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하반기. 다니던 회사에 건강상의 이유로 휴직을 신청했다. 무엇을 위해 오랫동안 망설였나 싶을 만큼 휴직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0년 넘게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매일 가야 할 곳이 없어지니 몸이 편한 것도 잠시,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에 존재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인터넷 검색창에 '30대 휴직자', '휴직자 모임' 등의 검색어를 수없이 입력했지만,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평일 낮에는 카페에 가도, 공원에 가도, 도서관에 가도, 시장에 가도 나 같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공부하는 학생들,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아니면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 나는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소수로 느껴졌다. 영화 <어바웃 어 보이>의 대사처럼 모든 사람은 섬 같은 존재지만, 나는 그 어떤 곳과도 연결되지 않은 외딴 섬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내게 갑자기 주어진 자유 때문이라 생각하며, 출근하면서 하지 못했던 새로운 활동에 도전하는 것으로 넘치는 시간과 마음을 다스리기로 했다. 새로운 취미활동의 조건은 두 가지였다. 우선 내게 익숙하지 않을 것, 그리고 일처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를 지치게 하는 활동이 아닐 것. 까다롭지 않은 기준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일을 찾으려니 쉽지 않았다.
첫 번째 도전은 12주 과정으로 도서관 문화강좌에서 배우는 그림 그리기였다. 학창 시절에 딱 한 번 '미'를 받았던 과목이 미술이었다. 수학을 좋아했던 내게 정답이 없는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는 너무 고역이었다. 20년 만에 용기를 내어 색연필로 그림 그리는 수업을 신청했다.
평일 오후 문화교실에 오는 사람 중 30대로 추정되는 이는 나 혼자였지만, 그래도 일단 나갔다. 금전으로 투자해야 꾸준히 할 것 같아 전문가용 스케치북, 연필깎이부터 48색 수채색연필까지 풀 세트를 장만했다. 마흔여덟 가지 색이라니, 내가 태어나서 가진 것 중 제일 화려한 도구였다.
크레파스, 사인펜, 포스터물감, 색연필까지 모두 언니가 쓰던 것을 물려받았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24색, 36색도 아닌 48가지의 색연필이 가지런히 든 깡통을 새로 샀던 날,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희열을 느꼈다. 스케치북과 색연필 통을 학생처럼 소중히 품에 안고 매주 한 번 그림 그리러 가는 일 자체가 내게는 기쁨이 되었다.
그림 수업 첫날. 예상대로 강의실에는 이미 수업을 오래 들어온 소위 '고인물 수강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처음 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 4명이었다. 선생님은 그 4명을 제일 앞자리로 앉힌 후 서로 도와주며 잘 지내라고 하셨다. 애초에 친목이 아니라 그림만이 목표였던 나는 그 모임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다들 그리기보다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 수업에 오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그 속에 조용히 그림자처럼 앉아 그림에 집중했다.
사각사각, 색연필이 스케치북을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나눠주는 도안을 열심히 따라 그렸다. 엄밀히는 내가 그린다기보다 종이에 대고 그리기에 가까웠지만, 기초가 전혀 없는 내게는 다행이었다. 도안이 복사된 종이 뒷면을 4B연필로 검게 칠한 뒤, 도안의 선을 따라 그리면 내 스케치북 위에 그럴듯하게 색칠할 수 있는 그림의 바탕이 만들어졌다. 그 테두리 안은 내가 상상하는 대로 마음껏 색칠하면 되었다.
가끔 그림 그리기가 두려워지는 날은 과감하게 결석도 하며 12주를 보냈다. 다음 과정을 이어 들을지 고민하던 차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수업이 중단되었다. 같이 할 사람이 없으니 자연스레 나의 색연필도 하던 일을 멈추었다. 다른 시도가 필요했다.
다음으로 시도한 것은 한 도서관에서 하는 12주 과정의 비대면 글쓰기 수업이었다.
첫 수업에서 왜 글을 쓰려는지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수강생 중에는 오랫동안 브런치 앱에 글을 썼다는 분도 있었고, 자녀분이 신청해 주셨다는 분도 계셨다.
당시 내 각오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혼자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새로운 취미를 갖고 싶어서'라는 마음이 컸다. 내가 좋아하는 정여울 작가는 '너무 외로워서 글이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기성작가의 말을 빌리는 것이 적절할까 싶지만, 글쓰기의 출발점이 된 그 마음만큼은 나와 비슷했다.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를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라고 설명해 왔는데, 수업이 시작되고 매주 과제로 글을 쓰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끊임없는 생각을 글로 풀어내어 미지의 독자에게 전달하는 일은 어려웠다. 생각이 부족한 것인지, 글로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무리 써도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수업에서 배운 것 중 '에세이는 일상에서 건져 올린 나만의 생각이 담긴 글'이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를 포함해 수업을 함께한 글쓰기 동료들은 여러 주제로 글을 쓸 때마다 '이렇게 솔직하고, 이처럼 구체적'이어도 되는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이 주제를 두고 이렇게 쓰면 에세이가 아니라 일기나 신변잡기가 되지 않을까, 12주간 글을 쓰며 나에게 끊임없이 했던 질문이다.
내가 쓴 글을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보였다. 온라인으로 만나 서로의 목소리와 상반신만 알고 지낸 사이지만, 솔직하게 자신만의 이야기와 주장을 담은 글에는 쉽게 몰입하게 됐다.
글을 읽고 이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 느낄 만큼 뚜렷하고 솔직한 글, 그런 글이 타인의 공감을 얻고 계속 읽힌다는 것을 배웠다. 아, 이래서 글을 쓸 때는 나를 더 드러내고, 나를 둘러싼 껍데기를 벗어던져야 하는 거구나.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 두 가지 수업을 듣는 동안 여름부터 봄까지 사계절이 지났다. 수업이 진행되는 각각의 12주 동안 몇 번씩은 결석도 했다. 취미인데 너무 잘 하려고 애쓰지 말자 했으면서도, 늘 잘하고 싶어 하는 자아가 튀어나와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초심을 떠올리며 아예 수업을 포기하고 다른 일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휴직자가 된 나, 그런 나와 비슷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듯한 외로움에서 비롯된 새로운 취미 찾기.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정에서 나는 고요히 혼자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이 글을 쓰며 결국 내게는 함께 할 사람이 필요했음을 깨닫는다. 다른 삶을 살았지만 나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친구 같은 존재 말이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때, 나는 사람들과 있어도 혼자인 것 같아 외로웠지만 생각해보면 혼자가 아니었다. 글쓰기 수업에는 꾸준히 같이 글을 써서 나를 자극해 준 동료들, 매주 한 명씩 피드백해 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그림 수업에서는 매번 말없이 그림만 그리는 내게 애써 말 걸지 않고 그림만 알려주신 선생님, 내가 결석한 다음 주에 가면 전 시간에 나왔던 그림 도안을 사진 찍으라며 슬쩍 내밀던 옆자리 짝꿍이 있었다.
평화롭지만 외로운 이 섬에서 오늘도 나는 문장을 다듬고 스케치를 거듭하며, 글과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조금씩 나아간다.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 산다면, 그것은 나의 의지에 달린 것이기도 하지만 나와 함께 하며 공감해 준 사람들 덕분이기도 하다. 대단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쓰고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나의 흔적이 언젠가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 작은 위로로 전해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