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본인이 고문으로 활동한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의 일제 전범기업 및 가습기살균제참사 기업 변론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사회적 파장이 컸던 사건들로 익히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일들인 데다 해당기업들에 대한 변론에 나섰던 김앤장을 향한 비판여론도 거셌던 점을 감안하면, 이해하기 힘든 답변이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후 청문회에서 "김앤장이 때론 국민의 인권과 생명권, 건강권을 침해하고 공익과 국익을 저해하는 일을 다반사로 해온 곳이란 건 아시나"라고 물었다. 한 후보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어디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고 답했다. 이에 이 의원은 구체적인 설명을 이어갔다.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당시 법률대리인이 김앤장이다. 3500만 명의 개인정보 해킹 당했던 네이트 해킹사건 때 가해자 측 기업을 변호했고 외환은행 매각 당시 관련사(외환카드) 직원들을 문자 하나로 해고할 수 있게, '문자해고'를 처음 도입하게 한 것도 김앤장의 자문에 의한 것이었다. 김앤장은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노역 피해자에 맞선 (일본) 미쓰비시, 신일본주금 등 전범기업을 변호했다. 현재 누적 사망자 2만 명에 피해자만 95만 명에 달하는, '공기살인'이라 부르는, 가습기살균제사건에서 옥시RB 같은 기업도 변호했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불법조작 사건에선 폭스바겐을 대리했고 갑작스러운 화재로 운전자들을 위험케 했던 BMW 화재사건에서도 (김앤장은) BMW측을 대리했다. 모르셨나?"
한 후보자의 답변은 '몰랐다'였다. 이 의원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난 사건들이다"고 지적했을 땐, 한 후보자는 "그러나 거기(신문) 어디에도 그 사람들(기업)을 변호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란 건 거의 (기사) 안 난다"라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변호사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김앤장이 (해당 사건 관련) 기업들을 대리했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고 질타했음에도 "(김앤장이) 대리하고 있단 얘기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앤장의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사건' 변론이 법조계 일각과 시민사회의 논란을 사면서 대대적으로 보도됐던 점,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이 대한변호사협회에 관련 김앤장 소속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를 요청하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지난 2020년 옥시RB와 김앤장의 가습기살균제 참사 축소·은폐 의혹을 제기했던 점 등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이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이런 사안들을 모른다면) 후보자가 현안 파악 능력이 부족하거나 소통 능력이 부재하다는 것이고,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거라면 공직후보자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라며 "이걸 모른다는 자체가 놀랍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김앤장의 변론) 사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한 후보자는 답변하지 않았다. 그는 "제가 그런 특정한 케이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안을, 이 의원님 말씀에 따르면 김앤장에서 그 기업들을 변호하고 있다는데, 내용도 모르면서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를 말하는 건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면서 김앤장의 관련 활동에 대한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다음 질의 순번이었던 최강욱 민주당 의원은 한 후보자의 이러한 답변을 두고 "참 답답한 심경"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한 후보자에게 "누구보다 유능하고 영민하다고 알려지신 분이, 김앤장과 관련해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건들을 들어본 적 없다고 말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서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는 점을 성찰해보시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회전문 인사·전관예우 의혹 계속되자... "그렇게 좋다는 모든 걸 버린 것" 반박
한편, 한 후보자는 전관예우 성격으로 김앤장으로부터 고액고문료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은 강하게 부인했다. 한 후보자는 2002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김앤장에서 1년 간 재직했고, 다시 국무총리, 주미대사 등 고위공직으로 복귀한 바 있다. 또 2015년 한국무역협회장을 마친 뒤 2017년 12월부터 총리 후보자 지명 직전까지 김앤장 고문으로 일하면서 약 20억 원의 고문 소득을 올렸다.
그는 강병원 민주당 의원의 관련 질문에 "법률은 '공직 마치고 3년 내에 (관련 민간기업에) 가지 말라'고 하는 거다. (퇴임) 3년이 지난 사람은 그런 전관예우 가능성이 적어졌다고 우리나라 법률이 판단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강 의원이 "후배 공직자에게 직접 청탁전화를 하지 않아도, 후보자가 김앤장 고문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현직 공직자들이 설설 기게 된다"고 지적했을 땐 "저는 그 말씀에 동의할 수 없다"라고 일축했다.
강 의원이 "과거 관직 팔아 돈을 벌었다면, 최소한 다시 공직을 맡을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질타했을 땐 다소 감정적인 반응도 내놨다. 한 후보자는 "강 의원님, (제가) 그렇게 좋다는 모든 걸 버리고 총리지명 제의를 받아들인 것"이라며 "그렇게 말하시는 건, 나가셔도 한참 너무 나갔다"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