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이설아씨는 입양을 통해 세 아이와 가족을 꾸렸습니다. 이씨는 입양 사후 서비스 기관인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를 이끌고 있기도 합니다. 5월 11일 입양의 날을 맞아, 이씨가 보내온 글을 싣습니다. [편집자말] |
며칠 전부터 둘째는 약간 들뜬 표정이었다. 무슨 옷을 입고 가면 좋을지 나에게 두어 번 물어보기도 했다. 자신의 입양 관련 정보를 직접 듣기 위해 나와 함께 입양기관 방문을 예약한 둘째는 마치 상견례 자리를 기다리는 예비 신랑처럼 설렘과 긴장 사이를 오가는 듯했다.
무언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는 현실에 혼자 싱글거리다가도 어떤 결과와 마주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으로 들어간다는 게 긴장되었나 보다. 며칠 동안 아이의 얼굴엔 여러 빛깔의 꽃이 피고 졌다.
입양 자녀가 자신의 입양 관련 정보를 더 알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생부모를 직접 만나고 싶다고 말할 때 입양부모는 슬그머니 긴장이 된다. 평소 아이와 입양 대화를 이어오며 언제든 네가 원할 때 함께해 주겠다고 진심으로 말해왔지만 막상 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여러 걱정이 밀려오는 건 아마도 사랑하는 아이의 '엄마'여서이지 않을까.
아이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아이의 기대가 무너지는 상황이 왔을 때 나는 그 마음을 잘 보듬을 수 있을까, 기관과 실무자의 태도가 너무 사무적이거나 무심해서 아이가 상처받는 것은 아닐까, 생부모에 대해 생각지 못한 정보를 전해 듣고 더 혼란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등 머릿속에서 소설 한 권 분량의 고민이 촤르르 넘어간다.
"둘이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좋겠어요"
지난 일요일 저녁 패밀리 타임에는 둘째의 입양기관 방문 소식을 시작으로 뿌리찾기와 재회에 관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생모에 관한 궁금증이 대부분이던 아이들이 커가면서 생부에 대해서도 궁금해한다.
자신을 빚어낸 이가 두 사람임을 명확히 인지하면서 아이들은 이제 한 쌍으로 그들을 궁금해하는 것 같다. 감정의 농도로 보자면 생모 쪽이 훨씬 깊지만 생부도 엄연히 그들 안에 존재하는 사람이 되었다.
"생부와 생모 둘이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좋겠어요."
큰딸과 둘째가 말했다. 비록 양육하지는 못했어도 자신을 잉태했을 때 두 사람이 사랑하는 사이였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신의 탄생이 한순간의 실수가 아닌 사랑의 결실이길 바라는 아이들의 마음.
뿌리 찾기 과정에서 혹여 이 당연한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되는 건 아닐까 슬그머니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걸 붙잡으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공감해 주었다. 더불어 '세상의 어떤 생명도 실수로 우연히, 어쩔 수 없이 태어나진 않아. 사랑하는 관계에서 잉태된 생명이든, 사랑하지 않은 관계 아래 태어난 생명이든 모두 인간의 계획이 아닌 더 큰 섭리 안에서 잉태되고 탄생되는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약속된 시간에 입양기관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키가 크고 의젓한 둘째가 중2답지 않게 눈 맞춤도 잘하고 사근사근하게 대답을 하니 안정된 성장을 하고 있다고 느끼셨던지 아이의 궁금증을 최대한 풀어주려 노력하셨다.
아이의 일련번호가 새겨진 파일 집(실제 종이 파일 집)을 보여주며 이 중에는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자료(출생 당시 의료기록)와 직접 볼 수는 없으나 이야기로 전해줄 수 있는 사항이 담긴 자료(생부모의 히스토리와 개인정보, 입양부모의 개인정보와 입양 관련 서류)가 있다고 하셨다. 엄마인 나에게 전해 들었던 간단한 정보 외에 상세한 의료기록, 출생 관련 기록, 입양 전후 사정 등을 전해 듣는 아이의 표정이 자뭇 진지하다.
아이는 자신이 어떻게 잉태되었는지, 왜 키울 수 없었는지, 이름은 누가 지었는지, 성은 누구를 따랐는지, 생부모의 외모와 성격은 어땠는지 등을 포함한 10가지 질문을 적어갔는데 선생님은 수많은 입양아동의 상담을 진행해 오신 듯 노련하게 아이 마음을 헤아려주며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듣고 싶어 하던 답변도 들었다. 생모와 생부가 1년간 교제를 해왔고 사랑하는 사이에서 잉태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데 아이의 마음이 빙그레 웃는 게 느껴진다. 정보가 전달될 때마다 콩닥콩닥 뛰던 내 가슴도 조금씩 잔잔해진다.
어머니는 궁금하신 게 없냐는 질문에, 생모가 아이를 입양 보낼 때 남긴 말이 있는지 물었다. 입양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 자신이 생모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는 질문이다.
상담 기록을 찬찬히 읽어보던 선생님은 생모가 정말 많이 울었다고, 자신이 직접 키울 고민도 했던 것 같다고 전해왔다. 상담 기록 말미엔 생모가 입양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무사히 잘 진행되는지 궁금해 했다는 사실이 적혀 있다고도 했다.
자신의 역사를 용기 있게 마주한 아들
어떤 사실은 질문할 때 진실을 드러낸다. 입양이라는 사실 뒤에 감춰진 많은 진실은 당사자가 질문하고, 마주할 때라야 그 빛을 드러낸다. 큰 기대를 하고 오진 않았는데 아이가 듣고 싶어 하던 단편적 정보뿐 아니라 자신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소감이 어떻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속이 시원하다고 대답하는 둘째. 이제야 나도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차를 몰아 한강공원으로 갔다. 어느새 훌쩍 자라 자신의 역사를 용기 있게 마주한 둘째를 보니 여러 마음이 교차한다. 이 이쁜 녀석을 낳아준 분들이 너무 궁금해 꼭 한번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며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찰나, 아이가 등 뒤에서 나를 꼭 껴안으며 말한다.
"감사합니다아~~!"
거두절미하고 표현해도 엄마는 다 안다. 이렇게 이쁜 녀석 누가 키웠냐 혼자 자뻑하는 한강에서의 오후. 거두절미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