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겨울이 끝나갈 무렵, 부산 강서구에 위치한 낙동강변에서 처음 뉴트리아를 목격했다. 한없이 자유로웠고 부러울 정도로 여유롭기까지 했다. 샛강과 수로를 누볐고 막 올라오는 유채 싹을 마치 바리깡처럼 훑어댔다. 봄 축제를 위해 심었을 유채 싹이 속절없이 사라져갔다. 쉼 없이 이동하며 갉아대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엄청난 식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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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를 유유히 누비며 먹이를 즐기는 뉴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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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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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가 거의 다 질 무렵인 4월, 억새로 둘러싸인 수로엔 작은 철창 두 개가 놓여졌다. 철창 안 깊은 곳엔 사과 두어 개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아, 식탐 어린 녀석을 잡기 위한 트랩이구나."
한 주가 지나고 한 달이 넘어갔지만 사과만 본래 빛을 잃어갈 뿐, 소식은 없었다.
"그럼 그렇지, 경계심 많은 녀석이 쉬이 꼬일 리가 있나? 아주 녀석을 우습게 아는구먼."
대롱거리던 사과의 붉은 빛이 누래질 무렵이었다. 창살 속에 둥글게 웅크린 털 뭉치가 보였다. "저게 뭐지? 아, 드디어 잡혔구나!" 대낮인데도 머리를 파묻고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군침깨나 흘리게 했을 농익은 사과는 한입도 채 베어 먹지 않은 채.
뉴트리아는 인간의 식탐을 채우기 위해 들여온 외래종이다. 지금은 생태계교란종으로 전국민적 증오를 한 몸에 받으며 공공의 적이 된 존재다. 갇힌 뉴트리아는 철창을 탈출하기 위해 가진 모든 힘을 다 써버렸는지 움직임이 전혀 없었다.
카메라가 철장에 닿을 듯해서야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나와 눈빛이 맞았다. 순간 '쉬익' 소리를 내며 샛노란 앞니를 도끼처럼 드러냈다.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녀석은 탈출을 위해 가진 모든 기술과 노력을 퍼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때 느꼈을 녀석의 깊은 절망이 눈빛에 그대로 일렁거렸다. 녀석의 바로 옆, 향내만 폴폴 풍기며 원형 그대로인 사과가 녀석의 감정을 증명하고 있었다.
다음날 같은 장소에 들렀다. 두 개의 쇠창살은 비어있었다. 다만 안쪽 깊은 곳엔 이전보다 더 다양하고 많은 과일과 야채들이 놓여졌다. 녀석이 어디로 끌려가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재판 과정 하나 없이 단 하루 만에 사라진 뉴트리아. 그저 우리처럼 살기 위해 노력했고 식탐에 잠시 눈이 멀어 순간 경계심을 잃었을 뿐이었는데... 누구 하나 자기편을 들거나 변호 한마디 해주는 이 없이 외롭게 죽어갔을 그 녀석.
뉴트리아를 사형에 처한 죄목은 무엇일까? 과도한 식탐을 누린 죄? 아니면 생태계교란죄?
과연 끝없는 탐욕과 식탐의 최고봉은 누구일까? 지상최대의 생태계교란종은 누구일까? 지구를 넘어 우주공간에 수만 개의 우주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있는 바로 그 존재가 아닌가? 누가 누구를 손가락질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