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아들의 '논문 실적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고등학생의 해외 논문 투고가 입시를 위한 전략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나와 화제다.
'학술 지식 큐레이팅 미디어'인 언더스코어의 강태영 대표와 강동현씨(시카고대학교 사회학 박사과정)이 2001년부터 2021년 사이에 국내 213개 고등학교 소속으로 작성된 해외 논문을 558건(980명 작성)을 전수 조사했다(
[전문] 논문을 쓰는 고등학생들에 대해 알아봅시다 https://bit.ly/3uNpJBf).
그 결과 고등학생 시절 해외에 논문을 투고한 학생 중 67%가 논문 출간 이력이 1회뿐이고, 이후에는 논문을 쓰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2014년 학생생활기록부에 논문 등재를 금지시키자, 논문 수가 급격히 감소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컴퓨터공학, 의학 등 표준적인 이공계 중등교육 과정과는 거리가 먼 분야에서 논문을 작성한 사례들도 다수 존재했다. 이는 순수하게 탁월한 학생들의 연구를 통해서만 해외 논문이 나온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걸 보여준다.
의심스러운 고등학생들의 논문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유에 대해 연구진은 "지난 몇 년 간 고등학생 논문 관련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대학원생 대필, 유료 작성대행, 친인척 인맥을 활용한 품앗이 등 다양한 관행이 밝혀졌다"라며 "해외 논문 투고 이력이 있는 학생들, 일반적으로 이런 유형의 학생은 대학 진후에도 논문 작성을 계속한다. 그렇기에 다음과 같은 해당되는 패턴이 관찰된다면 고등학생들의 해외 논문 작성 사실은 (대필이나 조작이) 의심스럽다"라고 강조했다.
- 해외에 논문을 투고한 고등학생들의 수가 지나치게 많음
- 고교 시절 첫 논문 작성 후,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도 학술 활동이 전무함
- 이공계 중등교육 핵심 과정인 자연과학(물리학, 수학, 화학, 생물학 등) 분야를 벗어난 논문의 비중의 지나치게 높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저자들 중 약 67%가 논문 출간 이력이 1회였고, 2회인 학생은 13%였다. 그러나 연구진은 "해외 데이터베이스(Microsoft Academic Graph, MAG) 특성상 한글 저자 매칭을 하지 못해서 동일 저자로 취급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역시 보수적으로 계산된 수치"라며 "대부분의 학생 저자들은 단발성 논문만을 작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다.
또한 2014년에 학생생활 기록부에 논문 등재를 금지시킨 이후, 2015년부터 논문 수가 급격히 감소됐다. 영재고의 경우 논문 작성량이 일정 수준으로 유지됐지만, 자율고·외국어고·일반고의 경우 급격히 감소했다.
학교 유형별 논문 출간 분야를 살펴보더라도, 영재고나 과학고의 경우 기초 과학인 화학·재료과학·생물학의 세 분야가 가장 많았고, 의학이나 컴퓨터 공학 논문의 비중은 10% 이하였다. 반면 자율고·외국어고·일반고의 경우, 컴퓨터공학이 27.4%로 그 비율이 가장 높았고 생물학, 화학이 그 뒤를 이었다. 의학 분야 논문 역시 13.6%로 4위를 차지했다.
연구진은 논문 공저자 네트워크를 살펴보면서 특이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아래의 주황색 클러스터와 같이 고등학교 소속의 저자들끼리만 공저자 네트워크가 구축됐고, 클러스터의 중심부에 한 고등학교 교사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해당 논문들은 표면적으로는 국제 행사이고 영문 발표문을 게재하지만 실제로는 매해 한국에서만 개최되는 학회에서 발표한 것이거나, 논문이 발표된 학회 자체의 공신력이 다소 의심되는 경우도 있었다.
"컴공·의학 해외 논문, 교육 과정상 납득 어려워"
강태영 대표는 1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일부 언론 보도에서는 주로 67% 논문 작성에 집중했다. 하지만 2014년 정책이 바뀐 이후에 논문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컴퓨터공학이나 의학 등의 분야에서 논문이 발표되거나 '입시지도'를 통한 논문 투고가 이뤄진 정황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한 해 50명씩 해외 논문 저자가 나오는 것은 이상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며 "특히나 특정 유형의 학교(자율고·외국어고·일반고)에서 다른 유형의 학교들과 달리 컴공이나 의학같은 분야의 해외 논문이 많이 나오는 것은 교육 과정상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않은가"라고 설명했다.
논문 심사 과정도 거의 생략되고, 게재료만 지불하면 출간을 허용하는 학술지인 약탈적 저널(predatory journal)에 출간되었는지의 여부를 추가적으로 확인하고 있다는 강 대표는 "약탈적 저널 게재 비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학술지 등급이 q1, q2(SCImago Journal & Country Rank 기준)처럼 좋은 저널에 게재된 경우가 더 많은데, 이를 모두 '천재'들이 썼다고 볼 수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의심스러운 지점이 있는 '논문 공저자 네트워크'에 대해서 강 대표는 "네트워크 구조만으로 단정지을 순 없다. 하지만 학생 다수에 교수가 하나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공저자 네트워크인데, 학생들끼리만 있거나 거의 다 교수인데 학생이 하나 껴 있는 공저자 네트워크는 조금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강 대표는 "데이터를 통해 증거를 여러 개 제시했지만, 분명 데이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라며 "이제 언론이 구체적인 케이스를 찾아서 취재해야 할 차례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