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은 성평등 사회를 위한 활동 속에서 젠더 이슈를 발굴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이슈리포트 '젠더 잇:다'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활동가들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이슈리포트 '젠더 잇:다'는 젠더 이슈는 우리 주변에 언제나 존재했고, 그 이슈를 발굴하여 함께 활동하는 사람들과 연결하고 연대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은 이슈리포트 '젠더 잇:다' 2022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기자말] |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
지난 5월 2일은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 마감일이었다. 보통 4월 말까지 국세청에 등록해야 하는 공시 때문에, 각 단체의 회계담당자들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다. 1월 정기총회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당해년도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 시점에서 법인세 신고, 부가세 신고, 공익 법인 공시 등을 4월까지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시(국가나 공공단체가 일정한 사항을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는 것)는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공익법인인 시민단체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각 단체가 소중한 후원금을 후원해주신 분들에게 후원금으로 1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고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공익법인의 공시(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12조에 열거된 '공익법인'은 4월말까지 국세청 홈텍스에 결산서류를 공시해야한다)는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 관련 자료를 국세청에 제출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아래 기부금품법)'에 의한 지정 기부금단체 이행 의무실행 점검 결과보고서도 포함된다.
원래 이 보고서는 각 단체의 소관부처에 보고하던 것을 2021년부터 법 개정으로 국세청으로 제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소관부처(여성연합은 여성가족부)에 보고하던 지정기부금 단체 이행 의무실행 점검 결과보고서도 2020년 2월 개정된 법인령 제39조 ⑥ '공익법인등은 제5항에 따른 의무의 이행 여부(이하 이 조에서 "의무이행 여부"라 한다)를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보고해야 한다'로 개정되어 2021년 결산부터 국세청에 제출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지금 이슈가 되고 있는 기부금품법은 법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애초에 기부를 장려하기보다는 국가가 기부의 모집과 사용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은 1951년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을 시작으로 60여 년 동안 시대 상황을 반영하며 개정되어 왔다. 1951년부터 1995년까지 적용된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은 '국제적인 구제금품', '천재지변 등의 구휼 금품' 등 법이 정한 목적을 제외하고 누구나 기부금을 모집할 수 없도록 금지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초창기 '기부금품모집금지법'은 한국전쟁 이후 나라 사정이 어려운 시기에 무분별한 구제나 규휼을 규제하는 목적으로 제정되었다.
1995년부터 2006년까지 적용된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은 무분별한 기부금의 모집을 규제하고, 모집과 사용에 투명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개정되었다. 2006년 개정되어 현재까지 적용되고 있는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은 기존 모집 허가제를 모집 등록제로 전환하고, 기부금품 사용에 방점을 찍어 성숙한 기부문화 조성과 건전한 기부금품 모집 제도 정착을 목적으로 개정되었다.
애초에 규제를 목적으로 제정된 기부금품법은 기부활성화를 추구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하긴 했지만 모금을 규제하고 모금 주체를 통제하는 제도이다. 영국, 미국 등 기부문화가 발달한 나라의 경우에는 모금 주체의 규제보다 기부자에게 많은 세제 해택을 주고, 법은 단체가 기부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도록 하는 등 기부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기부자 중심의 제도를 운영 중이다(정진경, 기부금품법의 역사적 변화 연구 : 금지에서 규제로, 규제완화에서 건전한 기부문화 조성으로, 2017).
세계기부지수 2018(World Giving Index 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부 참여지수는 146개 조사 대상국 중 60위를 차지했고, 이는 OECD 회원국 중 하위로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비해 기부 참여도는 높지 않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기부참여율은 매년 감소추세에 있다(국회입법조사처, 기부금품 모집·사용제도 현황과 개선방향, 2020).
지속가능한 시민사회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기부 문화 확산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라도 기부자 중심의 법과 제도 마련 차원에서 현행 규제 중심에서 기부자 중심, 시민사회 현장을 고려한 합리적 법 개정이 필요하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 2020 Mega Giving Trend, 2020).
'자유로운 기부, 투명하게 공개' 방향으로 가야
기부금품법은 지난 21대 국회가 시작된 후 20여 개의 개정안이 발의되었고, 2022년 5월 현재도 약 20여 개의 의안이 계류되어 있는 상태이다. 2021년 10월 통과해 2023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고향사랑기부금법'처럼 지역 살리기를 목적으로 개정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대부분의 계류 법안의 내용은 기부금을 모집하는 공익단체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규제, 감독 강화 등이 주 내용이다.
새 정부도 '기부금 수입 및 지출에 대한 국민참여 확인제'를 도입하고 '비영리 민간단체의 회계 투명성‧책임성 강화 장치 마련'을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삼아, 기부금 및 시민단체 활동의 투명성을 확보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건전한 기부문화 조성과 투명성 확보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기부하고, 기부 받은 단체는 기부금 사용 내역을 투명하게 기부자에게 공개하면서 사회전반에 정착되는 것이지 정부가 법으로 규제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기부금품법은 시민사회단체의 자율성과 현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단체를 규제하는 내용을 주로 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규제를 늘리는 방식의 법/제도 마련은 제도의 실질적 효과도 담보할 수 없을뿐더러, 비영리 영역의 행정 부담을 가중시켜 공익활동과 나아가 기부 문화 전반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기부금품법이 개정된 이래 60여 년 동안 규제에서 건전한 기부문화 조성을 방향삼아 전환을 추구했다고 한다. 많은 시민들이 쉽게 기부할 수 있는 기부문화 정착과 활성화를 위해서 비효율적인 제도를 개선하고, 비영리 단체의 자율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법 개정을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글쓴이는 장수진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