무는 것도 아니면 그냥 두지 그러니."(p.26)
여자는 혼자 '머리'와 대면하고 고민한다. 화장실에 가길 꺼리다 병에 걸리고 회사도 그만둔다. 회사를 그만둔 김에 맞선을 봐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머리'는 여자의 배설물을 먹으며 계속 자란다. 여자는 남편에게도 이 사실을 이야기한다. "뭐, 별거 아니네. 그냥 내버려 둬요. 기어 나와서 집안을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알을 까는 것도 아니잖아?"(p.46)
모두가 별일이 아니라고 한 그 일이 여자에게는 큰일이었고 결국 정말 아주 큰일이 된다. 여자가 자신의 고민을 말했을 때, '그래? 그런 게 나타난다고? 힘들겠다! 그럼 어떻게 하지?' 하고 모두 함께 반응하고 머리를 모았다면 일의 결말은 달라졌을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힘들지만 그걸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해진다.
이 책의 모든 단편을 다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다. 더군다나 내가 와닿은 부분이 작가가 의도한 지점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글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그 뒤의 해석은 독자의 몫이라고 했다.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다. 난 이 단편들에서 쓸쓸한 사람들을 보았고 그 쓸쓸함을 견딜만하게 하는 사랑에 대한 생각을 했다.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저주를 풀러 간 용감한 공주 이야기도, <재회>에서 과거의 어느 순간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마음에 남는다. 모두 외롭지만 외롭기에 서로를 살피고 보듬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욕심에 눈이 멀면, 자신이 외로운 줄도 모르고 사랑의 가치도 모른 채 파멸의 길로 들어선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욕심에 눈멀지 않게 매일 자신을 돌아봐야지, 하는 초등학생 같은 다짐을 한다. 시시한 다짐 같지만 그 시시한 게 어려워 큰 숨을 내쉰다. 사랑의 역동보다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역동이 더 큰 우리 부부를 생각한다. 각자 외롭게 자신의 자리에 서 있지만 티내지 않는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변하고 싶어진다. 작가처럼 상상력과 글솜씨가 뛰어나 많은 사람에게 위안을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으로 위안을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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