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둘레길은 말 그대로 국립대전현충원의 외곽을 따라 크게 도는 길이다. 하지만 단순한 길은 아니다. 잘 보존된 현충원의 자연환경 속에 보훈이라는 정신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길은 수많은 대전시민이 찾는 사랑을 받는 휴식처이자 트레킹 코스가 되었다. 대전의 걷고싶은 길 12선에 꼽힌 보훈둘레길은 도보 산책을 하거나 사색하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트레킹을 하기 위해 전국 산악회에서 찾는다. 한해에만 100만 명의 사람들이 이 길을 찾는다.
보훈둘레길은 7구간으로 구분하여 빨강길(1.4㎞), 주황길(1.3㎞), 노랑길(1.4㎞), 초록길(2.2㎞), 파랑길(0.84㎞), 쪽빛길(1.4㎞), 보라길(1.5㎞)로 구성된다. 7가지 무지개 색깔로 명명을 해서, 일명 '무지개길'이라고도 한다. 2007년 9월 현충원 입구 주차장 쪽 매점에서 시작하는 1구간을 개척하기 시작해 2015년 11월에 8.2㎞로 1차 완성이 되었다. 2016년부터 제7묘역이 새로 조성되면서 초록길, 쪽빛길, 보라길을 연장해 총 10.04㎞에 이르게 되었다.
거리도 적당하고, 경사도 완만하고, 공기 좋고, 경치가 좋아 걷기 좋은 길로 소문이 나 시민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호국철도기념관, 소나무숲, 대나무숲, 전망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며 환경도 잘 보전된 곳이어서 자연 생태를 배울 수 있다.
보훈둘레길 조성을 시작한 때는 2007년으로 당시 권율정 대전현충원장은 "9월 27일 현충원 매점에서 시작해 1구간 빨강길, 2구간 주황길, 3구간 노랑길로 해서 마지막 구간인 보라길까지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1구간(빨강길)은 애초 대전현충원이 조성될 때 평지였다. 현충탑 등 공사를 하면서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이다. 묘역과 민간 주택지를 분리하는 산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길을 내면서 둘레길이 조성됐다. 오른쪽으로 장병 1묘역을 끼고 걸을 수 있으며 도중에 호국철도기념관도 관람할 수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약 2만여 명의 철도인이 조국수호 일념으로 군사 수송 작전에 참전해 287명이 순직했다. 또 1899년 철도 개통 이래 공무수행 중 약 2500여 명의 철도인이 순직했다. 호국철도기념관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한 철도영령의 숭고한 넋을 추모하고 철도 발전상을 알리기 위해 건립했다.
호국철도기념관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길게 뻗은 메타세쿼이아길을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초록으로 가을에는 붉은색으로 장관을 연출한다. 빨강길은 경사도가 아주 완만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코스 마지막 지점에는 '한얼지'라고 명명된 저수지가 있는데 백로와 흰뺨검둥오리 등이 한가하게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출발하는 2구간은 주황길이다. 독립유공자 제1묘역과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방향으로 걷다가 국가원수묘역 쪽 숲으로 접어들면 바로 대나무숲길과 이어진다. 이 숲길은 '청백리길'로 명명이 되어 독립지사들과 세계 유명인사들의 명언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지금까지 진행해온 평탄한 산책로와는 달리 산자락을 따라 오름길이 서서히 시작되고 제법 가파른 곳도 있다. 국가원수묘역을 끼고 장군 제1묘역으로 내려오면 보훈샘터가 나온다. 보훈샘터는 2015년 6월 10일에 준공했는데, 예전 이 지역 식수원이었던 곳을 찾아 샘터를 조성했다. 이 물은 365일 자연적으로 샘솟는 암반수로 둘레길을 걷는 이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
3구간(노랑길)은 순환 코스다. 오른쪽으로 돌든, 왼쪽으로 돌든 한바퀴 돌아 원점으로 회귀한다. 일반적으로 왼쪽 코스는 오르막으로 시작하고, 오른쪽 코스는 내리막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오르고 내리는 것은 어느 쪽으로 가든 똑같다. 왼쪽으로 접어들면 길 양쪽으로 대나무가 빽빽하게 솟아있다. 대나무숲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비석이 보이고 그 너머로 오래된 묘가 나온다.
