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 때부터 '안전속도 5030' 및 '스쿨존 제한 속도 30km'의 탄력 운영을 말하던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경찰과 각 지자체에서 안전속도 상향조정을 위한 구간 조사 시행 및 실제 운영에 들어간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어린 초등학생을 키우는 학부모로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인천자치경찰위원회는 지난 25일 안전속도 5030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대전경찰청 또한 오는 7월 1일부터 일부 지역에 한해 제한속도를 탄력적으로 변경하는 시범운행을 시행할 것이라고 알렸다.
안전속도 5030은 보행자 사망 수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교통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6년부터 관련 기관이 정책 연구와 준비를 통해 도입한 제도로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6년 일부 지역에서 시범운영을 한 뒤 2019년 4월부터 2년 동안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4월부터 전국에 적용됐다. 속도가 감소하면 부상 사고와 사망사고가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처럼, 제도 도입 후 실시된 경찰청 분석 조사(2021년 8월 발표)에서 실제로 사망자가 16.7% 감소했다.
운전자의 편의 면에서 안전속도 5030 및 스쿨존 속도제한 30km/h에 불만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제한 속도 상향조정 및 탄력 운영은 더 신중하게 결정되어야 할 문제다. 분명 교통안전 약자들이 존재하고, 줄어들지 않는 보행자 사망사고에 있어 속도를 줄이는 것이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편하지만 공익적 목적에서 유의미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달려오는 차에 다친 아이, 남 일같지 않았다
우리 아이도 찻길을 건너 학교에 간다. 아침 시간에는 등굣길 안전 도우미가 있지만 아무도 없는 하굣길에는 작은 사고가 가끔 일어나기도 한다. 건널목 앞에 서 있다 신호가 바뀌어서 건너려고 하면 초록 불임에도 멈추지 않고 달려가 버리는 차나 오토바이들 때문에 가슴이 철렁할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인근 피아노 학원, 태권도장에서는 도보로 귀가하는 유치원 및 저학년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네주는 서비스를 하면서 원생들을 챙기고 있다.
몇 개월 전, 그 건널목을 혼자 건너던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달려오는 차에 부딪혀 골절상을 입었다. 신호가 초록 불로 바뀐 후 아이가 건넜음에도 멈추지 않은 운전자 실수로 인한 사고였다. 현장에 있었던 아파트 주민들과 아이의 피아노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사고에 대해 전해 듣고 남 일 같지 않았다. 매일 그 길을 오가는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자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그런데 초록 불에는 차가 멈추고, 사람이 가는 거라고 배웠는데 왜 약속을 안 지켜?"
사실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성실하게 법을 준수할 것이다. 보행자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람들이 법규를 알면서도 위반을 한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대부분 편의의 습관 때문이 아닐까. 조금 더 빨리 가기 위해 신호를 무시하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는 바로 그 순간 사고는 일어난다. 제한 속도 규제에도 불구하고 전국 곳곳의 스쿨존에서 여전히 과속과 그로 인한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는 것이 그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사고를 낸 차는 근처 학원 차량이었는데 아이들을 태우는 시간 때문에 서두르다 사고를 냈다고 한다. 다행히 속도는 지켰던 모양이다. 만약 더 빨리 차가 달려왔다면? 그 아이는 골절상이 아니라 더 심각한 사고를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속 60km로 달리면 10명 중 9명이 사망하지만, 50km 이하로 달릴 때는 5명 이하가 사망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편의만능주의' 신호로 읽힐까 우려스럽다
이 사고를 접한 후,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호와 속도제한 법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준수하지 않는 운전자들과 운전 관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가장 많이 나왔다. 교통법규는 구성원의 전체의 안전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인 규약이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부터 교통안전 교육 시간에 보행자로서 이러한 약속을 배운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자라나면서 현실 세계에서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편의와 효율이라는 이유로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는 보행자부터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운전자까지, 그 약속을 쉽게 어기는 어른들의 모습을 자주 보면서 아이들은 편의와 효율을 위해 누군가의 안전을 자신도 모르게 위협하는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운전자 편의를 위해 시간대별 탄력 운영으로 정책의 기조를 바꾸는 것이 보행자의 안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편의와 효율이며 바로 그 편의 때문에 법을 위반하는 누군가를 비롯한 대다수 국민에게 '편의만능주의'를 옹호하는 메시지로 잘못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어차피 아이들의 통행이 별로 없는 시간대인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 사이, 어린이 보호구역 내 제한 속도를 탄력 운영하는 것이 더 많은 국민의 권익까지 고려한 합리적인 정책이라는 의견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어린이들이 오전 8시보다 이른 시간, 그리고 오후 8시보다 늦은 시간까지 그 길을 오가며 건너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저녁을 먹고 아이와 함께 축구를 하느라 학교 운동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오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태권도장이며 여기저기 학원을 다녀오는 아이들이 수시로 오갔다. 신호가 바뀌자 신나게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움과 동시에 걱정이 함께 올라왔다. "저런! 잘 보고 건너야지!" 이모 마음이 되어 큰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물론 이 시간대 아이들의 통행량은 일상 시간대와 비교하면 적은 양이고, 만에 하나로 일어날 사고를 이유로 다른 시민들의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조치일 수도 있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주변 지인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다들 제도의 불편함부터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속도와 물질 중심 아닌 사람 중심의 방향으로 나가는데 치르는 대가'라는 대답도 돌아왔다.
제도의 효과와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다시 속도제한의 탄력 운영이 가시화된 것은 지금 결정권을 가진 자들이 교통약자와 안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안전보다 '효율과 편의'를 우선하면서까지 우리가 도달해야 할 가치와 목표는 무엇인가? 이미 여러 번의 희생을 보아왔음에도 다시 같은 선택을 하려는 지금의 현실에서 아쉬움은 씁쓸함과 두려움으로 바뀌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