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가팔랐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는 한달음에 오를 수 있을 듯했지만 육, 칠십도 경사의 오르막길인 '논골담길'은 마음만큼 쉬이 줄지 않았다. 이 가파른 길 꼭대기에 묵호의 명소 등대가 있다기에 지난 14일 찾아가 보았다.
치열한 삶터가 관광지가 될 때
묵호 산동네 벽화마을 '논골담길'은, 2010년부터 시작한 정비 사업을 통해 묵호의 '핫플(명소)'이 되었다. 가파른 이곳엔 집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데, 그러다 보니 동네 골목길도 사람 하나 겨우 지날 만큼 좁다. 외양상 적어도 반세기 전에 지어졌을 법한 건축 양식의 집들이, 건축이라고 하기도 조금 무색한 생존을 위한 공간으로 지어졌을 집들이, 한 집 지붕이 다른 집 지붕에 잇대며 서 있다.
건축이라고 부르기 무색하다지만, 이 집을 지으려고 들인 사람들의 수고는 누구보다 컸을 테다. 가파른 길을 돌이며 벽돌이며 시멘트며 얼마나 힘들게 지고 날랐을까. 고되게 지어 올렸을 집들엔 손바닥만 한 마당이 붙어 있거나 그마저도 없는 집이 많다. 전적으로 먹고 자는 주거공간으로 쓰인 구조물이다. 좀 큰 집이 열서너 평 될까 싶은,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아등바등 아이를 낳아 키웠을 테고, 또 이곳을 떠나지 못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부대끼며 살아갔을 것이다.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날도 있었을 테지만, 많은 날은 팍팍한 삶 때문에 거친 말을 쏟아내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냈을 것이다. 다투다 화딱지가 나 문을 박차고 나오면, 사시사철 믿을 수 없게 파랗게 반짝거리는 바다가 위로해 주었으려나.
논골담길을 중턱쯤 올랐을 즈음, 딱 봐도 '공동변소'로 짐작되는 초소처럼 생긴 작은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지나치다, 그럼 그렇지, 피식 웃음이 터졌다. 실제인 듯한 조형물 '똥 누는 아이'가 끙끙 힘을 주고 있지 않은가. 한 손에는 밑씻개로 쓰기 좋으라고 비벼진 신문지 조각을 움켜쥐고 말이다. '공동변소'를 알 턱이 없는 딸애는, '똥 누는 아이'라는 조형물의 안내문을 보지 못했는지, 저 애가 뭘 하는 거냐고 물어온다. 뭘 하긴, 중대사를 치르고 있지.
꼭대기에 올라서니 등대가 보였다. 한때는 묵호항을 드나드는 수많은 배들을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호령했을 등대의 위용은 그 옛날의 영광을 생각하기에는 좀 작았다. 이는 나의 터무니없는 평가절하일 텐데, 바닷길을 제대로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등대가 무슨 마천루라도 될 줄 착각한 관광객의 허황됨일 테니 말이다.
등대 근처 '도째비골'은 '스카이밸리'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도째비'는 도깨비를 부르는 강원도 말이다. '스카이밸리'라는 영어 이름은 어색하지만, 이를 한국어로 옮긴 하늘 마을은 제격이지 않은가. 이곳에 하늘 산책로라 불리는 '스카이워크'가 우뚝 세워져 있는데, 족히 40층 건물 높이는 되어 보이는 꽤 높은 조망대다. 그 옆으로 와이어를 타고 공중을 횡단할 수 있는, 보기에도 아찔한 '스카이 사이클'이 설치되어 있었다. '쫄보'의 심장으로는 언감생심이다.
등대를 둘러본 후 노골담길의 명소라는 '바람의 언덕'에 다다랐다. '폭풍의 언덕'이 문득 스쳐 지나갔는데, 물론 소설의 으스스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 살랑대는 바람이 보드라운 사랑스러운 언덕이다. 언덕에서 바라보니, 묵호항을 오른쪽 한편에 두고, 바다 경관이 마치 부채처럼 펼쳐진다. 사진 한 컷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넓은 폭이다.