둘레길을 돌아 반대쪽으로 가면 장병 제3묘역 쪽으로 보훈과수랜드가 있다. 이곳에는 앵두나무, 산수유, 매실나무, 감나무, 왕보리수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뽕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어 사계절 꽃과 열매를 볼 수 있다. 과수랜드에서 현충문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충혼지'라는 이름의 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백로와 왜가리의 물고기 사냥도 관찰할 수 있고 흰뺨검둥오리, 원앙 등이 한가하게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제4구간(초록길)은 개별 구간 중 가장 긴 코스다. 새로 조성된 장병7묘역을 끼고 북쪽 끝을 돌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기 그릇이 출토된 지역이 나온다. 예전에 사기 그릇을 제조했던 곳이다. 조금 지나면 보훈둘레길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계류가 나온다. 이곳부터는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된다. 둘레길 중 가장 힘든 코스다.
초록길은 대전현충원 내에서 위치상으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조망이 좋기 때문에 보훈전망대, 현충전망대, 호국전망대 등 전망대가 세 곳이나 있다. 전망대에 서면 대전현충원 일대가 환하게 조망되며, 한여름 시원한 바람이 불어 걷는 이들의 땀을 식혀준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묘역과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을 굽어보며 걷다보면 어느새 장병4묘역 북단에 도착한다.
제5구간(파랑길)은 채 1㎞가 안되는 가장 짧은 구간이다. 이 구간의 백미는 1004전망대다. 맞은편으로 갑하산과 두리봉, 신성봉 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운 좋으면 호기심으로 서성이는 고라니를 만날 수도 있다. 전나무 숲을 지나 피톤치드를 마시며 걷다보면 어느새 사병 제3묘역이 내려다보이며 구간이 끝나고 제6구간(쪽빛길)이 시작된다.
이 구간이 나뉘는 지점에서는 별도로 하산할 길이 없다. 쪽빛길을 걸어 소나무 숲을 지나 보훈정에 이르러서야 일반 도로로 나설 수 있다. 보훈정은 전망이 탁 트이는 곳으로 많은 이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경찰묘역을 지나면 보훈매점이 내려다보이고 2021년에 건립된 충혼당이 나타난다. 충혼당을 끼고 뒤쪽 산길로 돌아나가면 6구간이 끝난다. 쪽빛길은 봄에 걸으면 왕벚이 흐드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충혼당에서 후문 나가는 길목이 마지막 구간인 제7구간(보라길)의 시작점이다. 보라길은 가을에 걸으면 좋다. 시작부터 억새길이 반겨준다. 황톳길을 지나 오르막에 서면 아래로 현충지가 내려다보이고 맞은편에 현충탑이 우뚝하다.
붉은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현충지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작품을 찍기 위해 늘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보라길은 걷는 내내 붉은색으로 빛난다. 단풍길로 명명된 길을 황홀경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새 하천으로 내려선다. 이제 이 하천을 건너 올라서면 민원인 안내실이 나오고 보훈둘레길은 끝을 맺는다.
보훈둘레길을 걷다보면 꿩이나 까치, 까마귀, 오색딱따구리, 산비둘기 등 만날 수 있고, 다람쥐나 청설모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운 좋으면 사슴이나 고라니도 볼 수 있다. 길목 곳곳에는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놓아 수목을 공부하며 걷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봄, 여름, 가을에는 둥굴레, 각시붓꽃, 은방울꽃, 하늘말라리, 까치수염, 인동, 비비추, 용담, 상사화, 구절초 등 각종 야생화도 즐비하다.
또 보훈둘레길에서는 곳곳에서 양성평등화장실을 만날 수 있다. 여성과 남성 화장실을 7대3으로 건립한 화장실인데, 이팝나무화장실, 철쪽화장실, 진달래화장실 등 각종 수목을 화장실 이름으로 명명했다.
권율정 전 대전국립현충원장은 "직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예산을 들이지 않고 조성한 길이고 둘레길 통해서 시민들이 현충원을 찾아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고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미디어마당 사회적협동조합 누리집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