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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나 어린이날 선물 뭐 해줬어?"
"엄마가 장난감 사주지 않았니?"

"아니거든?"
"그래? 뭐 갖고 싶은데?"

"쉬는 날 놀이공원 가자!"
"..." (잠시 동안의 침묵)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했던 그 순간이 드디어 오고야 만 것이다. 지난 어린이날 놀이공원에 몰린 인파 사진을 보며, '이 사람들아, 이런 날 그런 델 왜 가느냐' 하고 혀를 끌끌 차던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칠 줄은 몰랐다.

아이를 설득해 보려고 하다가 마음이 약해졌다. 일하는 엄마라는 핑계로 아이와 변변찮게 여행 한 번 간 적이 없었으니 이번 기회에 내 몸을 불사르더라도 부모 노릇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버린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도 근 3년을 소풍이나 체험학습도 못 갔는데, 이번엔 한번 져줘야겠다는 약한 마음이 들었다. 이미 가기로 마음을 먹은 사춘기가 시작될락 말락하는 초등 5학년의 결기는 그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던 것은 덤이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가 결국은 "그래" 하고 승락을 했다.

치열한 준비만이 살길이다

그날 이후. 매일 인터넷으로 놀이공원 공략법을 찾아보았다. #OO랜드할인권 #OO랜드공략법 등을 검색하며 이왕 돈 주고 할 고생 돈이라고 적게 들이고, 이왕이면 고생도 줄일 방법을 이리저리 찾아보았다. 

우리가 가기로 한 곳은 용인의 E놀이공원이다. 놀이공원의 정문 주차장은 유료화가 되었는데도 셔틀버스를 타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 때문에 오픈 시간이 되기 전에 만차라고 했다. 공식적인 놀이공원의 오픈 시간은 오전 10시이지만, 주말에는 사람들의 대기상황에 따라 그보다 더 일찍 열기도 한다고 했다.

'아, 도대체 몇 시에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 건가.'

놀이공원은 코로나 이후로 오전 시간에는 스마트 줄서기로 바뀌었다고 했다. 예전처럼 문 열자마다 인기 있는 어트렉션으로 뛰어가 무작정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놀이공원에 입장해서 앱으로 접속하면 '스마트 줄서기'라는 것으로 줄을 서야 한다고 했다. 순간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걸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아무리 준비해도 주말의 놀이공원에는 기다림 외에 별도리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기예보까지 챙겨보았지만 그날은 맑음.... 기온은 늦봄 날씨, 놀이공원 가기엔 최적의 조건이었다.

하루에 3000보도 걷지 않는 운동 부족 저질 체력인 내가 아이들의 수발(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짜증)을 잘 받아주면서 버틸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일단 매일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

어떻게 하면 고생을 덜 할 수 있을 것일까를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정답은 없었다. 가기로 결심했다면 고생은 나의 몫이지. 게다가 돈까지 내야 하다니. 하하하. 멘탈을 단단히 잡자! 결심을 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아이의 친구 한 명을 섭외했다. 동병상련을 겪은 수많은 엄마들의 꿀팁.

"아이 하나만 데려가면 부모가 계속 함께 타야 하니 ​​​​​친구를 한 명 더 데리고 가세요. 그러면 둘이 타요."

외동 아이를 둔 선배님들의 꿀팁은 생명수와 같이 너무나도 유용했다.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에버랜드출입구
에버랜드출입구 ⓒ 이가은
 
