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민간 지원단체로,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리산권 지역에서 직접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 모임, 공간,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글을 싣습니다.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편집자말] |
벚꽃이 피기도 전인 이른 봄, 경남 하동에 다녀왔다. 한 사람 한 사람 빛을 발하며, 모여 모여 열정을 불태우며 하동에서 살아가는 청년들, '지리산소멸단'을 동네책방 '시소'에서 만났다. 지리산소멸단의 운영팀은 네 사람(강희, 다은, 성훈, 경민)인데 이날 강희씨와 다은씨가 자리에 함께했다.
'카페하동'의 주인장인 다은씨는 유럽여행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가 여러 우연의 겹으로 하동에 정착했다.
"원래 살던 곳은 서울이었지만 그때 부모님께서 직업 때문에 하동으로 오시게 됐거든요. 그래서 저도 자연스레 하동으로 들어왔다가 우연한 기회로 카페까지 열게 됐어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유럽여행을 못가고 하동에 살고 있어요. 인생은 기니까요. 유럽 여행도 언젠가는 가게 되겠죠."
강희씨는 하동이 고향이다. 일찌감치 게임 프로그래머로 취직해 서울살이를 했었다.
"한 6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다가 20대가 가기 전에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치앙마이에 가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면서 외국 친구들이랑 창업을 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한 달 만에 돌아왔어요. 그러면서 고향에 왔는데, 와서 보니까 치앙마이만큼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희씨도 청년이 돼 돌아온 하동에서 작은 도넛카페 '달달하동'을 열었다.
함께 이야기 나누지 못한 다른 멤버 성훈씨는 '반달곰상회'라는 빵집을 운영하고 있고, 경민씨는 디자인스튜디오 '행동'의 디자이너다. 각자의 사업이 있는 네 청년의 모임은 가벼운 친목 모임으로 시작했다가 점차 공통의 관심사와 고민 속에서 함께 시도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만들어가는 사업체로 변화해왔다.
"서로를 알고 나니 함께하고 싶은 게 생겼어요"
"'섬지사(섬진강과 지리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라고 여기 오래된 시민모임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활동하는 분들께서 청년들에게 모여서 뭔가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 하셨어요. 처음에는 성훈이랑 제가 그 자리에 나갔던 거예요.
청년들이 모여서 앞으로 뭘 하면 좋을까 얘기하던 때에 제가 적극 주장했던 건 조건이나 특별한 목적 없이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시간 있는 청년들은 모여라'했고, 지금의 멤버들을 만났죠. 아무것도 안 하고 서로 놀면서 알아가는 시간이 1년 정도 됐던 것 같아요." (강희)
서로를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싶을 때쯤 서서히 함께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아이디어가 솟아났다. 만나서 영화를 함께 보자거나, 다큐멘터리를 보고 토론을 해보자거나 하다가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의 공모사업으로 지원한 '열정건강클럽'에서 본격적인 작당이 시작됐다.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에서 저희 카페에 홍보 포스터를 붙이러 오셨어요. 그래서 그때 지역의 시민공익활동을 지원하는 '작은변화 공모지원사업'을 알게 됐고, 멤버들과 상의했죠. 하동에는 놀 거리는 너무 없지만, 대신 자연이 너무 좋잖아요. 그래서 '열정건강클럽'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걷고 뛰면서 플로깅을 하겠다는 계획을 냈어요. 우리의 건강도 챙기고 하동의 자연도 지키자는 취지였죠. 감사하게도 지원을 받게 돼서 1년 동안 재미있게 활동했어요." (다은)
매주 월요일 저녁, 하동의 송림공원과 평사리 들판 등을 걷고 달리며 쓰레기를 주웠다. 혼자 보던 아름다운 하동을 함께 공유할 이가 생겼다는 것과 그 아름다움을 지키는 데 손을 보탰다는 뿌듯함, 도란도란 나누게 되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들이 이 모임에도, 각자의 삶에도 활력이 됐다.
경민씨가 직접 디자인한 열정건강클럽의 굿즈들은 하동의 다른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어 2차 제작까지 이어졌다. 제작한 티셔츠의 뒷면에는 하동의 청년들이 운영하는 가게의 로고들을 새겼다. 걷고, 쓰레기 줍고, 또래들의 가게를 홍보하고. 1석 3조를 노린 아이디어였다. 재밌게 놀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이 청년들의 '놀이'에는 항상 그게 어떻게 하동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으로 연결될까 하는 관심이 묻어있다.
