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리(64) 홍콩 전 정무부총리가 차기 행정장관 선거에 단독 출마하며 사실상 당선을 확정했다.
홍콩 정부는 14일 리 전 부총리가 행정장관 선거에 유일하게 후보 등록을 했다고 발표했다. 선거는 다음 달 8일 선거위원회의 간접선거로 치러진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1454명인 선거위원 가운데 최소 188명의 지지를 얻어야 후보 등록을 할 수 있다. 리 전 부총리는 당선에 필요한 선거위원 과반(728명 이상)을 뛰어넘는 786명의 지지를 얻어 후보 등록을 했다.
리 전 부총리는 과거 전력, 애국심 등에 대한 공직 선거 출마 자격심사위원회의 심사도 받아야 하지만 중국 중앙정부의 낙점을 받은 이상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
민주화 시위 강경 진압하며 중국 정부 신임 얻어
지금까지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일반 시민이 참여할 수 없는 간접 선거임에도 범민주 성향의 야권 후보가 출마하거나, 친중 진영 내에서도 치열한 후보 경쟁이 펼쳐졌으나 이번에는 리 전 부총리의 단독 출마로 끝났다.
선거법 개정으로 출마 자격 자격심사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야권 후보의 출마를 사실상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출마 의사를 밝혔다가 철회한 야권의 한 후보는 "홍콩 선거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됐다"라고 비난했다.
1977년 경찰이 된 리 전 부총리는 2017년 보안장관에 임명돼 2019년 반정부 민주화 시위를 강경 진압했고, 중국 정부의 신임을 얻어 지난해 6월 정무부총리로 임명됐다. 홍콩의 주권 반환 이후 경찰 출신이 홍콩 정부 2인자인 정무부총리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정부의 축복을 받는 유일한 후보인 리 전 부총리가 오는 7월 1일 행정장관으로서 취임 선서를 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주택, 보건, 무역 등을 총괄한 행정관료 출신인 캐리 람 전 장관과 달리 리 전 부총리의 법과 질서"라며 "홍콩이 중국처럼 경찰국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리 전 부총리는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12일 기자들에게 "안정적인 홍콩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있다"라며 "헌법상 의무인 홍콩 기본법 23조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라고 밝혔다.
보안법 제정 '천명'... 홍콩 시민들, 또 거리 나설까
기본법 23조는 홍콩 정부가 반역, 분리독립, 폭동선동, 국가전복, 국가기밀 절도 등에 대해 최장 30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이와 관련한 법률을 제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앞서 홍콩 정부는 2003년 홍콩 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다가 당시 50만 명에 달하는 시민이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이자 철회한 바 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2009년 직접 홍콩 보안법 제정을 강행했으나, 홍콩 정부가 더욱 포괄적인 자체 보안법을 제정하도록 압박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강경파인 리 전 부총리를 내세웠다는 평가다.
리 전 부총리는 "실용적이고 결과 지향적인 정부를 만들겠다"라며 법과 절차보다는 결과 위주의 정책을 펴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SCMP는 "지금까지 홍콩 보안법 위반 혐의로 170명이 체포되고 수십 명이 기소됐으며, 범민주 진영 시민단체와 언론 매체가 연달아 자신 해산했다"라며 "엄청난 수의 홍콩 시민이 다른 나라로 떠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홍콩 시민들은 자유가 줄어들고 있다며 불안해하고, 미국의 압박에 직면한 중국 정부는 교착 상태를 깨뜨릴 수 있는 강인한 인물을 선택하고 싶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비평가들은 리 전 부총리가 높은 불신 속에서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