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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비법'이 있어서가 아니다. 특별한 '한 방'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만이 무조건 맞는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엄마의 레시피는 나에게 오로지 하나뿐인 레시피이기 때문이다. 엄마의 일흔 살 밥상을 차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엄마의 음식과 음식 이야기를 기록한다.[기자말]
내게 봄은 쑥으로 온다. 쑥을 캐고 쑥국을 먹어야 비로소 봄맞이한 기분이다. 쑥을 캐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쑥을 캘 때면 상당히 겸손해진다. 일단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캘 때는 두 손을 다 써야 한다. 한손으로 대충 잡아 뜯었다가는 쑥잎만 뜯겨지기 일쑤고, 우악스럽게 잡아당기면 뿌리째 뽑힌다. 봄에 만나는 첫 어린 생명. 그 여리고 작은 풀이 신비로운 향기까지 겸비했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경이롭다.

캐온 쑥으로 쑥버무리를 해보았다. 쑥버무리는 결혼 후 알게 됐다. 시어머니 생신이 이맘때라 어머님은 쑥버무리 이야기를 자주 했다. 당신의 친정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이란다. 딸의 생일에 맞춰 별미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리라.

내가 아주 햇병아리 며느리였던 시절, 어머님에게 추억 음식을 선물해드리고 싶었다. 허나 쑥버무리를 만들어드릴 실력은 없어서 근처 떡집에서 쑥버무리를 사다드렸다. 어머니는 그건 쑥떡이지 쑥버무리가 아니라고 했다. 쑥버무리를 파는 떡집은 없는 듯 했다. 쑥대머리도 아니고 쑥버무리.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일부 지역에서는 '쑥털털이'라고도 한다).

봄 식탁을 풍성하게 해준 쑥버무리
 
 엄마가 만들어주신 쑥버무리
엄마가 만들어주신 쑥버무리 ⓒ 안소민
 
쑥버무리는 말 그대로 쑥과 멥쌀을 버물버물 버무려서 쪄서 먹는 떡이란다. 쑥버무리는 얌전스럽게 솜씨를 발휘해서 온갖 재료를 다 준비해서 만드는 제사용 떡과는 다르다.

지천으로 널린 쑥을 다양하게 먹기 위한 별미처럼 쓱싹쓱싹 만드는 즉석용 떡이면서, 먹을 게 궁핍하던 시절 쑥으로나마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자 했던 밥 같은 떡이기도 했다. 몇날 며칠 동안 얌전 내고 솜씨 자랑하는 떡과는 다르다.

얼마 전, 엄마에게 쑥버무리를 배웠다. 멥쌀을 갈아서 쑥과 버무려서 쪄내기만 하니 참으로 간단하다. 얼핏 보면 라면 끓이기보다 더 쉬운 것 같다. 하지만 그리 만만할 리 없다. 일단, 쌀가루와 쑥의 배합이 중요하다. 쌀가루가 지나쳐서 그 속에 쑥이 묻혀서도 안 되고 쑥이 너무 많아서 질감이 너무 강퍅해져도 안 된다.

그리고 간도 중요하다. 너무 달면 쑥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적당히 달아야 한다. 늘 '적당히'가 어렵다. 물론 달게 먹고 싶다고 하면 설탕을 더 넣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다.

4월이면 생각나는 '엄마들'
 
 흰 멥쌀가루가 마치 쑥 위에 내린 눈같다. 봄눈이야 곧 녹는다지만 엄마들의 마음은 언제 녹을 수 있을까
흰 멥쌀가루가 마치 쑥 위에 내린 눈같다. 봄눈이야 곧 녹는다지만 엄마들의 마음은 언제 녹을 수 있을까 ⓒ 안소민
 
쑥버무리는 '엄마들을 위한 떡'이다. 자식들에게 뭔가 하나라도 더 별미를 만들어 먹이고 싶었던 엄마 마음. 몸도 마음도 바쁘지만 손을 조금 더 빨리 놀려서 자식들 입에 봄향기를 입에 넣어주고 싶었던 엄마들의 설렘이다.

쑥버무리는 엄마가 늘 만들어주는 집밥처럼 평범하지만, 입 안에 들어온 예사롭지 않은 향기로 주변 풍경은 특별해진다. 흰색과 쑥색의 단조로운 듯 은은한 색깔의 배합도 요란스럽지 않다.

엄마와 음식을 만들면서 주로 엄마의 가족 이야기나 엄마의 지나온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이번에는 또다른 '엄마들' 생각이 났다. 4월이면 더욱 생각나는 엄마들이다. 8년 전, 돌아오지 않는 새끼들을 기다리며 담요를 뒤집어쓰고 참척의 고통에 달달 떨었던 엄마들. 그들을 생각하면 어찌 이 봄을 화사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쑥과 흰쌀가루가 섞인 쑥버무리는 쑥 위에 내린 4월의 눈 같다. 봄인 듯 하지만 아직 찬 서리를 맞고 있는 쑥. 봄눈이야 봄눈 녹는 듯 금세 녹는다지만 마음에 내린 눈이 어찌 금방 녹을 수 있을까. 4월의 엄마들은 8년이 지나고, 또 봄을 맞았어도 차가운 눈을 머리에, 가슴에, 두 눈에 얹고 있을 것이다. 이 봄이 되면 봄 향기를 입에 넣어주고픈 자식들 생각에.

그래도 그들의 삶에 쑥버무리 한 입 만큼의 봄향기가 맴돌았으면 좋겠다. 꽃가루 분분히 휘날리는 봄바람까지는 아니어도 손바닥만 한 햇볕 한 줌, 훈풍 한 줄기라도 엄마들의 자리를 늘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정선환 여사의 쑥버무리]

1. 쑥을 다듬을 때 쑥대를 너무 자르지 않고 다듬는다. 쑥대가 있어야 쌀가루와 잘 비벼지기 때문이다. 다듬은 쑥은 물로 헹궈 물기를 살짝 뺀다.

2. 멥쌀은 전날 반나절 정도 물에 불려서 물기를 뺀다. 물기 빠진 쌀은 곱게 빻아서 쌀가루로 만든다. 물에 불려야 쌀가루가 더 포슬포슬하고 잘 분쇄된다. 쌀가루가 없을 때에는 밀가루를 쓰기도 한다.

3. 쌀가루와 쑥의 비율은 3:1 정도나 2:1 정도가 좋다. 쌀가루에 소금 0.7스푼 가량을 넣는다. 쑥에도 소금 0.3 스푼, 설탕 1스푼 가량 간을 한다.

4. 볼에 쑥을 넣고 쌀가루를 뿌려가며 살살 섞어준다.

5. 찜기에 젖은 면포를 깔고 쌀가루를 묻힌 쑥을 펴서 넣는다. 이때 남은 쌀가루도 살살 뿌려주며 섞는다. 기호에 따라 쑥 위에 삶은 팥도 올려준다. 이때 팥은 소금을 약간 넣고 찐 상태다.

6. 쑥을 면포에 올릴 때 가운데 부분은 살짝 벌려둬서 도너츠 비슷한 형태로 만든다. 가운데를 살짝 벌리는 이유는 증기가 잘 올라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7. 끓고 있는 솥에 10~15분 정도 쪄낸 뒤, 잠시 뜸을 들인 후 접시에 낸다.

#쑥버무리#세월호8년#쑥#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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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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