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툰베리가 불씨였다면 우리는 들불이다.'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활동하는 청소년 기후운동 단체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uture)의 선언문에 쓰인 말이다. 4월 25일 선포식을 연 <2022년 차별 없는 서울대행진>은 '기후정의 실천의 날'이라는 슬로건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서울지역 노동·시민단체와 4개 진보정당은 툰베리에 이은 불씨를 놓기 위해 일터와 마을 곳곳에서 기후정의를 선포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9번째로 많이 배출하는 기후악당국(2020년 기준)이다. 서울은 전 세계에서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대표적인 기후악당 도시다. 기후악당 국가와 기후악당 도시에서 어떻게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지난해 27년 만의 폭염으로 서울 하천 수온이 최고 3도 이상 상승했다. 은평구 봉산의 대벌레 사태로 생태계 교란이 생겼고, 기후위기로 먹거리의 가격이 상승했다. 폭염과 장마로 노동 환경이 나빠지고 다단계 원하청 구조 때문에 노동자의 기후재난 대응이 어려워졌다. 폭염으로 건강과 생명을 위협받는 주거 취약계층의 문제도 서울에서 발생하는 기후재난 중 하나다.
서울 곳곳이 기후위기 현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태양광 보조금 사업, 그린 리모델링, 배출가스 저감 장치 지원 등 4500억 원의 기후위기 대응 예산을 삭감했다. 서울의 도림천, 정릉천, 홍제천 주변을 '서울형 수변감성도시'로 변경하는 지천 르네상스 사업과 스마트헬스케어 등 뜬금없는 사업을 '기후변화대응 종합계획'에 포함시켜 큰 반발을 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원자력 발전이 기후위기의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막상 발전소는 서울이 아닌 타 지역에 지으려 한다. 서울시의 전력 자립률은 11%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에서 소비되는 에너지 생산을 위해 타 지역에선 무수한 기후재난이 발생해도 된다는 말인가.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밀양 765㎸ 초고압 송전탑부터 미세먼지와 송전시설로 피해를 호소하는 충남의 석탄화력 발전소 인근 주민, 갑상선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겪으며 이주대책을 요구하는 월성 핵발전소 인근의 주민, 대규모 태양광 패널 설치로 토지를 훼손당한 농민들이 서울시민과 연결되어 있다.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지역간 형평성을 반영하고 사회계층 간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기후정의의 핵심과제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과 국제환경정책연구기관인 스톡홀름환경연구소가 2020년 9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부유한 10% 계층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52%를 차지했으며, 상위 1%의 부유층이 배출하는 탄소량은 하위 50% 계층의 3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 불평등과 정치 불평등은 가난한 사람이 기후위기에 더욱 취약하게 만들며, 보험과 금융 피해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구하기 어렵게 만든다. 앞선 세대가 축적한 기후위기가 미래세대의 세대 간 불평등에 끼칠 영향 또한 심각하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가 궤를 같이 한다면, 문제의 해법 또한 그렇다. 옥스팜이 발행한 '탄소 불평등(Carbon Inequality in 2030)' 보고서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미치는 영향을 지적한다. 부유층들이 소유한 초대형 요트, 개인 제트기 등은 무지막지한 탄소를 배출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이들의 탄소 소비를 제한하고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가장 급진적인 감축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효과적인 해법이다. 불평등 격차를 감소시키는 방안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평등 해소와 기후위기 대응을 통합적인 과제로 설정하는 '기후정의'를 말해야 한다.
① 2030 서울시 탄소배출 목표를 수립하자
서울시는 2015년 서울의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40%p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탄소배출량은 2014년에서 2018년 사이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부문별로 구체적인 감축 경로를 제시하지 않고, 감축 목표량을 사업별로 계산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행 의무를 두지 않았다. 서울시는 면피용 기후위기 대응에서 벗어나, 서울지역 전 부문의 실질적인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를 위한 탄소배출 감축 계획을 세부 부문별로 수립하고 달성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② 전기저상버스 도입 확대 및 의무화
서울시는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와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전기버스와 저상버스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버스는 예외다. 마을버스는 시민생활권에 밀착해 간선버스 및 도시철도 음영 지역의 교통수요를 전담하고 있지만, 준공영제인 지선∙간선버스와 다르게 민간이 운영하기에 운영손실 부담이 크다. 따라서 전기 저상버스 도입이 안 되고 있다. 서울시는 조례를 통해 버스 신차를 모두 전기 저상버스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고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다.
③ 서울시 주도의 태양광 발전 사업 전면 확대
서울시는 2017년부터 '태양의 도시 서울' 사업을 통해 태양광 발전량 확대를 추진했다. 그러나 태양광 발전부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목표 실적이 2018년 70% 수준에서 급격히 하락했다. 동부간선도로 일부 구간에 '태양광 방음터널'을 설치한 사례도 있지만, 민간투자 사업이기에 한계가 있다. 에너지는 기본권이다. 시장에 맡기지 말고 서울시가 책임지고 에너지 전환을 이끌어야 한다.
④ 주거용 건물 그린 리모델링 사업 확대
2018년 기준 서울시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0%가 건물 부문에서 발생함에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위한 재정투자 계획은 미비하다. 주거용을 포함한 노후 건물의 에너지효율을 높이는 것은 저소득층의 에너지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크다. '그린빌딩' 사업은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특히 주거용 건물의 에너지효율 하한을 설정하고 이에 미달하는 건물은 임대를 금지하는 등의 강력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러한 기후정의 정책들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탄소중립 녹색성장 조례'가 아니라 '기후정의 조례'가 필요하다. 이에 '너머서울'과 '서울기후위기비상행동', 4개 진보정당(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은 5월 중 서울시 기후정의조례제정 운동본부를 꾸리고 조례 제정에 나설 것이다. 기후정의조례는 ▲상향된 온실가스 감축 ▲20년 이상 된 노후건물에 대한 그린리모델링 추진 의무 ▲버스완전공영제 ▲친환경 공공교통 전환 추진 ▲공공장소에서의 '반기후광고 금지' 조항 등을 담고 있다.
4월 25일 '2022 차별 없는 서울대행진'에서 희망연대노조는 따릉이를 타고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SK남산그린빌딩, LG용산사옥을 지나며 통신 사업장의 온실가스 배출 문제를 알렸다. 각 통신사는 산업용 전기요금 혜택을 받으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탄소배출 감축을 위한 노사공동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실천은 지역사회와 이어지며 기후정의를 앞당기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다.
'기후악당 도시' 서울에서 불 붙는 이 불씨는 기후정의 운동의 횃불이 되어 전지역∙전지구적으로 타오를 것이다. 마침내 사회대전환의 들불로 일어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상현은 서울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