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민자수가 증가하고, 다문화로 변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포용성'에서는 아직도 반성할 점이 많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지금까지 국내에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는 두 명의 한국계 해외작가를 초청해 기획전시를 여는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섹슈얼리티와 인종의 소수자로 살아온 이들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려는 의도는 명확하다. 자신뿐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이 받았던 상처를 보듬는 것.
개인과 사회에서 일어난 오해와 상처를 조망하는 기획전 <올 어바웃 러브: 곽영준&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5월19일~7월17일, 아르코미술관)는 사회적 불평등과 제도적 착취 속에서 소외된 마음을 치유하려는 두 작가의 의지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런 배경에서 아르코미술관의 임근혜 관장은 "개인·사회적인 차별로 고통받았던 두 작가의 경험을 통해 이런 문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서로 다른 공간(제1,2전시실)에서 전개되는 두 개의 개인전.
성과 인종의 소수자로 받은 상처를 예술로 치유하려는 전시는 향후 새로운 지지와 연대의 공동체를 형성해나가는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
남녀의 전통적 성 역할을 전제로 한 가사 공간에서 혼란스럽다. 느리고 절묘하게 움직이는 인물은 가정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 이분법적 젠더 구분에 불안과 권태감을 느낀다. 인물을 훔쳐보는 (관람객의) 관음증적 시점은 은밀한 쾌감과 동시에 불편한 심정마저 느껴진다.
이런 심리는 사회가 부여하는 통념과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 간극을 확인한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작품이 내포하는 '고립'은 더욱 극도로 치닫는다. 신체적, 물질적, 사회적, 정신적으로 제약을 받으며, 심지어 자신의 신체까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앞선 영상 '슬로우 댄스'(2013)뿐 아니라 작가의 정체성이 오롯이 드러난 작품들이 여럿 보인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남녀 양성을 지닌 인물 헤르마프로디토스를 모티브로 제작한 '헤르마프로디토스의 폭로'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와 크로스드레서(Crossdresser, 여장남자· 남장여자를 총칭하는 말)의 모습이 떠오른다. 화려한 라인석을 붙인 조각품 '순종적인 스파르타 전사의 흉갑'은 남성과 여성의 몸을 하나로 표현함으로써 화자의 의지를 가늠하게 된다.
해외 입양의 현실을 알립니다, 이제는 멈춰주세요
'산신 기관'은 2017년에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국제 입양과 관련한 연구 자료, 실제 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들의 인터뷰, 드로잉과 텍스트 등으로 구성된 대형 설치 작업이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입양 부모와 정부 입장에서 다뤄왔던 국제 입양 문제를 작가는 입양 자녀의 시각에서 바라봤다.
나아가 국제 입양의 이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서구와 비서구 간의 제국주의적 맥락을 드러냈다. 작가는 아이를 잃은 어머니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이, 이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을 상징하는 해와 달을 천체 모형으로 본떠서 공간 설치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입양아 출신인 작가는 국제 입양의 어두운 면(제국주의적 관습)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두 작품을 전시한다. 자기 뜻과 무관하게 아이를 해외로 보내야 했던 한국과 방글라데시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산신(山神) 기관'을 통해 "왜 입양 국가는 아이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고 모국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막지 못했는가?"라고 되묻는다.
이 작품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태양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이를 달로 형상화해 이들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이 작동함을 보여준다.
소수자로서 살아온 트라우마를 치유하다
조각과 영상 작품을 통해 가부장적인 시선과 타자화하는 폭력성을 퀴어적 몸짓으로 표현한 곽영준(38)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작업에서 나타나는 신체는 일반적인 사회 통념에서 정의될 수 없으며, 각 개인의 정체성을 담는 그릇이자 개인의 정체성과 외부 통념이 충돌하는 정치적 공간이라 설명한다. 다중적이고 혼성적인 정체성을 담은 신체는 이성애적 관점을 넘어 퀴어와 트랜스젠더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또한 다른 인종간의 국제 입양 이면에 있는 제국주의 관습을 드러내고 이에 저항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장세진(45)은 한국계 네덜란드인이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이를 해외에 입양시켜야 했던 두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해외 입양의 민낯을 낱낱이 보여준다.
