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우크라이나와 서방세계를 열심히 돕고 있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급에 차질을 겪게 될 유럽을 위해 자국이 보유 중인 천연가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우크라이나에 방탄복을 제공하고자 자위대 수송기도 파견했다.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서도 신속한 모습을 보여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확실시됐던 2월 23일에는 러시아 국채 등의 일본 내 발행·유통을 금지했고, 침공이 개시된 다음날인 25일에는 러시아에 대한 반도체 수출규제 등의 조치를 취했다.
3월 7일에는 일본 정부가 러시아를 '파트너'에서 '국가안전보장상의 과제'로 격하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요미우리신문>의 보도가 있었다. 러시아를 북한·중국 같은 '안보 과제'로 취급하려는 움직임이 보도됐던 것이다.
이렇게 러시아를 단죄하는 가운데 자국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시도도 활발하다. 미국과의 핵공유를 통해 핵보유 단계에 접근하고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동시에, 자국의 윤리와 관련된 사안들에서도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침략 과정에서 독도를 빼앗은 사실을 도외시한 채, 독도에 대한 자국의 권리를 분명히 할 목적으로 올여름까지 새로운 대응책을 내놓겠다며 자민당 TF팀을 가동시키고 있다. 또 강제징용 현장인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작업도 추진하고 있다. 3월 29일에는 위안부·강제징용의 실상을 감춘 교과서들이 문부과학성의 검정 심사를 통과했다.
이처럼, 러시아를 단죄하는 이상으로 자신들의 도덕성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감이 없었다면, 세계적 비판의 대상인 위안부 문제를 그처럼 과감하게 교과서에서 은폐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비롯한 극우세력이 사도광산 문제를 매개로 결집하면서 '한국과의 역사전쟁'까지 운운하는 것은 과거가 깨끗하다는 자신감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뻔뻔함의 저변엔...
일본 극우세력이 그렇게까지 뻔뻔해질 수 있는 데는 역사수정주의가 적지 않게 기여했다. 자국의 범죄 전력을 지우고 아무런 흠결도 없었다는 쪽으로 역사를 수정해가는 극우 이론가들의 역할이 컸다.
그에 더해, 기독교의 영항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0.5%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기독교가 일본 극우에 미친 영향은 상당하다. 정확히 표현하면, 일본 극우가 기독교를 활용한 정도가 상당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 극우는 선민의식을 갖고 있다. '천황은 살아 있는 신이고, 일본 국민은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며, 따라서 세계를 지배해야 할 운명을 지녔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 같은 과잉된 민족적 자부심이 일본의 전쟁 범죄를 한층 부추겼다. 이스라엘인들이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의식이 일본의 집단적 도덕성을 무디게 하는 측면이 있다. 일본이 이렇게 된 데에는 기독교를 매개로 유입된 선민의식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일본 최대 극우단체인 일본회의(닛폰카이기)를 움직이는 것은 신도 계열 종교들이다. 전 교도통신사 기자인 아오키 오사무의 <일본회의의 정체>는 "일본회의라는 존재의 배후에는 신사본청을 축으로 하는 신도 종교단체와 '생장의 집'의 그림자가 조직과 인맥에 드리웠고"라고 설명했다. 신흥 종파인 생장의 집을 포함한 신도계 종파들이 최대 극우단체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회의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그 종파들은 단단한 선민의식으로 무장하고 있다. 이런 선민의식을 신도에 유입시킨 인물로 19세기 일본 기독교 지도자인 에비나 단조(海老名弾正, 1856~1937)를 들 수 있다. 당시의 일본 기독교 그룹인 구마모토 밴드(熊本バンド)를 이끈 에비나 단조가 유대인 선민사상을 신도에 유입시킨 장본인이었다.