"하동의 소멸 늦추거나 막을 수 있는 일 원해요"
"지원사업도 좋지만, 그게 끝나면 모임의 활력도 자연스레 떨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청년들이 스스로 청년 모임이나 지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해나가는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친목단체를 넘어서 어떤 조직이 될 필요가 있다는 게 저희의 결론이었어요. 그래서 우선 '지리산소멸단'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게 됐어요." (강희)
다소 파격으로 느껴졌던 '지리산소멸단'이라는 이름은 이들이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의도한 이름이었다.
"일부러 소멸이라는 단어를 부각해서 노출하고 싶었어요. 그래야지 지방소멸의 심각성이 더 인지될 테니까요. 정말 우리 지역이 소멸을 하기 직전인데 이렇게까지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저희는 심지어 여기서 가게를 하고 있으니까 그 문제가 더 생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청년들이 하동의 소멸을 늦추거나 없앨 수 있는 일들이 있으면 해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지역 문제들을 소멸시켜보려고요. 이름에 대해서 지역에서도 논란이 많았지만 그걸 계기로 저희가 하려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어요.
사실 하동뿐만 아니라 시골들이 다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하동에서 해결했던 문제를 다른 지역에도 적용할 수 있으면 너무 좋으니까, 그런 사례를 만들고 싶어요.
솔직히 하동이 고향인 제 입장에서는 하동을 힐링의 공간으로만 사용하고 사람들이 떠나는 게 불편했어요. 여기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하동이 고향인데 돌아오기 망설이는 청년들, 그리고 하동의 청소년들에게 더 집중하고 싶어요. 그들에게 하동에서 잘 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요." (강희)
하동에서 자랐고, 중학생 동생을 둔 강희씨는 멤버들 중 누구보다 하동의 청소년들에 '진심'이다. 하굣길에 지리산소멸단의 새 공간을 얻은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청소년들이 오며가며 지리산소멸단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하동에서의 다양한 삶을 상상해보길 바라는 마음.
"제가 청소년일 때는 청년들이 뭘 하는 모습을 잘 못 봤어요. 그래서 지금 청소년들에게 '맞아, 나중에 우리도 저 형들, 언니들처럼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어요. 그런 게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들이 해야 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강희)
이들의 모임이 지리산소멸단으로 새 단장하면서 처음 펼친 사업 '하동보물찾기'도 이런 맥락에서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새로 마련한 공간 '공간;소멸'에서 하동의 청년 소상공인들을 소개하는 팝업전시를 열고, 이들의 삶과 사업을 조명하는 인터뷰지를 발간했다.
"악양이나 면소재지에 사는 청소년들은 하동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알기 어렵잖아요. 차가 없으면 마음대로 다니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읍에다 그 가게들의 상품들을 다 모아서 주말 3일 동안 팝업전시를 한 거예요. 판매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전시를 보러 온 청소년들이 이런 청년들의 삶을 둘러보고 소감을 남기면, 전시 상품을 선물로 주는 이벤트를 했죠. 주말에는 PC방에 가려고 읍에 많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참여했어요." (강희)
'하동보물찾기'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과 청소년이 연결되고, 내심 서로가 궁금했던 하동의 소상공인 청년들은 한 권의 인터뷰지에 묶인 것을 계기로 내적친분도 쌓였다고. 지리산소멸단은 이 프로젝트로 기적을 울리고 이제 막 출발한 열차다. 앞으로 더 많은 연결과 확장을 꿈꾸고 있다.
"'다른 파도'를 일으키고 싶어요"
이들 중 강희씨와 경민씨는 이런 꿈들을 현실로 만들어내기 위한 본부로써 최근 '다른 파도'라는 회사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이 회사에서 열정건강클럽 등의 청년 커뮤니티 활동도 지원하고, 지리산소멸단 활동도 이어가면서, 로컬 비즈니스를 운영해나갈 계획이다.
다은씨가 운영하는 '카페 하동'은 처음에 '하동 같지 않은 카페'로 알려졌다. 하동에서 느낄 수 없는 도시의 멋과 맛, 분위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었다고. 지금은 오히려 어떤 곳보다 하동을 대표하는 사랑방 같은 카페가 되었다. 카페 하동이 주는 편안함 때문인지, 카페에 오는 손님들로부터 종종 하동살이에 대한 질문도 받아왔다.
