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거에 휠체어와 목발로 생활한 경험이 있다. 덤벙거리는 성격 탓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종종 삐던 왼쪽 발목이 19살 무렵 부러졌기 때문이다. 그리 긴 기간은 아니었으나 석 달 동안 19년 인생에서 몰랐던 불편함을 처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 당시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휠체어를 두 팔을 뻗어 당긴 뒤 의자에 앉는 데 성공해도, 휠체어를 밀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화장실에 갈때, 다시 나와서 침실로 돌아오는 순간까지 사람의 손길이 필요했다. 처음 겪은 그 과정은 나에게 있어 매우 혼란스러운 경험이었다. 그 때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을 함에 있어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겪을지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다.
장애인들은 대중교통에서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순간부터 다시 들어가는 순간까지 크고 작은 불편함을 겪는다. 그렇기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시위를 이기적인 집단의 모습으로만 받아들이는 시선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들의 절규는 평범한 삶에 대한 외침이다.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바라는 간절함이다.
전장연은 지난해 말부터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인파가 가장 집중되는 곳에서의 투쟁은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시민들의 의견은 갈린다. '권리도 좋지만,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해서야 되겠냐', '어차피 일반 시민으로서 도울 방법이 없다'라며 외면하는 이들. 반면에 '장애인도 기본권인 이동권을 당연히 누려야 한다', '얼마나 절박했으면…'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대다수 시민들은 지하철 시위에 불편함을 토로한다. 본래 '지옥철'이라 불릴 만큼 인구가 밀집된 공간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의 시위는 어쩔 수 없이 열차 지연 등 불편함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그동안 장애인들이 싸워서 생겨난 편의시설이 전체 시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지하철 승강장의 엘리베이터의 주 이용자는 노약자와 일반 승객들이다. 경사로 역시 리어카와 캐리어를 끄는 승객들이 이용한다. 저상버스의 도입은 승하차 시 사고율을 감소시켰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노란점자블록은 신호등을 기다릴 때 서야 할 위치를 알려주는 등 비장애인의 안전망 역할을 수행한다. 즉 장애인의 편의를 위한 시설이 우리 모두의 편의를 위한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요구는 최근 몇 년 사이 일이 아니다. 어느덧 20년째 이어지는 문제다. 그럼에도 전국 모든 지하철 역사에 대한 엘리베이터 설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점차 늘어나고는 있어도 저상버스 도입률도 전국 평균 27.8%에 그친다. 장애인 콜택시의 운행 대수는 초기보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상버스, 장애인 콜택시가 그들의 불편함을 모두 해소할 수 있을까. 사실 적지 않은 시민들은 장애인의 이동권과 그것을 위한 시설의 도입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만 그들로 인해 본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불편할 뿐이다. 현재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관심이 들끓고 있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장애인들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방해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비장애인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이동은 단순히 불완전한 시설의 확보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린 '빨리빨리 문화'에 기인한 사회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발언으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마침내 수면 위로 올랐다.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하기 위해 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방식의 시위는 서울 시민을 볼모 잡는 행위"이며"비문명적인 시위"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지금 불편한 것을 그들은 평생 겪었다는 것" "이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게 시위"라는 말에 좀 더 힘을 싣고 싶다.
그 누구도 장애를 갖고 싶어 갖게 된 것이 아니다. 더불어 '배려의 대상'이란 낙인을 받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모든 권리 중 기본이다. 이동을 하지 못하면 교육을 받는 것도, 일하는 것도, 문화를 누리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장애인의 이동권은 우리 사회 구성원인 장애인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권리다. 장애인의 사회참여가 온전히 보장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지혜님은 인권연대 회원 칼럼니스트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