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잠시 나갔다 올게요."
"금방 나갔다 오지 않았어?"
"생리가 갑자기 터져서요. 보건실 가서 수습해야 할 것 같아서..."
말이 나옴과 동시에 얼른 주변의 남학생들 시선을 살폈다. 남녀 공학에 남녀 합반 교실이었다. 또렷하게 들리는 '생리가 터졌다'는 말에 우선 당황했다. 여학생 대부분은 귓속말을 하거나 조심스럽게 얘기하는데 그 학생은 너무도 분명하게 내가 금기어라고 생각하는 그 단어를 당당하게 내놓았다.
술렁거리거나 지들끼리 이상한 반응을 주고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교실은 차분했다. 당황한 채로 얼른 다녀오라고 서둘러 그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나가게 했다. 그 학생이 나가고 다른 여학생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을 뿐, 교실에서 당황한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월경을 월경이라 말하지 못하고
사실 우리 가족은 가족끼리도 이런 주제에 대해 말하는 걸 조심하는 편이다. 조심한다기보다는 혼자 품고 고민하고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건강에 관해 불편한 몸의 상태를 예민하게 받아들여 의논하거나 자유롭게 주고받지도 않는다.
더구나 월경 문제는 딸과 엄마만의 은밀한 대화의 영역이라고 치부했다. 건강을 위해 꼭 알아야 하는 월경 양이나 주기, 월경 기간에 대해 대놓고 편하게 차분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신체의 비밀이고 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엄마의 마음을 파악해서인지 딸도 깊이 질문한 적이 없었다. 엄마와 딸 사이임에도 쉽게 말을 꺼내는 것을 어려워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지금은 완경이라고 지칭하는 나의 폐경도 아무도 모르게 혼자 고민하며 지나갔다. 몸과 마음의 변화,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 등 다양하고 미묘하고 복잡한 변화가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 했고 편하게 상담하고 조언을 청할 상대가 없었다. 혼자서 몇 번 병원을 다녀왔고 폐경이 시작되는 것 같다는 진단과 호르몬제를 처방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세대가 내려갈수록 금기는 점차 사라지는 것 같고 차마 이야기를 꺼내지 못 했던 것들도 자연스럽게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분위기다.
최근 가수 미주씨가 코로나 후유증으로 두 달 동안 월경불순을 겪었다고 방송에서 말한 것이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젊은 여자 연예인이 남자에게, 그것도 유부남에게 월경이라는 금기어를, 그것도 방송에서 자연스럽게 꺼낸 것이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며 백신 접종이 월경과 관련된 부작용이 있다는 호소가 미국이나 영국에서 이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직 정확한 인과관계가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백신 접종과 월경 부작용에 대해서 당국이 자료를 수집하고 신고해서 그에 대한 인과관계가 있으면 이른 시일 내 안내하겠다"라고 오래전에 발표하기도 했다.
논란의 본질인 월경을 가지고 말한다면, 월경이 은밀한 것일까? 지구의 절반인 여성은 생애 중 약 7~8년을 월경으로 시간을 보낸다. 여성의 50% 이상은 극심한 월경통을 겪고 있고, 환경 변화로 인해 월경 통증의 정도는 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추세다. 인류의 절반이 겪는 고통을 은밀한 영역으로 감추는 것이 맞는 것일까? 어쩌면 이번 논란은 여성의 월경에 관한 고전적이고 완고한 생각들 때문에 불거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월경을 감출 필요가 없는 세상을 바라며
"오늘 그날이야?"
살면서 이 질문을 받아보지 않은 여성이 있을까? 이 질문에는 대개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왜 이렇게 예민해?" 혹은 "왜 이렇게 실수투성이야?"
전자는 사적 영역에서 후자는 공적 영역에서 듣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역경에 대한 여성의 반응을 정신 질환으로 보는 것은 여성 비하적이며 여성이 처한 사회 제도가 아니라 여성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 (로빈 스타인 델루카, <호르몬의 거짓말>
월경을 여성들의 말 못 할 고민이나 은밀한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PMS(premenstrual syndrome, 월경 전 증후군)은 여성이 월경이 시작되기 전에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만큼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증상과 기준도 명확하지 않지만, 경험하는 여성은 증상에 따라 5~95%로 광범위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거의 없기도 하고 거의 대부분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이전 세대에는 말도 꺼내지 못 했던 일련의 증상들을 이제 여성들도 겨우 알아가고 있는 중이고 함께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무수한 시간이 지나도 여성들은 여전히 이전 세대와 똑같은 변화를 겪어야 하겠지만, 월경을 월경으로 얘기하는 변화는 어쩌면 이제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게 당황할 이유도, 주변을 살필 이유도, 논란을 만들거나 지탄받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했으면 좋겠다. 질병이나 신체 변화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듯이. 모든 병은 알려야 고칠 수 있다.
아직까지는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 등에서 여성들의 월경 전 증후군 관련하여 공식적이고 체계적인 대응까지는 마련된 것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현재 중고등학교에서는 월경 전 증후군과 관련하여 일부 수용하고 있다.
여학생들의 월경으로 인한 지각, 조퇴나 결석은 한 달에 하루는 출석인정결석으로 처리한다. 월경으로 인한 복통이나 두통, 울렁거림 등의 증상으로 인해 시험에 집중하기 어렵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될 경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원하는 학생은 별도의 시험실에서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한다.
사회가 급변하며 여성들이 홀로 담당해야 했던 육아나 가사 노동에 대해서도 인식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 아빠의 육아가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있고 남편과 아내의 정확한 가사 분담이 요즘 세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여성의 월경에 대한 시각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혼자서 조용히 해결하고 누구나 겪는 특별할 것도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언제든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대처하고 상담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수업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아이들이 많다. 수업 자체가 배변활동이나 두통을 유발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생각한다. 이제 월경으로 인해 보건실 다녀오겠다는 말도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황하거나 놀랄 필요도 없을 것이고. 물을 마시거나 배변활동만큼 자연스러운 것이 여성들의 월경이고 그로 인한 여러 증상들은 은밀한 개인의 영역이 아닌 모두가 알아야 하는 이해의 영역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