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방한했을 당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로비에 있는 경천사지 10층 석탑(국보 86호, 아래 경천사 탑)을 보고 "놀랍다"라며 크게 감탄했다고 한다. 13미터 높이로 크기도 크지만 기단과 탑신의 독특한 문양과 조각에 바이든 대통령도 여지 없이 사로잡혔을 것이다. 경천사 탑은 우리나라 그 어느 시대 탑보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각이 층마다 있어 '고려탑'의 최고 진수를 뽐낸다.
익히 알려진 바 있지만 경천사탑은 1907년 일본인 궁내부 대신이 일본으로 무단반출 했다가 일본의 약탈만행과 반환 당위성을 일본과 세계 언론에 폭로한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 덕분에 11년 만에 귀환한 문화재다.
경천사탑은 본래 '미수복지구'인 경기도 개풍군(개성시를 에워싸고 있다) 광덕면 부소산 경천사 터에 있었다. 미수복지구는 1945년 8월 15일 현재 행정구역상 수복되지 않은 이북지역을 지칭한다. 1918년 일본에서 돌아온 경천사 탑은 개풍군 현지에 복원되지 못하고 방치된 채 일제 해방을 맞았다. 그리고 1960년 경복궁 뜰에 전시될 때까지 6.25전쟁과 산성비 등으로 훼손과 수난을 거듭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2005년 경복궁 복원사업 일환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개관 때까지 경천사 탑은 거의 외면 받았다. 약탈됐다 귀환한 '비운의 탑'으로 기억될 뿐이었다.
경천사탑, 언젠가 개풍군으로 돌아가야
바이든 대통령보다 경천사탑에 더 감격한 사람들이 있다. 경천사탑이 건립된 '미수복지구'인 개풍군 실향민들이 그들이다. 나를 포함한 개풍군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경천사탑을 직접 설명하고 안내하는 장면에 환호했다. 마치 바이든 대통령이 고향 개풍군을 방문한 것처럼 반가움이 앞섰다. 이는 개풍군민들에게 감격적인 장면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1960년 경복궁에서 경천사 탑이 일반에 처음 공개됐을 때 개풍군이 고향인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가 구경했다. 고향에서 본 경천사 탑을 직접 마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헤어진 이산가족을 오랜만에 만난듯 반가움에 탑을 향해 연거푸 절을 하기도 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 생각에 경천사 탑을 방문할 만큼 국립중앙박물관은 개풍군 실향민과 후손들의 성지나 다름 없다.
경천사탑은 우여곡절 끝에 공개됐지만 미완의 과제를 안고 있다. 이북 고향 땅에 복원하는 문제이다. 이산가족들이 고향 땅을 찾고 싶은 것처럼 나는 경천사 탑도 본래 위치에 복원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풍군 실향민으로서 6.25 전쟁 후 70여 년 동안 고향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우리 조상과 뿌리가 고향에 있는 것처럼 경천사 탑도 고향의 추억과 향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문화재 복원을 할 때 건립 장소와 그 환경을 중요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장소의 '정체성'이 문화재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경천사 탑이 제 자리에 온전히 복원돼야 하는 배경이다. 일본에서 반환될 때 제 자리로 갔다면 지금처럼 볼 수 없을 것이라 강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고려왕궁터인 개성 만월대가 남북한공동발굴사업(2007~2018)으로 추진돼 성공한 사례를 보면 어떨까.
국립중앙박물관의 얼굴인 경천사 탑에 대한 개풍군민들의 자부심과 애착은 굉장히 크지만 실향민들이 통일과 귀향을 염원하듯 경천사 탑도 언젠가 개풍군 고향 땅에 복원돼야 한다고 믿는다. 만일 경천사가 복원된다면 역사적 고증에 따라 다뤄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