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지방선거가 48일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여전히 선거구별 정수를 획정하지 못했다.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박홍근·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선거구 획정과 관련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쟁점이었던 기초의회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온도 차를 확인한 채 무산됐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이었던 '일부 지역 시범 도입'도 양당의 이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법안 처리를 약속한 15일 본회의까지 시간이 남아있지만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관련기사:
무산된 '정치개혁 입법', 이탄희·장경태 정개특위 사퇴 http://omn.kr/1yc0z ).
중대선거구제는 1개의 선거구에서 1명을 뽑는 국회의원, 지자체장과 달리 1개의 선거구에서 2~5명을 선출하는 제도다. 중대선거구제는 사표를 줄일 수 있고, 여러 정당이 의석을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도입된 제도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러 정당이 의석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해석해 중대선거구제를 반대한다.
군소정당의 난립일까?
기초의회는 중대선거구제를 따르지만 대부분의 선거구는 2인으로 3~4인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따라서 2인 선거구를 3인 이상으로 늘리는 것이 이번 논의의 주요 쟁점이었지만 일부 지역 시범 도입으로 논의가 그쳐 이번 지방선거도 사실상 2인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졌다.
2인 선거구는 보통 민주당에서 1명, 국민의힘에서 1명이 당선되기 때문에 '여러 정당이 의석을 나눌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의 장점이 빛을 보지 못한다. 소수정당의 후보들은 애써 지역구를 옮겨가며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3인 선거구를 찾아 출마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거대양당에서 최소 2명의 후보자를 출마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3인 선거구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간혹 같은 정당에서 2명 이상의 후보자가 출마하는 것을 보고 의아해하기 쉽상이다. 보통의 선거라면 각 정당 별 후보가 1명씩 출마하는데 기초의회 선거에서는 '1-가' 후보, '1-나' 후보, '2-가' 후보, '2-나' 후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 도봉구가선거구 시민들은 구의원 투표용지에 1-가 후보, 1-나 후보, 2-가 후보, 2-나 후보, 3번 후보, 6번 후보, 7번 후보 등 총 7명의 후보 가운데 1명에게 투표를 해야 했다. 다른 3인 선거구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쯤 되면 과연 중대선거구제가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봉구가선거구만 보더라도 군소정당의 후보(3명)보다 거대정당(4명)가 많았다. 물론 군소정당 후보가 더 많이 출마한 선거구도 있지만 군소정당에서 한 선거구에 복수공천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반면 거대정당은 대부분 복수공천을 한다. 사실상 군소정당의 난립이라기보다 거대정당의 난립인 셈이다.
국민의힘의 반대로 기초의회 중대선거구제 도입이 무산되자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은 "결국 양당 나눠먹기식 2인 선거구 폐지법이 무산됐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통과됐더라도 결국 양당 나눠먹기식 3인 선거구 또는 4인 선거구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거대정당이 복수공천을 금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홍준표 후보가 같이 나왔다면?
20대 대선은 득표차는 0.73%p로 역대 최소 격차를 기록했다. 박빙으로 치달았던 선거에서 만약 윤석열 후보와 홍준표 후보가 2-가, 2-나 후보로 등장했으면 어떤 결말을 나았을까? 아마 20대 대통령 당선인은 바뀌었을 것이다. 물론 대통령선거는 소선거구제이기 때문에 복수공천 사례는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만약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후보와 국민의힘 홍준표 후보가 당내 경선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면 각 정당의 당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을 것이다. 선거에서 표가 분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기초의회 선거에서는 버젓이 일어난다.
소선거구제와 달리 기초의회 선거에서는 2~4명을 뽑으니까 표가 나눠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는 주민과 당원들의 투표권을 무시하는 행위다. 같은 정당 소속의 후보들도 서로가 경쟁 상대가 돼 주민들에게 서로를 뽑아달라고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무엇보다 차별화가 없다. 같은 정당 소속의 1번 후보와 2번 후보의 공약은 아주 세부적으로 보면 다를 수 있겠지만 큰 범위에서는 차별점을 둘 수가 없다. 같은 정당 소속으로 당론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A정당을 지지하는 주민은 차별점이 없는 두 후보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빠지고, 정작 표는 분산되는 '이상한 투표'를 하게 된다.
중대선거구제는 여러 정당이 의석을 나눌 수 있어 다당제로 가는 방향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거대정당의 복수공천으로 인해 다시 양당제로 고착된다. 또 차별화 없는 후보들 가운데 투표하기 때문에 기초의회가 발전하지 못하고 이는 다시 주민들의 피해로 돌아온다.
거대 양당은 군소정당 난립을 핑계 삼아 중대선거구제를 반대해왔지만 이는 양당제를 견고히 하려는 핑계에 불과하다. 양당 나눠먹기식 선거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3인 선거구도 늘려야겠지만 복수공천이라는 거대정당의 '꼼수'도 없애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성윤씨는 미래당 서울시당 대표입니다. '정치권 세대교체'와 청년의 목소리가 의회에 좀 더 반영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2016년 12월 청년정당 미래당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을 맡았고, 2017년에는 만 23살의 나이로 1기 공동대표를 맡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