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은 소소한 탐식을 통해 일상의 고단함과 노곤함을 이겨냅니다. 고독한 방구석 연주자인 임승수 작가는 피아노 연주를 통해 얻는 소소한 깨달음과 지적 유희를 유쾌한 필치로 전달합니다.[편집자말] |
피아니스트는 스포츠 선수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몸의 특정 부위를 끊임없이 사용하기 때문에 건초염, 손목터널증후군, 테니스엘보 등 다양한 형태의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보았는데 전문 연주가들이 부상으로 연주를 그만두게 되는 비율이 미식축구 선수가 부상으로 그만두는 비율과 비슷할 정도라고 하니, 몸을 얼마나 혹사하는 분야인지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아마도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지 않을까 싶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연습에 매진하던 슈만은 요상한 기계장치까지 사용하며 손가락 단련에 힘을 쏟았다는데, 그런 무리한 시도로 인해 오른손 손가락에 치명적 손상을 입고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었다고 한다.
이 사연은 로베르트 슈만의 피아노 스승인 프리드리히 비크를 통해 알려졌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비크의 딸이자 로베르트 슈만의 아내였던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은 로베르트가 기계장치로 오른손 손가락을 다친 게 아니며, '오른손 전체의 통증'을 호소했다고 말했으니 잘못된 얘기일 가능성도 있다.
어쨌거나 피아노 치다가 몸에 무리가 오는 일은 방구석 취미생인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하루에 한 시간 남짓 얼렁뚱땅 연주하는데 팔 아플 일이 뭐가 있겠나. 꽤 오랜 세월 피아노를 쳤지만 신경 쓰일 정도의 통증을 느껴 본 기억은 없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팔을 치켜올리는 동작, 그러니까 만세 동작을 취하다가 오른쪽 팔에서 제법 아프다고 할 만한 통증이 느껴졌다. 팔뚝과 이두박근을 지나 겨드랑이 부위까지 직선으로 쭈욱 이어지는 경로 곳곳에서 예리한 통증이 느껴지는데, 팔을 위로 쫙 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통증의 원인으로 짐작되는 곡이 반사적으로 떠올랐다. 바로 요즘에 한창 연습하던 슈베르트 즉흥곡 Op.90 No.3인데, 아래 악보다.
연주하기 버거운 내 새끼손가락
따뜻하고 담백하면서도 아련한 우수가 느껴지는 선율이 인상적이어서 피아노 애호가들이 즐겨 연주하는 곡이다. 빨간색 동그라미로 표시한 음들이 주선율인데 대체로 오른손 새끼손가락(5번)이 담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른손의 나머지 손가락들은 노느냐? 아니다. 악보를 보면 8분음표로 끝없이 펼쳐지는 분산화음을 담당한다. 다시 말해 새끼손가락으로 주선율 음을 누른 상태에서 나머지 손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반면 왼손은 고즈넉하게 화음이나 짚어주며 한가롭다.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스타일로 일관한다.
기술적 난이도가 높지는 않은 곡이라 금세 악보에 익숙해졌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내 손이 다소 작은 편이다 보니, 새끼손가락으로 주선율을 짚은 상태에서 나머지 손가락으로 분산화음을 연주하는 게 다소 버거웠다.
물론 맘먹고 한껏 벌리면 옥타브 이상도 어떻게든 짚을 수는 있지만, 이 곡은 내내 새끼손가락을 쭉 뻗은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더군다나 새끼손가락이 연주하는 주선율은 도드라지고 명료하게 들려야 하니, 가뜩이나 약한 새끼손가락에 힘이 많이 들어가 관련 근육이 계속 긴장 상태였다.
이렇게 매일 1시간 가량을 꾸준히 연습하니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던 근육에 무리가 온 것이다. 연주 자세를 취하며 왼손으로 오른팔의 아픈 부위들을 만져보니, 역시나 새끼손가락 쭉 뻗어 고정하는 자세를 취했을 때 딱딱하게 수축되는 근육에서 통증이 발생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 1시간 정도의 연습이더라도 자세가 올바르지 않으면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통증 없이 연주하기 위해서는 해당 근육이 긴장하지 않도록 연주 방식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근육을 만지며 이런저런 동작을 취하다 보니 문제점과 해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일단 내 연주 동작의 가장 큰 문제는 새끼손가락으로 건반을 누른 후에도 계속 강하게 압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한번 건반을 누른 후에는 그렇게 세게 누르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저 건반만 눌려 있으면 댐퍼가 올라가 피아노 현의 울림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주선율을 도드라지게 쳐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인해 부지불식간에 건반을 새끼손가락으로 강하게 누르고 있었고, 그로 인한 근육의 수축 상태가 연습 시간 내내 지속돼 근육에 무리가 온 것이다.
