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5시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를 위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한 국회 본회의가 시작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해당 개정안들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다수당으로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입법을 처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윤석열 당선인이 취임 후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국민투표 부의권'을 활용해 법안 폐기 수순을 밟을 수 있다는 취지다. 헌법 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물론, 국민투표 결과가 곧 법안의 폐기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다만, 윤 당선인 쪽은 투표 결과 검수완박 입법에 대한 반대 의견이 더 많다면 '국민 뜻'을 발판으로 국회에 해당 법안들에 대한 폐기 혹은 재개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27일) 오후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검수완박 입법은) 대한민국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로써, 차기 정부와 의논을 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충분히 얻어서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면서 이같은 방침을 밝혔다.
특히 그는 "민주당 다수의 폭거에 대해서는 당연히 현 대통령(문재인 대통령)께서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하리라고 믿는다"면서 "그럼에도 현 대통령께서 민주당과 야합을 한다면 국민들께 직접 물어볼 수밖에 없지 않느냐, 국민적 상식을 기반으로 해서 헌법정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 비서실은 당선인께 (검수완박 입법 관련) 국민투표를 부치는 안을 보고하려 한다"고 말했다.
국민투표 시점은 6.1 지방선거와 동시실시하는 방안을 가안으로 제시했다. 장 비서실장은 관련 질문에 "(시점에 대해) 잠정적으로 검토는 계속해야 되겠지만, 비용적인 측면에서 지방선거 때 함께 치른다면 큰 비용도 안 들고 국민들께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인수위에 나와 있는 변호사들과 함께 의논해서 당선인께 보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새 정부 재신임 묻는 투표 될 가능성도
당선인 측의 국민투표 부의 구상은 여러 논란이 예상된다. '검수완박' 입법이 과연 헌법 72조에 명시된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되느냐는 공방부터,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권을 통해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담도 주요 관건이다. 6.1 지방선거의 경우, 기존 지방정부에 대한 평가와 인물론 등이 주된 전선이 될 수 있지만 '검수완박' 입법 폐기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는 사실상 출범한 지 1달도 채 안 된 새 정부에 대한 재신임 성격을 띄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를 봤을 때도 국민투표 결과를 확언하기 어렵다. 지난 21일 발표된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선 검찰 수사권·기소권 분리 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50%, 찬성 의견이 39%로 나타났다. 당선인 측에서 내심 반길만한 결과다.
그러나 윤 당선인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역대 대통령과 비교할 때 낮은 점은 위험요소다. 당장 지난 25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윤 당선인 국정수행 긍정전망은 전주 대비 1.2%p 하락한 49.8%를 기록했다. 부정전망은 44.8%였다(위 해당 조사에 대한 자세한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당선인 측이 '검수완박' 입법을 "다수당의 폭거" 혹은 "의회독재"라고 몰아붙이는 배경도 이러한 논란과 위험부담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장 비서실장은 이날 "늘 인수위가 만들어지면 국회나 현직 대통령께서도 인수위의 어떤 국정과제를 만들고 하는 방향에 대해 존중했다"며 "그런데 차기 정부가 탄생했는데도 완전히 무시하고 국회에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의회독재를 한다면, 당연히 그것은 국민들께 직접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 "미국이나 영국은 형사사법체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50년, 100년 간 국민적 동의를 구하고 함께 검토하고 머리를 맞댄다"며 "국회의원 몇 명 더 있다고 이렇게 졸속으로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헌법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우기기, 당장 국민투표 실시 불가능"
그러나 정의당은 이날 당장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이 중요정책인 것은 맞지만, 외교·국방·통일과 같은 (성격의)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라 한다면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우기기'"라고 질타하고 나섰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국민의힘이 의원총회까지 열어서 추인하고 합의한 내용(중재안)을 뒤집은 것 아니냐. 그래놓고 국민투표 운운하는 것은 대의민주주와 국회의 역할을 진중하게 고민하지 않는 태도"라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특히 "국민투표법은 지난 2014년 국내 거소 신고가 안 된 재외국민 투표권 행사를 제한한 법 제14조 제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바 있어서, 지금 상태로는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없다"며 "이런 내용을 몰랐다면 비서실장으로서 자격 없음을 드러낸 것이고, 알았다면 극단적인 대결을 조장하는 아주 나쁜 정치 선동"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