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돌바내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를 내다본다”라는 모토로 출발한 진보정치의 플랫폼으로 정책생산과 입법활동, 정치활동을 하는 국회등록 사단법인이다. 이에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 내셔날 어젠다(국정과제) 형성에 일조하고자 매월 격주 정책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
필자는 일본의 대학에서 전자정부를 연구하고 있어 각국 정부의 자료 등을 수집 분석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자료 조사 및 자료작성 시에는 특별히 신경써야 할 일이 있다. 다름 아닌 정부 각 부처의 공식명칭이다.
다른 나라와 달리 대한민국은 정권이 교체되면 당선자의 정책적 주안점과 정치적 의도에 따라 부처의 통폐합이 이뤄지면서 정부 부처의 명칭과 역할 분담이 바뀌게 된다. 정확한 자료의 작성을 위해서는 자료 작성시점에 따라 정확한 부처 이름을 확인하고 기록해야 하므로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전자정부 관련해서도 참고문헌 등을 조사해 보면 전자정부 추진 부처가 정보통신부가 지식경제부로통합, 행정자치부가 행정안전부로 바뀌었다가 안전행정부로 그리고 다시 행정안전부로 바뀌었다. 전문산하기관도 정보화진흥원이 지능정보화진흥원으로, 정부통합전산센터가 정부정보자원관리원 등으로 변경되는 등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물론 새롭게 출범하는 정권이 과거 정권의 정부운영방침에 대해 이견을 가질 수 있고 발전적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좋게 평가받아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행정안전부(2008)라는 부처명이 안전이 뒤쪽에 있으므로 안전을 경시하는 것이라며 안전행정부(2013)로 바꾸는 이런 식은 곤란하다. 결국 지금은 도로 행정안전부(2017)로 명칭이 바뀌었다. 이러한 조삼모사같은 한심한 일들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것도 현실인 듯하다.
이번에 출범하는 새로운 정권에선 교육부를 없앤다고 하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교육부의 역할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교육부를 없앤다고 표현하는 극히 정치적 수사에 참으로 경망스럽고 해괴망측하다는 생각이 든다.
설마 교육이라는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를 수행이라는 중차대한 정부의 기능을 없앤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국가의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부부처를 없앤다고 표현하는 자체가 얼마나 가벼운 인식인가. 또한 부족하나마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묵묵히 교육행정에 헌신해왔을 교육관계자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주는 언행인가.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4차산업혁명시대, 교육의 혁신은 피할 수 없는 과제
물론 입시제도를 포함 대한민국 학교교육 자체는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 많다. 그러나 산업혁명 시대의 적합한 인재양성을 위해 고안됐다는 지금의 교육방식으로부터 전세계를 휘몰아치고 있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적합한 인재상인 개성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교육제도의 혁신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최종학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학벌중심사회에서 개인이 보유한 능력으로 평가를 받는 사회로의 획기적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학교 교육은 단순히 지식전달에만 그치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향후 성인이 돼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한 책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사회는 그런 교육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얼마전 넷플릭스의 <소년심판>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 소재가 거의 실화라는 이야기에 아연실색했다. 도무지 나이 어린 촉법소년들이 저지른 범죄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잔인하고도 비열한 범죄사례들이 소개되고 있고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도 스스로의 범죄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며 우리사회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했다.
일본도 과거에 지금의 한국처럼 학력중심의 시대가 있었다. 학생들은 무한한 경쟁속에 휘말려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이러한 고통으로 인해 청소년의 극악무도한 흉악범죄가 사회적 문제화됐던 시기 역시 있었다.
일본은 이러한 사건들을 계기로 더 이상 젊은 이들을 무한경쟁속으로 밀어 넣지 말자며 1980년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위 '유도리교육'을 실시했다. 유도리교육은 말 그대로 교육과정을 느슨하게 교과내용을 축소해 적게 가르치고 가급적 경쟁을 시키지 말자는 정책이다.
지금은 이러한 정책의 효과로 학력사회에서 능력주의 사회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누구나 대학을 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많이 줄었다. 대학진학율도 2010년 56.4%를 정점으로 안정적인 추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기업들도 학력과 출신학교에 따라 급여와 승진 등에 필요 이상으로 반영해 차별하는 일도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초·중·고등학교 운동회에서 등수를 매기는 행위까지 금지하는 등 너무나 심하게 경쟁을 제한한 결과 오히려 건전한 경쟁을 통한 청소년의 성장을 저해하는 듯한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학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책임의식 저하로도 이어져 향후 국가경쟁력 향상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기류도 있다.
배우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공부가 아닌 오로지 생존을 위한 처절한 공부로 변질
필자는 한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테마로 강의를 한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의 동명의 책을 읽고 얻은 감상을 바탕으로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정리해 이야기한다. 오연호 대표의 저서는 북유럽선진국의 교육제도 등을 설명하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오연호 대표의 저서에서 초등학교부터 시험이 없는 나라, 성적을 매겨도 단순히 시험성적 하나만으로 매기는 것이 아니고 학교생활전반에 대한 종합적 평가로 성적을 매긴다는 이야기, 또는 그야말로 직업에 귀천이 없어서 청소부와 의사라는 직업이 사회에서 같은 위치로 존중 받는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부러웠던 기억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의 현실은 어떤가? 부모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비용 수준이 다르긴 하지만 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아이들을 좋은 대학 가야 한다고 여긴다. 그와중에 여가생활을 박탈하고 오로지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만들기 위해 부모들의 연간 소득의 절반을 쏫아 붓는다는 부모들의 광적인 교육열이 있다. 우리 아이들의 해맑은 영혼이 병들어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다.
소중한 어릴 적 추억과 청춘을 '공부'에 송두리째 빼앗긴 아이들이 대학에 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희생의 댓가인 걸까. 이번엔 대학 학비 마련에 부모의 등골이 휘고 아이들도 부모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아르바이트 하느라 학업은 뒷전으로 밀린다. 어디 그뿐인가. 이번엔 취업전선에 내몰려 좁디 좁은 취업의 문을 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도 수월치 않아 취업 재수를 한다고 또 다른 공부를 해야 하는 현실이다. 비참하지 않나.
초등학교부터 대학입시준비의 단계까지 단계별로 좌절하는 아이들이 생기고 취업에 좌절하며 결국은 이러한 세상을 원망하고 비관해 스스로의 생을 마감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이 '미친 교육'은 이제 멈출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뿐, 사람을 바꾸는 건 교육뿐
일본의 대학에서 일본인 학생들을 가르치며 늘 드는 생각이 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국가와 사회가 자라나는 미래 세대들에 대한 교육에 있어서 대한민국처럼 지나친 교육열과 지나친 경쟁 유도도 문제지만 일본처럼 미래세대 교육에 무관심하고 경쟁을 죄악시하는 문화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지 않는가. 휘어버린 소뿔을 바로잡겠다고 하다가 정작 소를 죽게 만든다는 의미의 '교각살우'라는 말처럼 교육을 혁신하기 위해서 교육부를 없앤다는 소리를 하기 전에 대한민국의 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교육체제와 교육과정이 필요한지를 논하자. 4차산업혁명의 바람이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 어떠한 인재를 길러낼 것인지를 먼저 진지하게 고민해 주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