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에 책임이 있는 송영길 전 대표가 곧바로 서울시장에 나갔다. 게다가 본인은 불과 두 달 전 '86 용퇴'를 주장했던 당사자다. 겉으로는 송영길 출마에 대한 찬반 논쟁을 하고 있지만, 물밑에선 6월 지방선거 공천-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구주류·신주류간 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에서 지고도 자리를 지킨 '윤호중 비대위'는 교통정리를 못하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의 평가다.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를 두고서다.
앞서 우상호·김민석 의원 등 민주당의 비중 있는 중진들이 공개적으로 반대한 데 이어 친문(친문재인) 그룹인 '민주주의 4.0'은 6일 집단성명까지 내고 송 전 대표 출마를 강하게 비판했다. 같은 날 정계은퇴를 선언한 86세대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송 전 대표의 출마를 "송탐대실"이라고 비난했다. 내홍이 깊어지고 있지만 송 전 대표는 결국 7일 서울시장 경선 후보 등록을 마쳤다.
송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과정에서 드러난 난맥상은 대선 패배 후 한 달이 지나는 동안 민주당이 노정한 문제점들을 압축해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① 반성 없는 '졌잘싸' 부작용
먼저, 송영길 전 대표의 출마 자체가 민주당의 반성 없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기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큰 선거에서 지고 물러난 지도부가 곧바로 당 전면에 등장한 전례가 없다"라며 "비대위원장은 대선 때 원내대표였던 윤호중, 서울시장 후보는 당대표였던 송영길이라면 도대체 민주당의 뭐가 바뀌었다고 유권자를 설득하나"라고 지적했다.
촛불 이후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정치 지형에서 민주화 이후 첫 '5년 만의 정권교체'를 허용했음에도 민주당이 '0.73%p 차 패배'에만 안주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방선거 승리라는 이유 하나로 당이 대선 패인 분석조차 통제했다"라며 "정확한 진단과 성찰이 없으니 당에서 다시 검찰개혁·언론개혁 같은 무책임한 얘기나 나오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그는 "양극화·부동산 등 민생 실정에 대한 진솔한 사과조차 없었다"라며 "정권 뺏기고도 헛다리만 짚는 걸 보면 암담하다"고 했다.
② 리더십 없는 지도부
대선 결과를 '졌잘싸'로 봉합한 흐름은 '윤호중 비대위' 체제의 정당성 문제로 번졌다. 대선 패배 다음날인 3월 10일 민주당은 송 전 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가 모두 사퇴했다. 그러나 당내 의견 수렴 절차도 없이 윤호중 전 원내대표가 차기 비대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당에선 거센 반발이 일었다. 왜 물러나는 지도부가 비대위원장 인선까지 하냐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송 전 대표와 이낙연 전 대표, 임종석 전 비서실장 등 당내 서울시장 주자간 신경전으로 시끄러웠을 때 지도부가 먼저 나서서 교통정리를 했어야 했다"라며 "지도부의 마땅한 역할인데, 비대위 자체를 일종의 '편법'으로 세우니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할 힘과 정당성이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만약 유력 주자간 교통정리가 잘 됐다면 '차출' 모양새를 갖추는 등 송 전 대표가 출마할 명분도 만들 수 있었고, 지금처럼 잡음도 크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젠 송 전 대표가 출마한다 해도 입은 타격이 너무 크다"고 평가했다. 우상호 의원 역시 "송 전 대표 출마로 이낙연 전 대표나 외부인사 카드가 모두 물 건너 갔다"(4일)면서 우회적으로 아쉬움을 표했다.
③ 86 용퇴-쇄신론 '퇴색'
대선 기간 중이던 지난 1월 25일 송영길 전 대표가 직접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86 용퇴론을 촉발시켰던 것 역시 현재 송 전 대표에겐 장애물로 되돌아왔다. 더욱이 대선 패배 후 86 정치인인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장관과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정계 은퇴를 선언한 상황이다.
최 전 수석은 "송 전 대표는 대선 땐 86 용퇴론을 점화시키더니 지금은 다른 논리로 서울시장 출마를 모색하고 있다"(7일), 김민석 의원은 "86 용퇴의 하산 신호를 내린 기수가 갑자기 나홀로 등산을 선언한다"(4일)라면서 송 전 대표를 공개 비판했다.
한 민주당 의원은 "대선 당시 송 전 대표와 이재명 전 후보 쪽에선 86 용퇴론이 이어지지 않는 점을 아쉬워했다"라며 "그런데 이제 와서 86 세대 '맏형'격인 송 전 대표가 서울시장을 해야겠다는 건 일관성이 없다"고 봤다. 그는 "송 전 대표 출마는 차기 대선주자로 자리를 굳히기 위한 정치적 계산으로밖에는 해석이 안 된다"고 했다. 여기에 경선 후보 등록 막판인 7일 박주민 의원까지 서울시장 출마를 전격 선언하면서 '86'세대 송 전 대표의 출마 명분은 더 약화되는 모양새다.
④ 신·구세력 주도권 싸움
대선 이후 당내 주도권을 놓고 벌어진 계파 갈등 역시 송영길 전 대표 출마를 계기로 한층 고조됐다. 구주류인 친문, 친이낙연계 의원들은 "송 전 대표 출마는 이재명 전 후보 측에서 이낙연 전 대표의 서울 출마를 막기 위한 포석이다. 대선에 패한 이 전 후보가 당권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반면 신주류인 친이재명계 의원들은 "애초에 이낙연 전 대표나 임종석 전 실장 출마는 더 현실성 없는 얘기였다. 송 전 대표 비토는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라고 맞섰다.
6일 친문 의원 모임 민주주의 4.0의 '송 전 대표 출마 반대' 입장문은 이같은 신·구주류 세력간 갈등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단면이다. 4.0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송 전 대표의 명분도 가치도 없는 내로남불식 서울시장 출마에 반대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주의 4.0에 속한 한 의원은 성명 직후 통화에서 "이재명계 주류의 결정에 대해 우리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명확히 해놓을 필요가 있다"라며 "지방선거 결과가 안 좋다면 송 전 대표를 지원한 세력들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와 달리 이재명 전 후보와 가까운 한 의원은 "대선 이후 활동이 왕성한 지지자 그룹들이나 지역 여론을 보면 이재명 전 후보의 당내 영향력이 급격히 커졌다"라며 "과거의 친문 주류 세력의 역할론은 사실상 끝나간다고 본다"고 짚었다. 그는 "친문은 구심점이 없지만 신주류는 이재명이라는 확실한 기둥이 있다"라며 "의원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8월 전당대회 때 '이재명 당대표 추대론'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에 "대선 이후 비대위 구성, 원내대표 선거, 이번 송 전 대표 출마 논란에 이르기까지 모두 계파 대리전 양상으로 흘러갔다"라며 "대선이라는 큰 선거에서 패하고도 내부 이권 다툼에만 함몰돼 국민 일반 여론과 점점 괴리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