결전의 날이 밝았다. 주말이지만 늦잠은 고사하고 출근하는 날만큼 일찍 일어나서 틈틈이 먹을 간식과 충분한 물을 챙겼다. 함께 가기로 한 아이 친구를 태우고 아침 일찍 놀이공원으로 출발했다. 꽤 서둘러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문 주차장 도착 500미터를 남겨두고 차가 줄을 가득 서 있었다. 거북이걸음으로 정문 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댄 시간은 오전 9시 20분경, 이미 놀이공원 입구는 인산인해이다. 분명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데, 그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을 뚫고 헤매고 헤매서야 겨우 줄의 끝을 찾아 설 수 있었다. 그제서야 한숨 돌리며 미리 인터넷으로 예매한 티켓을 놀이공원 앱에 등록하고 입장 순서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줄이 움직였고, 과연 사람들이 이야기한 대로 공식적인 입장 시간이 되기도 전에 입장이 시작되었다. 입장하는 데도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놀이공원으로 들어가자마자 앱을 열고 말로만 듣던 스마트 줄서기를 했는데, 입장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이미 인기 있는 어트랙션은 예약이 다 끝난 상태였다. 속도 빠른 젊은 손가락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아이가 꼭 타고 싶어 했던 놀이기구는 예약을 할 수 있었는데, 이용 시간은 두 시간 후였다. 아침부터 서둘러 왔는데도 놀이기구 하나 타기도 쉽지가 않았다. 다행히 스마트 예약이 아닌 어트랙션들이 있어서 줄을 서고 하나둘씩 탑승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노라니 예약했던 놀이기구의 예약 시간이 결국은 오고야 말았다. 휴~ 그나마 이 정도면 선방이다.
 
 에버랜드 어드랙션 선더폴스
에버랜드 어드랙션 선더폴스 ⓒ 이가은
 
아이는 물을 가르며 궤도를 내려오는, 내가 '후룸라이드'라고 불렀던 놀이기구를 제일 타고 싶어 했다. 물에 젖을까 봐 우비까지 미리 준비해왔다. 우비를 입고 놀이기구를 타고나니 아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엄마,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 이 맛에 놀이공원 오는 거지' 하며 보람을 느낀 것도 잠시, 결코 지치지 않는 아이와 아이친구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아이 친구가 함께 왔기에 망정이지 놀이기구를 계속 같이 탔더라면 더 힘들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먼저 지친 남편은 차에 가서 쉬고 있겠다고 포기를 선언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땡볕에 앉아 놀이공원의 하이라이트 퍼레이드를 보고, 대기시간이 한 시간이 넘는 어트랙션 두 개를 더 탔다. 그제서야 아이들은 지쳤다. 중간중간 앉아서 쉬던 내가 1만 7500보 가량을 걸었으니 아이들이 지칠 만도 하다.
 
 에버랜드 로스트월드 기린
에버랜드 로스트월드 기린 ⓒ 이가은

부모에게는 고생스러운 하루였겠지만

지친 와중에서도 아이들의 입은 멈출 줄을 모른다.

"OO이 제일 재미있었어요."
"그건 너무 무서웠어요."


조잘조잘 떠드는 입이 귀엽다.

어릴 적 놀이공원은 말 그대로 환상의 모험과 신비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때의 나도 피곤한 부모님을 졸라 놀이공원에 갔었다. 나의 부모님도 그리 달갑지 않았겠지만 못 이기는 척 함께 가 주셨었다.

엄청나게 비가 많이 오는 날 우비를 쓰고 함께 동물원을 구경하던 기억은 참으로 특별하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빠랑 같이 롤러코스터도 타고, 친척들과 지금 아이와 함께 온 놀이공원에도 왔었다.

지금의 놀이공원은 이름만 바뀌었을 뿐 어릴 적 그곳과 같은 곳인데도 전혀 다른 느낌이다. 환상과 모험은커녕 꽤나 많은 돈을 쓰면서 사서 고생하러 가는 곳이 되어 버렸다.

나에게는 고생스러운 하루였지만 아이에게만큼은 오늘 하루만은 행복하고 즐거웠기를, 그리고 어릴 적 잊지 못할 추억이 되기를 바라는 것을 보니 이제는 부모의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았을 오랜 기다림의 순간과 긴 기다림 후에 찾아온 찰나의 즐거움이 아이의 기억 속에 오래 남기를, 인생의 힘든 순간에 좋은 추억으로 기억되기를, 그리고 나중에 간간히 추억하며 함께 이야기 나눌 그 순간이 언젠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블로그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놀이공원#테마파크#아이와놀이공원가기#놀이공원꿀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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