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각 지명자들이 압도적으로 남성이다. (중략) 여성의 대표성을 증진시키는 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 막바지에서 워싱턴포스트(WP) 소속 기자의 질문을 받았다. 이에 윤 대통령은 "지금 공직 사회에서 예를 들면 내각의 장관이라고 그러면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는 그간 윤 대통령이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주장했던 것에서 달라진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와 동떨어진 정부 1기 내각 인선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2022년 윤석열 정부의 1기 내각은 '서울, 60대, 남성'이라는 윤 대통령의 특징이 그대로 담긴 '윤석열을 닮은 내각'이기 때문이다. 1기 내각의 여성 국무위원은 21일 임명장을 받은 한덕수 신임 국무총리를 포함해 전체 19명 중 3명에 불과하다. 차관 및 차관급 인사 41명 중에도 여성은 2명뿐이다.
캐나다는 2015년 저스틴 트뤼도 총리가 처음 여성과 남성 동수 내각을 구성하였고 지난해 3기 정부에서도 동수 내각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칠레 등 주요국들의 '글로벌 스탠다드'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비율인 내각이 되었다. 비교적 여성의 정치 참여가 미진하다고 비판받아왔던 독일 역시 지난해 12월 여성 8명, 남성 8명으로 구성된 동수 내각이 출범했다. '가치 동맹'을 강조하는 미국 역시 여성 비율이 높은 내각이 꾸려져 왔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1기 내각 역시 여성 비율이 46%로 '미국을 닮은 내각'이라는 평을 받았다.
이에 인위적으로라도 여성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30%' 룰을 천명한 문재인 정부를 제외하고 역대 정권 1기 내각의 여성 장관 수는 최대 3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WP 기자의 질문에 대해 "그래서 (여성들에게) 이러한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여성 장관 비율 증가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은 성공적인 정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여성위원회를 대통령 자문기구로 두고 주요 부처 장관과 위원회 수장을 여성으로 임명하였다. 이후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담고 있는 '릴리 레드베터 법안'을 서명하였고, 여성과학인력(STEM) 육성 및 지원 대책 등 여러 성과를 냈다.
지난 3일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는 여성가족부 단독 과제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성별에 따른 '갈라치기'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윤 대통령이 말했듯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대 인수위에 여성은 4명에 불과했다. 인수위는 차기 정부의 국정 비전과 대선 공약을 구체화하는 등의 일을 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관련 정책의 필요성을 제시할 여성 인수위원이 부족했던 것은 관련 정책이 포함되지 않음과 연결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그간 사회 여러 영역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강조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후보자로 지명할 때, "앞으로 법무 행정의 현대화 그리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사법 시스템을 정립하는 데 적임자라 판단했다"라고 지명 이유를 밝혔다. 지난 13일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세계적인 산업구조의 대변혁 과정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노동 개혁이 필요합니다"라고 밝혔다. 대선 후보이던 지난해 12월에도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간담회에 참석해서도 "투자 불확실성을 제고하고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해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공정한 기업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이던 지난해 워싱턴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사회 및 정부 활동, 성별 문제 그리고 여성의 기회 보장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갖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법, 경제, 노동 등의 사회 분야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여성 기회 보장에서도 글로벌 스탠다드 흐름에 발맞추겠다고 드러낸 것이다. 정치는 법, 경제, 노동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축이다. 이제는 정치에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행동이 취해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