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역사가 90년 넘은 미국 그로셔리숍(미국 중서부 지역구 OO마트 격 되겠다)에서 스시 1+1 행사를 한다는 광고지를 보았다. 해초류, 생선 요리의 인기가 높지 않은 내륙 동네에서 흔한 일은 아니다.
노리 스시 캘리포니아 롤(Nori Sushi California roll), 노리스시 스파이이시 튜나(Nori Sushi Spicy Tuna)... 노리(Nori)는 김을 말한다. 이전에 썼던 기사(관련 기사 :
미국에서 BTS만큼 반가운 김, 이건 좀 아쉽네요)처럼 '김'을 영문 표기할 때도 고유명사 '김'이라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의 입장에선 '노리'라는 표현이 썩 내키진 않았다.
하지만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저녁식사가 귀찮은 마음 때문에 캘리포니아 롤을 사러 갔다. 정신없이 일하는 쉐프와 붐비는 손님들, 그 틈바구니에서 발견한 쌓여 있는 'Nori' 상자. 그리고 분명하게 보이는 SAHAGU, BUSAN. 사하구 부산... 이건 한국 김인데!
이쯤 되면 연락을 해봐야 한다. 개인적인 호기심, 국외자의 국뽕, 뭐든 좋다. 왜 우리 김이 노리 아니면 씨위드가 되어야 하는가. 마침 지난번 기사를 보고, 미국 코스트코에 김을 공급하는 회사와 연락이 닿았다. 회사 측은 후속 기사 취재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다음은 지난 4월, 메일로 해당 김 회사와 수차례 주고 받은 질의응답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김이 '씨위드'가 된 사연
- 미국 코스트코에서 한국 김을 구입할 수 있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코스트코에 김을 수출하게 되었나요?
"2011년 경에 미국 유통회사 코스트코 관계자들이 김 제조 업체를 물색하러 방한했을 때, 대기업을 포함해 국내 여러 김 제조 업체를 방문했고 그중에 우리 회사를 선택했습니다. 13년도부터 미국 내의 코스트코에 김 공급을 시작했고, 미국 내의 500여 개 매장에 조미김, 스낵김 등을 납품했습니다. 이를 발판으로 캐나다, 맥시코, 호주,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공급 국가를 늘렸습니다."
- 그런데 왜 김을 김이라 하지 않고 씨위드(Seaweed)라고 했나요?
"우리 회사는 코스트코에 PB형태로 김을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PB라는 것은 프라이빗 브랜드(Private Brand)의 약자입니다. 제조와 공급은 우리가 하지만, 제품에는 코스트코 커클랜드 시그니쳐(Kirkland Signature)라고 우리의 브랜드가 아닌 코스트코의 브랜드를 붙여 나가는 걸 의미합니다.
제품의 명칭이나 디자인을 정할 때 제조업체의 의견을 참고 할 수도 있겠으나, 브랜드가 커클랜드이므로, 당연히 출시에 대한 전권은 커클랜드에서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의 김이 해외에도 많이 알려졌습니다. 때문에, 'Gim' 표기에 대한 것은 향후 디자인이 변경될 때 제안하려고 검토하고 있습니다."
- 미국에 판매하는 제품은 김밖에 없나요?
"우리 회사는 '김' 외에도 '해초 샐러드'와 '유기농 김부각'도 함께 생산하여 코스트코를 통해 공급하고 있습니다. 현지 반응도 좋은데요, 최근 미국 텍사스에 사는 어린이 고객으로부터 김부각이 맛있다는 내용과 제품 아이디어에 대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유기농 김부각을 좋아해요! 유기농 김부각은 코스트코에서 샀어요. 제 생각에 유기농 김부각은 2개씩 팔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면, 코스트코에서 유기농 김부각 행사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 김부각이 얼마나 맛있는지 알게 될 거에요. 엘파소(텍사스의 도시)에서 제가 한번 소개해 볼게요! 저는 아주 열정적이고 유기농 김부각을 잘 알고 사랑하니까요. 그리고 제 경험도 공유할 수 있을거예요! '이것 좀 먹어봐! 네가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건 정말 너무 맛있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김부각 또한 'Seaweed Bugak Chip'(씨위드 부각 칩)이라고 표현했는데, 처음부터 Kim 혹은 Gim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 않았나요?
"어느 정도의 로컬라이징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스낵 코너에서 'Bugak'이라는 생소한 표기를 처음 마주할 해외 고객들의 이해를 돕도록 'Seaweed'와 'chip'을 사용했습니다.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한 서브 키워드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향후 대중적인 인지도가 쌓이면 'Seaweed'와 'Chip'은 빠지고 'Bugak'만 고유명사로 사용하는 것도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Bugak chip'의 경우 현재 코스트코를 통해서 판매되고 있으나, 이는 PB 상품이 아닌 NB상품, 즉, 코스트코의 제품이 아닌 우리 제품입니다. 'Bugak chip'이 인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 전입니다. 코스트코에 조미김 수출이 시작된 10년 전에 비해 최근에는 상황이나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덕분에 'Bugak chip'으로도 문제 없이 수출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습니다."
"K-푸드 위상 드높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
- Seaweed/ Nori라고 표현한 이름을 우리 이름 '김'이라고 변경할 계획이 있나요?
"과거 우리의 '김'은 수출이 거의 없었으나, 현재는 수산물 수출의 큰 폭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외신에 한국의 '김'이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더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K-팝, K-뷰티 등 K-문화콘텐츠 등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데 돌이켜보니 처음 '김'이 해외에서 붐이 일기 시작했을 때 미처 준비가 미흡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김 생산 3국(대한민국, 일본, 중국) 중에서 총 생산량의 55% 이상 점유하고 있어, 근래 들어 한국김수출협회에서도 이러한 차원에서 'GIM'으로 표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김 산업의 최대 수출국이자, 특히 대한민국에서 김을 제일 많이 수출하는 기업인만큼 관례화된 표기 방식을 개선하여 K-푸드 대표 수산물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건강한 식품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것이 소망이고, 우리나라의 전통 식품이 더 널리 알려져 많은 식품들이 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업체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명칭에 대한 의문점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협회와 업체의 빠른 결정과 행동으로 해외에서 노리나 씨위드가 아닌, 김(Gim)으로 만나는 날이 속히 오게 되길 바란다.
그나저나, 이제는 미국 코스트코에 내가 메일을 쓸 차례인가? 한국 기업처럼 열일하여 김부각을 전국 코스트코에 유통시켜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