바다 한쪽엔 이곳이 어떤 삶의 역사를 가졌는지 증명하듯, 화력발전소 굴뚝이 멀리 보였고, 항만엔 대형 크레인이 골리앗처럼 서 있다. 일제시대 무연탄 수출항이었고 어업기지였던 역사를 가늠하게 하는 풍경이다. 타지인에게 저 항구는 아름다운 바다로 연상되겠지만, 묵호 사람들에겐 무연탄을 나르고 오징어와 명태를 잡아 생계를 이었을 삶의 현장이다.
묵호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관광객은 끊임없이 즐거움으로 치환한다. 장이라도 많이 보는 날이면, 양손에 무거운 짐들고 오르느라 숨이 턱까지 차오를 이곳을, 막상 이곳 주민이라면 좋아라 환호하지 못할거면서 말이다
이곳 주민들이 고단한 삶을 일구었을 산동네 제일 꼭대기엔 카페가 들어서 있다. 관광객의 본령은 그저 '행복'인 걸까. 왁자지껄, 수없이 눌러대는 사진 촬영 음, 안면 가득 피운 웃음이 기본 사양이다. 행복을 증명할 임무라도 부여받은 듯, 너도나도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신다.
이 호들갑스러운 여행객들의 소란을 이곳 주민들은 어떻게 견딜까, 미안해진다. 노골담길도, 바람의 언덕도 지극히 아름답지만, 누군가의 내밀한 삶의 현장을 만인의 관광장소로 만드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본주의의 지나친 상술이다. 나라도 안 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에 내려오는 내내 뒤 꼭지가 뜨거웠다. 그래도 언덕 꼭대기에서 바라본 제 나름껏 아름다운 묵호 바다는 못 잊을 것이다. 누가 그랬던가. 풍경이 아름다운 건 그 속에 슬픔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내 짧은 여행의 종착지, 동네 책방
이 작은 소도시에 동네 책방이 있단다. 여행지에 서점이 있으면 꼭 들러보는 나로서는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책방은 이름도 그윽했다. '잔잔하게'
책방지기는 아주 젊지도 늙지도 않아 보이는 남성인데, 반갑게 맞아준다. 한 세 평 남짓한 책방은, 여타 작은 책방이 주인장의 취향을 적극 반영하듯, 이곳 역시 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즐기는 것이 작은 책방 탐방의 묘미다. 잠깐 엿본 방문객의 탐색으로는, 서가의 책 상당 부분이 여행 관련 책인 걸로 보아, 이 서점의 책방지기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 외에도 주목받는 신간 책들 약간과, 그리고 이 역시 작은 책방만의 덕목인데, 작은 책방용 특별판 신간과 독립 출판된 책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흠, 그런데...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한 곳에 붙박여 있어야 하는 책방을 운영하는 것은 굉장한 역설이 아닌가? 방문객의 염려(역마살을 대비한 대책이 있단다)는 아랑곳없이, 지금 책방지기는 무척 행복해 보인다. 저런 충만감은 속이지도 꾸미지도 않는 정서다. 그렇지 않다면, 수익 모델이 척박한 동네 책방을 꾸려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나 말고도 소문을 듣고 찾은 여행객으로 보이는 방문객들이 한둘 들어선다. 방문객을 맞을 때마다 주인장의 무람없는 환대가 이어진다. 묵호와 묵호민의 역동을 열심히 설명하는 그에게서, 이주민의 외피를 벗은 '박힌 돌'의 자존감이 배어나고 있었다.
책을 고르고 구매하고 나면, 책 읽는 손님을 위해 마련된 작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책방과는 커튼으로 분리되어 있는데, 이곳의 재미도 쏠쏠하다. 책방지기가 여행한 곳들의 흔적을 담은 작은 기념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짧게 휘갈긴 메모처럼 인상적이다. 이것도 보고 싶고 저것도 보고 싶은 수선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겨우 고른 책들을 들고 아늑한 독서 공간에 앉는다.
고른 책이 마음에 쏙 든다. 최근 번역된 버지니아 울프의 산문선과 주소를 사회학적으로 탐구한 책이다. 뭐부터 읽을까. 약간의 흥분과 설렘은 독서를 위한 워밍업이다. 아무래도 이 짧은 여행의 끝은 책 읽기로 마무리되려나 보다. 우선 버지니아부터 시작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