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의 서울살이가 끝이 났다. 오를 대로 오른 집값 덕분에, 내가 살던 집 전셋값 역시 끝을 모르고 수직상승했다. 당시 남편의 직장문제 등으로 서울 안에서 어떻게든 집을 구해보고자 했으나, 다른 곳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야 하는 호재가 서울 안에는 왜 그리도 많던지... 집값이 오른 건 우리 동네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서울에서 벗어나니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아니 넓어졌다고 생각했다. 서울로 출퇴근 하기 위한 지하철역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어야했고, 어린이집과 초등학교가 있어야했고, 4인 가족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가 존재해야했고, 내가 갚을 수 있는 범주내의 대출로 매매 혹은 전세가 가능해야 했다. 다시 선택지는 좁아졌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곳이 바로 파주 어디쯤, 일산 어디쯤 붙어있는 줄 알았던 고양시였다.
고양시에는 총 3개의 구가 존재한다. 덕양구, 일산동구, 일산서구. 세상 물정 관심 없었던 티가 날런지는 몰라도 나는 일산이 '시'인줄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도시에 대한 이미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끔 서울 마포구에서 차를 몰고 자유로를 타고 파주나 킨텍스로 놀러나 갈때마다 안내판에는 모두 '일산'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고양'이라고 적혀있지만, 당시 기억으론 '고양'라고 적힌 안내판은 한두 개 정도였던 것 같다.
여하튼 당시 찾고 있었던 주변조건(초등학교와 어린이집, 주변 인프라)을 다 만족하면서도 금액까지 맞아 떨어지는 곳은 이곳뿐이었고, 그렇게 나는 초면이었던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의 주민이 되었다.
새로 정착한 마을, '도시재생 지역'
마을의 첫인상은 고즈넉하다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조용한 마을이었다. 큰 공원이 하나, 조금 낡았지만 아이들이 뛰어 놀기 좋은 작은 공원이 두개, 공원마다 커다란 정자 아래에는 모두 어르신들이 앉아계셨다.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촌과는 다르게 주변에는 5층 미만의 오래된 다가구와 빌라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마을 곳곳에는 '83억 국가지원 사업 유치'와 같은 정치인들의 선전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이사온 뒤 며칠동안 둘째를 아기 띠로 안고 구경하며 여기저기 다니는데,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도로변에 있는 낡고 허름한 건물 입구 앞에 "도시재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라는 배너가 놓여있었다.
도시재생? 생소한 말이었다. 30년 넘게 어디서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단어였다. 10년을 살자고 집을 사서 이사 온 동네지만 집을 찾을 때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혔던 '호재'가 이 마을에도 있었던 걸까? 혹시 우연히 찾아온 기회는 아닐까 하는 작은 기대감을 안고 '원당 도시재생 현장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설명 들어도 모르겠는 '도시재생'... 그래서 뭐가 좋은건데?
주민이, 그것도 '젊은' 주민이 직접 찾아와 준 건 처음이라며, 도시재생 센터장님이 버선발로 달려 나왔다. 센터 안에는 커다란 마을지도가 있었는데 뭔지 잘 모르겠는 여러가지 사업 이름들이 이것저것 써 있었고, 센터장님은 최대한 쉬운 말들로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마을 활성화, 거버넌스, 집수리 등등.. 도시재생의 개념부터 계획하고 있는 사업들에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다.
