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9일(현지시각),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휠야 광장에서 '휠야의 날'이 열렸다. 광장 이름은 '졸링엔 외국인혐오 방화살인사건'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9살 소녀의 이름에서 가져왔다. '휠야'란 터키말이 '아름다운 꿈'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휠야를 기억한다는 것은 소녀의 잃어버린 꿈을 안타까워 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꺾인 그 꿈을 다시 피어나게 하려는 중의적인 희망의 선언이기도 하다.
1993년 5월 29일 새벽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도시 졸링엔에서 일어난 그 사건은 독일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 휠야를 포함한 5명의 젊은 여성과 소녀들이 목숨을 잃고 가족들이 일부 크게 다쳤다. 전조가 없지 않았다. 1990년 10월 3일 독일인민공화국이 독일연방공화국에 가입하여 재통일된 독일에서는 이주민과 망명자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으로 심해졌다. 망명법이 개악되면서 망명희망자들이 당하는 구조적 압박은 무거워졌다.
이미 몇 번의 차별과 혐오의 테러사건이 있었고 졸링엔은 그 정점이라고 했다. 졸링엔 방화살인사건은 차별과 혐오 범죄의 대명사가 되었다. 희생자의 이름을 달고 있는 작은 터 휠야 광장은 그래서 미움과 차별이 없는 세상을 향해 결의를 다지는 장소가 되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차별과 혐오로 인한 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2020년 2월 19일에 신나치주의자가 저지른 하나우 총기난사 사건에서는 9명이 죽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도시의 공공 기림물이 되기까지 20년 세월
휠야 광장의 기림물은 프랑크푸르트 무역박물관 앞의 '해머링 맨'의 축소형 같다. 사람이 망치를 들어 나치 문양을 두들기는 자세를 하고 있다. '터키 민중의 집' 무스타파 코르크마츠 운영위원에 따르면, 설치과정에서 저작권 문제, 나치문양 금지조항 등 난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설명과 설득의 과정을 꾸준히 거쳤다.
반대와 방해도 만만치 않았다. 휠야 광장이란 이름이 이곳에 붙은 것은 1998년이지만, 이 기림물이 도시의 공공 기림물이 되기까지는 모두 20년이 걸렸다고 무스타파 코르크마츠 운영위원이 전해 준다.
이제 이곳에서는 매년 휠야의 날이 열린다. 휠야 광장은 프랑크푸르트 다문화와 평화공존을 만들어나가는 연습장이 되어가고 있다.
연대와 참여
연대와 참여 없이는 역사가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나르게스 에스칸다리 그륀베르크 프랑크푸르트 부시장(녹색당)은 현지 보켄하임 지역의 풀뿌리단체 '미래 보켄하임'의 아네테 뫼니히 활동가, '터키 민중의 집'의 무스타파 코르크마츠 운영위원 등을 향해 휠야 광장을 조성하고 꾸준히 연대행사를 해 온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나르게스 에스칸다리 그륀베르크 부시장은 또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끊임없이 '이주민 배경'이라는 딱지가 붙는 것을 경계했다.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청소년들은 모두 도시를 풍성하게 하는 존재라고 했다.
헤센주 의회 사민당 소속 투르구트 유크셀 의원은 집권당이 우파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일자리 차별 문제 해결, 교육 프로그램, 반파시즘 투쟁을 함께하는 노조
독일노조연합(DGB) 프랑크푸르트 지부의 알렉산더 바그너 사무차장은 연대사에서 노조는 일자리에서의 차별문제를 극복하는 것 외에도 2차세계대전 후 재출범 당시 중시한 나치 청산, 반파시즘 투쟁 정신을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지향을 좀더 적극적으로 실행해 나갈 것이라 선언했다.
알렉산더 바그너 사무차장에 따르면, 노조연합은 '슈탐티쉬'(직역하자면 '단골 테이블')라는 극우선동에 물든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에 관한 교육도 무료로 제공한다. 여론 형성 방식에 도사린 권력구조를 타파하는 것도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로 삼고 있다. 일상 속에 깃든 차별주의와 청산되지 못한 과거에서 이어지는 인종차별주의 등 생활 속에서 해결할 사안들도 부각되었다.
알렉산더 바그너 사무처장은 휠야 광장에 모인 참석자들을 향해 앞으로 더욱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각자의 역량을 총동원해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타파해 나가자고 했다.
문화와 기억
정치적 언어가 있는 곳에는 문화도 빠지지 않는다. 현지 보켄하임 지역 티타니아 극장의 배우 베티나 카민스키는 오스트리아 여성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을 낭송했다.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옐리네크가 2013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난민정책의 문제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올해 휠야의 날 행사에는 특별한 기획이 준비되어 있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인종차별, 외국인 혐오를 바탕으로 한 극우파 범죄로 인해 살해된 희생자 218명의 이름이 적힌 대형 플래카드를 기림물 가까이 임시로 설치한 일이다.
'미래 보켄하임'의 아네테 뫼니히 활동가는 앞으로 이 희생자들에 관한 정보를 담은 큐알코드를 제작하여 최종 형태의 프래카드를 완성할 것이라고 계획을 알렸다.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살해 당했으며 그 살인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정리해서 누구나 가까이 접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사건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 무책임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는 효과도 계산되었다.
프랑크푸르트에 본부를 두고 있는 풍경세계문화협회에서는 올해 행사 준비에 참여하면서 초국적 연대를 확인하는 의미에서 한국 음악 해금 연주를 중재했다.
해금 연주자 편해정씨는 행사 시작할 때 기림비에 헌화하는 순서에서 터키 멜로디를 연주했다. 사회를 보는 첼리하 디크멘 '터키 민중의 집' 운영위원은 극동의 악기로 터키 곡을 연주하는 연대의 마음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편해정씨는 나르게스 에스칸다리 그륀베르크 부시장 연설 이후에 한 곡을 더 연주하고 희생자 이름이 기록된 대형 플래카드 기획이 소개된 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아리랑을 연주했다.
변화와 발전을 향한 전망
'터키 민중의 집' 첼리하 디크멘 운영위원이 마무리 발언을 했다. 그는 독일 현지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지역 정치를 결정하는 일에 참여할 수 없거나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차별에 노출된다면 우리는 이를 '공존'이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디크멘 위원은 이어서 인종차별주의를 상대하는 투쟁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기관, 학교, 정당, 직장, 노동조합, 스포츠 협회, 이주민 단체 등 어디서나 일상 속에서 차별에 반대하는 투쟁을 지속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살인은 머리 속에서 일어나고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행동이 된다. 행동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첼리하 디크멘 운영위원은 바로 이러한 연유로 오늘날 우리들의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거대한 결점, 혐오와 배제의 문제를 소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종차별과 혐오를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게 하는 일은 희생자를 기리고 인종차별주의에 저항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한다. 그는 모든 종류의 차별문제를 섬세하게 인식하고 서로 존중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기림행사 후에는 괴테 대학교의 보켄하임 캠퍼스로 행진하여 교류와 홍보의 시간을 가졌다. 참여 단체들은 홍보부스를 차리고 단체의 활동내용을 홍보하며 상호교류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