해법은 단순하다. 손가락에서 불필요한 힘을 빼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강조하는 그 '릴랙스(탈력)' 말이다. 프로 연주자의 손을 보면 (특히 느린 곡을 연주할 때) 마치 발레를 하는 연체동물인 마냥 나풀나풀 흐물흐물 건반 위를 노니는데,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매 순간 타건에 필요한 근육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힘을 빼기 때문에 야기되는 움직임이다.
통증을 피하려고 손가락, 손목, 팔뚝, 이두, 삼두, 어깨에서 의식적으로 힘을 빼니 흥미롭게도 내 손이 제법 연체동물처럼 나풀나풀 움직인다. 빠른 패시지(악곡의 짧은 부분)를 연주할 때도 손가락이 부드럽고 경쾌하게 움직이며 소리도 고르다. 전에는 빠른 패시지를 연주할 때면 틀리지 않겠다는 부담감으로 다섯 손가락의 근육에 일제히 힘이 들어갔는데, 그것이 오히려 연주에 지장을 준 것이다.
릴랙스를 할 때도, 지금 연주하는 손가락에만 '힘을 줘야지'라고 접근하면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다. 손가락과 팔 이곳저곳을 만져보니 어딘가에는 꼭 근육 긴장이 일어나고 있었다. 반면 연주하는 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는 '힘을 빼야지'라고 마음을 먹으니 제법 성공적인 릴랙스가 가능했다.
팔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아프지 않았다면 근육을 만져보면서 연주 자세를 요모조모 살펴볼 일도 없었을 테고, 릴랙스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물론 실마리를 얻은 정도이지 전문 피아니스트처럼 완성도 높게 구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아갈 방향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큰 소득이라 하겠다.
'좋아하는 곡을 연주했을 때'를 아는 몸
아직은 팔이 아파 슈베르트 즉흥곡 Op.90 No.3의 연습을 봉인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꾸준히 스트레칭을 하니 날이 갈수록 통증이 완화됨을 느낀다. 조만간 팔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이번에 터득한 릴랙스를 적극적으로 시도해 다시 도전해보련다. 작은 손이 불편하긴 하지만 서스테인 페달로 새끼손가락이 연주하는 멜로디를 지속하면서 근육에 무리가 가지 않는 연주 자세를 찾아낸다면 통증 없이 완곡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그나저나 고작 슈베르트 즉흥곡 하나 어설프게 연주해보겠다고 팔까지 아파가면서 안간힘 쓰는 게 누군가에게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루 1시간씩 백날 연습해봐야 대학 전공생의 실력에도 훨씬 못 미칠 텐데.
그런데 말이다. 사회인 야구단에서 아무리 애써 봐도 고교야구선수 실력에도 못 미칠 텐데, 왜 그 사람들은 부상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그렇게 열심히 치고 달릴까? 아무리 뇌즙을 짜내어 블로그에 글을 써도 조횟수는 민망한 수준인데, 왜 그들은 지금도 글을 쓸까?
자신의 행위가 타인의 그것과 비교해 우위를 점할 때만 존재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만큼 불행한 이는 없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져도 자신보다 돈이 더 많은 이가 눈에 밟히고, 아이가 반에서 1등을 해도 전교 1등 하는 애가 신경 쓰이고, 연습실 옆방의 쇼팽 에튀드 연주 소리를 듣고서 제풀에 주눅 드니 말이다.
우리가 타인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남보다 숨을 더 잘 쉬어야만 생존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도대체 언제쯤 자신에게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피아노로 먹고살 것도 아닌데 굳이 전공생이나 넘사벽 아마추어와 비교하며 자기비하에 빠질 필요가 있겠는가. 굳이 비교 대상을 찾자면 과거의 내가 적절하지 싶다. 본업에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시간을 내 연습한 덕분에 전에는 엄두도 못 내던 곡을 시도하고 있으니, 시나브로 성장한 스스로가 얼마나 기특한가.
좋아하는 곡을 자신의 손으로 연주했을 때에만 만끽할 수 있는 성취감과 고양감, 어느덧 그것을 아는 몸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아픈 팔 달래고 주물러가며 피아노를 연습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