관심이 없어서였는지, 내가 생각했던 '호재'가 아니어서였는지 몰라도 사실 나는 설명의 반의 반도 못알아들었다. 초면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는지라(창피하기도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앞으로 사업에 참여하러 와달라는 약속에까지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나는 그렇게 얼떨결에 도시재생판으로 들어와 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도 약속 했으니 지켜야지, 봉사활동 한다고 생각하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교육을 들었다. "도시재생대학"이라는 교육이었다. 도시재생의 기본적인 개념부터 여러가지 성공사례, 주민조직의 구성과 활동, 마을 의제 발굴 등 지금의 나라면 고개를 끄덕일만한 좋은 교육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사실 별 감흥이 없었다. 분명 좋은 강사진의 훌륭한 커리큘럼이었음에도 교육 내용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주의 깊게 듣지 않았던 것일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막 이사 온 이 동네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도 잘 몰랐고, 마을에 큰 애정이 생기기도 전일 뿐더러 이 사업으로 인해 마을이 어떻게 좋아질 수 있는지, 그게 나한테 뭐가 좋은지에 대해 크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애정과 관심 없이 흘려듣는 교육에 내용이 공감될 리가 없었다. 전부 다 좋은 말이었지만, 그 모든 교육이 '내게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거다(좋게 표현했지만 내게 필요한 이야기=나한테 돌아오는 이득이다).
그건 다른 주민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교육을 듣고자 오신 분들 중에는 정말 도시재생이 궁금해서 오기보다는 나에게 주는 이득에 대해, 혹은 이 사업이 언제 끝나서 개발이 가능하게 되는지 궁금했던 사람들이 더 많았다. 결국 도새재생은 없는 도시재생교육이 되어버렸던 거다.
돌이켜보면 초기사업지역에 필요한 도시재생교육은 그들의 원하는 바를 찾고 그에 공감하고 방법을 찾아나가는 데에 더 집중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교육이어도 관심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내 것'이 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내가 느낀 도시재생
한편, 얼마 전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에게 도시재생에 대해 설명해 줄 기회가 있었다. 그때의 설명을 그대로 옮겨본다.
아들 : 엄마, 도시재생이 뭐야?
나 : 사람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늙어지면 몸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아들 : 머리가 하얗게 돼.
나 : 그리고 또?
아들 : 허리가 아파져.
나 : 또 있을까?
아들 : (잠시 고민하다가) 목소리가 할머니로 변하고, 몸이 쭈글쭈글해져.
나 : 맞아. 사람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점점 아픈 곳도 생기고, 피부도 달라지고, 머리도 하얗게 변하잖아? 우리가 사는 마을이랑 도시도 마찬가지야. 사람이 모여서 가족이 되고 가족이 모여서 마을이 되고, 마을이 모이면 도시가 되는 거 거든. 근데 우리가 사는 집도 오래되면 고장나잖아? 도로도, 공원도, 거기서 사는 사람들도 다 늙고 병들어가겠지? 그런 도시를 다시 예전처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게 바로 도시재생이야.
아들 : 어떻게?
나 : 사람도 아프면 약을 먹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면 좋은 크림도 바르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튼튼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도시도 똑같아. 고장난 집은 고치고, 망가진 도로는 보수하고, 풀이 자라 무성한 공원은 꾸미고,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마을을 위해 일자리랑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을 만들어서 사람을 모이게 하고..
아들 : 응...(아직도 이해는 잘 못한 것 같다.)
이러한 대화 이후에는 그냥 오래된 집을 부수고 크고 깨끗한 아파트를 많이 지으면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여튼 나는, 아니 우리 주민협의체 회원들은 도시재생을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100% 이해한다고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수많은 회의, 교육, 컨설팅, 갈등과 여러 차례의 토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보는 경험과 행정과 주민간의 의견 차이를 좁혀가는 과정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다 도시재생이었다. 서로의 언어와 방법의 차이일 뿐, 결국 모두 마을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었던 거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
앞으로 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주민으로서 겪었던 도시재생의 여러 이야기들을 하려고 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른 달라지는 내가 이해했던 도시재생에 대한 개념변화, 물리적 사업으로 바뀐 마을 모습 등을 말이다.
누군가가, 어디에서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지침서까지는 못되더라도 활용팁 모음집 정도는 될 수 있도록, 주민의 입장에서 겪은 도시재생사업의 모습들을 가감 없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