"부동산 가도 집이 없다고 하니까, 하동에 오고 싶고 집을 구하고 싶은데 어떻게 구하는지 아시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진짜 많아요. 근데 저도 부모님이 구하신 집에 살고 있고, 실제로 어떤 도움도 줄 수가 없는 부분이더라고요. 그러면서 느꼈어요. '하동에 살고 싶은 사람은 있는데 주거 문제가 심각하구나' 하고요."
다은씨는 하동에 사는 삶이 만족스러운 만큼 더 많은 또래들이 하동에 와서 함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현실의 벽을 느낄 때가 많다.
"서울에 있는 제 친구들에게 '여기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네가 최초가 될 수도 있다. 하동에 와서 같이 살자'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제가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더 적극적으로 설득하기가 어렵죠. 그런 걸 군에서 많이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멸 예정 지역이라고 말만 하지 말고요. 청년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주거지원에 대해서 관과 청년들의 생각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공무원 분들과 계속 이야기 나누려고 하고, 저희가 잘 하는 모습을 보여서 진심을 전하려고 해요. 계속 저희 존재를 드러내고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저희라는 존재에 대해 잘 몰라서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는 부분도 상당히 크더라고요." (강희)
지리산소멸단이 앞으로 해나갈 사업들은 이렇게 하동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직접 느꼈던 '벽'들에서 출발했다. 지역민을 초대해 진행한 사업설명회를 통해 그 벽을 직접 돌파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후원과 도움을 청하자, 힘을 실어주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진짜 감사한 건 지자체보다 먼저 저희를 알아보고 기회를 주시는 어른들이 지역사회에 계셨다는 거예요. 지역에 비어있는 공간도 많을 텐데, 누군가는 건물을 관리해야 될 테고 사용할수록 가치가 생기기도 하니까, 노는 건물이 있으면 저희한테 한번 줘보시라고 제안했었거든요. 그랬더니 한 분께서 원룸 4가구가 있는 상가건물 한 층을 선뜻 저희에게 써보라며 무상으로 빌려주셨어요. 그래서 지금 그곳은 셰어하우스 운영을 준비 중이에요." (강희)
지리산소멸단이 '하동보물찾기' 팝업전시를 했던 공간은 청년들의 프로젝트 공간으로 대여할 생각이다.
"청년들이 저희한테 어떤 기획서를 보여주면, 공간을 무상으로 대여해서 실험을 해볼 수 있게 하려고 해요. 작은 시도를 통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요. 청소년들이 할 수도 있고요. 학교 축제는 1년에 한 번인데, 공간이 생기면 두 번도 해볼 수 있잖아요." (강희)
시장통에 구한 또 하나의 사무실은 공유 오피스로 오픈할 계획이다.
"사무실이 필요해서 계약을 했는데 거기는 원래 여덟 자리가 있던 커피숍이거든요. 근데 저희 구성원 네 명이 사용하면 네 자리가 남잖아요. 그래서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하동에 계신 분들께 자리를 대여해주면서 공유 오피스처럼 활용할 계획이에요. 자꾸 마주치고 부딪히다보면 또 새로운 일이 벌어지겠죠." (강희)
'얼기설기'라고 이름 붙였다는 공간은 공유 공방이 될 예정이다.
"여기가 정말 기반시설이 없다 보니까 많은 것들을 우리가 직접 만들어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재나 공구들을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임대했어요. 청년들이 창업을 할 때나 생활하면서 무언가 만들고 고쳐야 할 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거예요." (강희)
"제 경우에도 처음에 카페 오픈을 준비하면서 인테리어랑 공사를 도대체 어디에 맡겨야 되는지가 제일 큰 고민이었어요. 막막한 순간에 운 좋게 한 목수님을 소개받아서 카페를 예쁘게 꾸밀 수 있게 됐는데, 하동에 처음 와서 공간을 꾸미고 싶은 사람들한테는 얼기설기 같은 공간이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도 있고, 서로 여러 정보를 소개하고 나누면서 정착을 돕는 플랫폼이 되면 좋겠어요." (다은)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내려고 열정건강클럽에서 체력을 먼저 길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진 네 사람의 쿵짝이 잘 맞으니 절로 생기는 에너지도 무시할 수 없다.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열정이 하동에 새로운 파도를 일으키고, 그 파도를 타고 오는 이들이 하동을 오래도록 사랑하고 지키며 살아가는 '일촌'으로 맺어지길 기대해본다.
글 | 푸른
사진 | 임현택
기획/진행 | 누리
Author 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