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은 이주민들이 살고 있을까요? 통계가 얘기하는 정확한 숫자까지는 몰라도, 엄청 많다는 것은 모두 실감하실 겁니다. 그리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이주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저도 요즈음은 꽤 많은 유학생들을 강의실에서 만납니다. 제가 있는 대학에서는 유학생만을 위한 새로운 전공을 만들 궁리도 합니다. 학생이 줄어드는 것을 만회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주민이 우리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문화사회'를 규정하는 총 인구 대비 이주민 5% 조건에 우리나라도 곧 도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주민은 노동(이주노동자)이나 공부(유학생)를 하러 한국에 옵니다. 결혼(결혼이주민)을 통해 오기도 합니다. 얼마 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예맨, 아프가니스탄 난민도 있지요. 같은 민족이지만 이주민으로 여겨지는 동포나 북한이주 주민도 있습니다.
이들 이주민은 어떻게 들어왔느냐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달라집니다. 들어오자마자 시민 자격을 얻는 이주민도 있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출국해야 하는 이주민도 있습니다. 또 결혼이주민은 '영주'하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상당 기간 영주권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이주민에 대해 말해 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들이 한국에 거주하는 이주민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국적 없는 사람들에게도 투표권 준 한국, 근데 왜?
그럼 이주민들은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을까요? 생명권이나 자유권을 포함한 기본권은 이주민이라고 해서 제한받지 않습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소위 '불법체류자', 올바른 표현은 '미등록이주민'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단속과 추방의 위협에 놓여 있어 안전한 삶을 누릴 자격이 박탈되기도 합니다. '합법' 이주민일지라도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것처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본권이 이럴진대 이 글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정치적 참여의 권리, 즉 참정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의외로 한국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국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정치적 권리를 주었습니다. 일본이 부인하는 재일조선인의 정치적 권리를 위한 측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이른 편이었지요.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적이 없더라도 영주권을 얻고 3년이 지난 '외국인'은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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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에게 선거로 대표되는 정치에 참여할 권리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꼭 공직선거가 아니더라도 지역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 과정(주민투표, 조례제정 및 개폐청구, 감사청구, 주민소환투표 등)에 참여하는 것도 정치적 권리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가운데 어느 것에도 이주민은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주민에게 아무런 정치적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저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주민권' 관점에서 본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
그렇게 주장하고픈 까닭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민주주의입니다. 인권에 민감한 다수 국가들은 사형제를 폐지했습니다. 우리도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이지요. 사형제를 반대하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흉포한 범죄자일지라도 제도로 국가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가능성을 열어 놓으면 위기의 순간에 이 여지가 엄청나게 커질 위험이 있습니다. 작은 구멍이 거대한 댐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주민의 정치적 권리에서도 마찬가지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주민이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성원 가운데 통치와 규율은 받으면서 그러한 규율을 정하는 과정에서 온전히 배제된 사람들이 있다면, 그 배제의 가능성은 언제든지 높아질 수 있습니다. 이런 우려가 아니어도, 민주주의의 발전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는 과정과 완전히 겹칩니다.
두 번째는 주민으로서의 이주민에 대한 관점입니다. 저는 이를 '주민권'이라고 이름 붙여봅니다. 주민으로서의 권리는 꼭 국적이 있는 국민이 아니라도,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한국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국적을 부여받고 국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누립니다. 일종의 자동 부여라고 할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어느 지역의 주민이 된다면 주민으로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누가 주민인가'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결혼이주민이나 몇 년씩 한 지역에 사는 이주노동자, 유학생 등을 주민이 아니라고 할 도리는 없습니다. 이들에게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우리가 직감적으로 느끼는 '옳다'는 감각에 더 맞지 않을까요? 주민권의 인정이 분열이 심한 우리 사회의 통합에도 기여할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네요.
건강한 지역사회 공동체의 유지를 원한다면
이주민의 참정권을 말하면서 또 '당위'에 머물러 있다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한 국가나 사회의 높낮이를 평가하는 여러 기준이 있지만, 그중 가장 마음이 가는 잣대가 있습니다. 바로 그 사회가 가장 약하고 보잘것없는 이들, 특별한 몫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런 사람들의 평안이야말로 그 사회가 가진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의 가장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이렇게 되묻고, 또 권유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역사회의 건강한 공동체 유지를 원하는지. 그렇다면 많이도 말고 한 걸음만, 아니 반보만 나서시지요. 그 시작을 우리 곁에 가장 약한 위치에 존재하는 이주민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으로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떤가요? 그 한 걸음이 이주민의 정치적 참여 권리를 옹호하는 정도까지 이른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1 2005년 8월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2006년 지방선거부터 영주권 취득 3년 이상 거주 19세 이상 외국인도 지방선거 투표권이 부여됐다
정부지원금 0% 참여연대 회원가입 덧붙이는 글 | 글 이용승 대구대학교 자유전공학부 부교수.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2년 5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문의 02-723-4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