<기독교 사상> 2021년 12월호에 실린 홍이표 야마나시에이와대학 교수의 논문 '일본 극우의 탄생과 종교적 배경'은 "구마모토 밴드의 대표자인 에비나 단조는 일본의 한국침략 과정에서 이른바 조선 전도론(朝鮮傳道論)을 통해 일본의 황국적 기독교를 이식하려 애쓴 목사이자 신학자였다"면서 "신도와 기독교를 결합하여 야마토민족에게 신이 부여한 선민의식을 강조하며 일본제국의 팽창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였다"고 설명한다.
19세기 일본 우익은 다신교인 신도를 일신교 비슷하게 재정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천황 중심 체제를 구축했다. 여기에도 기독교 이론이 요긴하게 활용됐다.
하라 마코토 도시샤대학 교수가 2018년에 <한국기독문화연구> 제10집에 기고한 '동아시아에 있어 일본 기독교의 역사적 위치와 의의'는 19세기 후반 일본 무사계급(사무라이) 일부의 기독교 수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들 중 소수는 그때 만난 선교사와 미국인 교사의 인격과 신앙에 접하여 기독교를 사교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기독교가 가진 유일신 신앙과 윤리를 받아들여 새로운 문명을 개화하기 위한 근대적 종교와 그 사상을 추구"했다고 설명한다. 기독교를 사이비로 대하면서도, 무사도와 공통분모가 있는 기독교 생활윤리와 더불어 유일신 신앙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서양문화를 열렬히 수용하던 시절인 19세기 중후반에 일본인들이 열등감을 느낀 것이 있다. 서양 서적들에서 일신교는 고등 종교로, 다신교는 하등 종교로 분류돼 있다는 점이었다. 미국과 서유럽이 세상을 주도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런 식의 서술이 대세를 점할 수밖에 없었지만, 당시의 일본인들은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콤플렉스를 겪었다.
홍이표 논문은 "다수의 유학생 파견과 수많은 번역서 소개 과정에서 19세기에 형성된 종교학 이론은 기독교·이슬람교 등 유일신교를 고등 종교로, 힌두교나 신도 등의 다신교를 하등 종교로 분류하는 것을 접하면서 일본의 종교 실태에 대한 집단적 열등감·굴욕감이 심화되었고, 이는 극복하고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런 열등감·굴욕감과 더불어 유일신교의 정치적 효용성에 대한 주목이 낳은 결과에 관해 논문은 "이는 이후 일본의 모든 신사를 천황을 정점에 둔 황실신도의 우산 아래 일원화한 이른바 국가신도, 즉 신사신도의 형성으로 전개되었고, 그 과정에서 근대 천황제가 탄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천황은 아메노미 나카누시노가미(天之御中主神)나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라는 유일신 개념을 이 땅에 드러내 보인 아라히토가미(現人神)로서 근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신인 일왕(천황)과 그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등을 중심으로 신도 신앙이 일원적 이념 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기독교 교리가 활용됐다는 설명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이슬람 국가들로 둘러싸인 적대적 환경 속에서도 기독교 국가를 유지한다. 자신들의 팔레스타인 탄압이 국제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 줄 알면서도 지금도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탄압하고 있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31일에는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팔레스타인 청년 2명이 생명을 잃었다. 기독교를 앞세우면서도 지속적인 만행을 범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의 묵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독교적 선민의식 때문이기도 하다. 선민의식이 죄의식을 누그러트리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기독교적 선민의식이 일본 극우의 의식 저변에도 깔려 있다. 지금의 극우세력 대부분은 기독교를 믿지 않지만, 기독교 선민의식과 유일신 사상이 19세기 일본 극우를 통해 그들의 의식 속으로 침투했다.
이스라엘처럼 일본 역시 호의적이지 않은 이웃들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된 참회나 반성을 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점점 더 당당하게 행동하고 있다. 하필이면 강제징용 현장들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하기도 하고, 보란 듯이 교과서를 수정하기도 한다. 이런 뻔뻔함의 저변에, 기독교와의 접촉을 통해 유입된 선민주의와 유일신 신앙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