전시 제목(All about love)은 작년에 타계한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인 벨 훅스(1952~2021)가 1999년에 출판한 동명의 책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이성애에 한정된 사랑이 아니라 일상을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닌 사랑을 강조해온 훅스의 가르침을 따라 과거의 모순과 부조리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 삶을 변화로 이끄는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두 작가가 강조하는 부분은 명확하다. 젠더와 성 역할, 인종에 대한 이분법적 정의, 서구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기록 방식, 가부장적 권위 등을 해체하는 것이다. 전시는 개인과 사회에서 발생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유하려는 노력을 예술적 실천으로 보여준다고 믿는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열리는 두 개의 전시지만, 한목소리를 내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한 방향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다층적인 시각에서 논의해야 한다."
덧붙여, 전시 개막과 함께 지난 18일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두 작가의 생각과 엿볼 수 있었다.
- 코로나19가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곽영준 : "팬데믹 시대에 살아남고 다양한 것들을 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친밀감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 친숙한 공간을 벗어나서 더 많은 사람들과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데, 작품을 만들 때, 다양한 경계를 넘어 사람을 연결시킨다는 주제를 염두해둔다.
사회적 차이, 연령, 섹슈얼리티, 성별, 계층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람을 연결시키고, 공감대도 증대시키며,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꾀한다. 이 작품을 통해서 보다 개방적인 작품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접할 것이다. 코로나는 나를 더 대범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코로나를 통해 사람을 만나고 만질 수 없게 돼서 이런 것들이 조각작품을 만드는데 더 중요하다."
장세진 : "코로나19뿐 아니라 세계적인 미디어 갈등이 존재해왔다. 물론 이제는 코로나 규제가 완화돼서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있고 대면할 수 있어서 기쁘다. 현존하는 갈등만 가지기 보다는 갈등은 늘 있어왔고, 다만 특종 종류의 갈등들이 다른 것보다 세간에 이목을 끌어왔다.
나도 출생한 국가와 살고 있는 국가가 다른데, 나와 같은 사람들이 소리내어 말하지 못하는 갈등은 늘 존재해왔다. 나도 친구와 일상을 보낼 때는 잘 지내지만, 한 명의 예술가로서 스스로를 고립시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게 돼서 너무 좋다."
- 자신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인가?
곽영준 :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나에겐 의미가 크다. 이런 부분이 작품에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인 방식은 아니고 다소 특이한 방식으로. 어릴 때, 뉴욕과 뉴저지의 큰 한인사회에서 자랐다. 그런데 종종 한국인에게도 받아들이지 않고, 동시에 미국인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음을 느꼈다. 이때에 현재 작품에 녹아든 사상이 자리잡힌 것 같다.
서로 다른 공간을 왔다갔다 하고, 문화적으로도 나뉘어져 있는 것을 겪으면서 '혼성성'이 형성됐다. 나이 들어가면서 스스로 느낀 건 개인적인 성향은 한국적이라고 느낀다. 나와 같은 한국인도 많을 것이다. 나도 한국 사람이라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 이런 것을 말하면 해외 곳곳에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세진 : "솔직히 말하면 한국인 예술가라고 스스로 여긴다거나 한국인 예술가로 대하는 것에 모호함이 있다. 나뿐 아니라 한국인들은 외국으로 입양할 때, 편도 비행으로 나가고, 해외입양한 아동들이 한국 국적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하며, 생김새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거리에 나가면 이방인이 아닌데 이방인처럼 느껴진다.
오늘날까지 나에게 모호한 부분이며, 제 작품에 한국적인 요소가 얼마나 반영됐냐고 물어본다면 잘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많이 한국적인 요소가 반영된 것은 아닌 거 같다. 좋은 질문을 줘서 생각할 여지를 남겨준 것 같다. 입양아들끼리 연결성이 부족했는데, 제 작품을 가지고 해외 입양아들이 한국의 문화와 적극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일방적인 노력에 그쳤고, 그래서 이 자리에서 발표하는 전시를 통해 해외 입양인 내가 한국사회로 환영받는 느낌을 받아 고무적이다. 나뿐 아니라 해외 입양아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 작품뿐 아니라 유사한 작품을 하는 예술가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