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다닌 회사를 나오기 전, 회사 밖 생활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와보니 그렇게 두려워 할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저의 시행착오가 회사 밖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기자말] |
나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같이 고생해서 사업을 일으키고, 여유를 누릴 때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남편은 재혼을 하게 될까? 우리 사업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런 이야기 있지 않나. 고생만 하던 아내가 좀 살 만해지니 죽는다는 이야기. 부인이 죽고 나자 무언가 깨달은 남편이 그제야 돈을 쓰기 시작하고 새 부인을 맞이해서 그동안 모아놓은 재산을 누리고 산다는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 상상 속의 나는 '고생만 하던 아내'가 된다. 상상만으로도 억울한 느낌이 든다.
반대로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죽음은 아무도 예견할 수 없으니 누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갈지 알 수 없다. 남편 없이 내가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이때 나는 홀로 남은 아내가 사기를 당해 남편이 일구어놓은 재산을 모두 탕진하는 상상을 한다(아, 나의 상상은 어쩜 이리도 비관적인가).
그럼 나는 남편의 죽음과 함께 회사를 정리해야 하는 걸까? 나도 재혼하게 될까? 지금 같아선 결혼이라는 제도가 싫어서 다시는 결혼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 열린 결말로 남겨두련다.
일만 하고 밥하다 죽으면 어쩌지?
남편과 같이 사업을 하게 되면서 이런 상상을 하는 빈도가 많아졌다. 어떤 날은 합이 잘 맞아 일이 척척 진행되지만, 어떤 날은 맞지 않아 한숨만 나올 때도 있다. 그런 날은 고생만 하고 성공은 누리지 못하는 어느 여인네의 억울함이 내 것이 될 것만 같다. 오지도 않은 그런 날의 상상을 자극한 드라마가 있었으니 바로 얼마전에 종영한 <나의 해방일지>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엄마 곽혜숙(이경성 분)은 남편이 일하는 싱크대 공장과 밭을 오가며 같이 일하고, 가족들을 위해 집을 오가며 밥을 나른다. 자식들에게는 집안일 좀 도우라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캐릭터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조차 그는 웃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곽혜숙이 남편에게 하소연을 한다.
"당신은 밥 먹고 나서 숟가락 딱 놓고 밭으로 가고 공장으로 가면 그만이지. 나는 공장으로 밭으로 쫓아다니면서 집에 수십 번 들락거리면서 가스 불 켰다, 껐다... 이건 뭐, 빨간 날이 있길 해. 뭐가 있길 해."
이 말을 하던 그날, 곽혜숙은 죽었다. 가족들을 위한 밥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고서. 곽혜숙이 죽은 뒤 남편 염제호가 호의호식하지는 않았지만, 곽혜숙의 대사가 오랫동안 남았다. 빨간 날이 없는 엄마의 삶. '나도 저렇게 일만 하다가 가게 되면 어쩌지?' 다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고 있었다.
20년간 워킹맘의 남편으로 살면서 남편은 많은 집안일을 할 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집안일의 주책임자는 나였다. 퇴사를 하고 남편과 함께 일하는 나는 여전히 최대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집안일과 육아, 온라인 쇼핑몰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집은 쉬는 공간이지만 나에겐 또다른 일터가 되는 셈이다. 내가 집에서 휴식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새벽뿐이다.
아이들과 남편이 일어나는 시간부터 나의 시간은 쪼개 쓰느라 분주하다. 밥과,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 사이 쇼핑몰 주문량을 체크하고, 제품 홍보를 위한 글을 쓰며, 마케팅 통계자료를 점검한다. 아이들 학원 라이딩과 간식을 챙기고, 틈틈이 쇼핑몰 리뷰를 읽으며 마케팅 공부도 한다. 저녁식사 후 쌓여 있는 설거지를 보며, 내일까지 미루어 둘 것인가 말 것인가를 매번 고민한다. 내일까지 미루면 회사 일을 좀 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이라는 것이 그렇다. 단순작업처럼 딱 시간 맞추어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 생기면 끝도 없이 시간을 잡아먹는다. 저녁까지 답이 없는 고민을 할 때도 많다. 가끔 내가 ADHD가 아닐까 고민한 적이 있다. 회사일 고민하다가 설거지, 마케팅 고민하다가 육아, 신제품 고민하다가 밥하기 등, 도대체 난 뭐하는 사람인가 싶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사실 누가 시켜서라기보다는 자발적인 것인데, 이 자발적이라는 것에는 사회구조적인 역할에 모범적으로 적응했기 때문인 것도 있다. 또한 생계와 집안일을 그냥 놔두고 지나치지 못하는 나의 급한 성격도 한몫 할 것이다. 그러니 누굴 탓하겠는가.
어쨌든 나는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으며, 혹시나 일찍 죽지 않는다고 쳐도 나이 들어서는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육아는 나이 들면 저절로 없어지는 항목이고, 그러면 집안일도 어느 정도 놓여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밥에 관한 한 죽을 때까지 놓여나지 못할 것 같다. 언젠가 남편에게 우리의 노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나이 들면 실버타운 들어가자. 밥 세 끼 다 주고, 의료서비스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남편은 슬며시 웃었다. 오랜 시간 같이 살아보니, 이쯤 되면 내가 불만이 쌓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 혹시 '나이 들어서 밥은 내가 할게'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으나 남편 입에서 나온 것은 질문이었다.
"얼마가 필요하대?"
"보증금은 별도고, 밥 세 끼에 생활비랑 의료서비스까지 하면 대략 월 400~500만원 인 것 같아."
나는 미리 검색해 놓은 실버타운의 정보를 읊었다. 그때 남편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주변 부동산과 월세를 검색하더니 말했다.
"월 400~500만원이 필요하면, 현금 흐름이 대략 그 이상 있어야 하는 거네? 그럼 한 10년 후에는 대출받고, 건물 하나 지어서 월 500이상 나오면 되지 않을까?"
밥을 안 하려는 나의 욕망은 건물을 짓는 것으로 귀결되면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지금 팔고 있는 제품을 더욱 잘 팔고, 사업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대화를 끝내고 나니 어쩐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결국, 나의 욕망이 실현되려면 지금이라도 밥과 집안일을 안 하고 살거나, 나중에라도 원하는 모든 것을 누리고 살 만큼 오래 살아야 한다. 전자는 지금 불가능하고, 후자는 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하는 일이 고생이 아니라 아주 재미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세뇌 하는 것밖에는 없는 걸까? 가만히 생각하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나이 들면 뭐 하고 싶어?"
"글 쓰고, 그림 그리고... 그렇게 살고 싶어. 당신은 뭐하고 싶어?"
"당신 글 쓰는 거 도와야지."
어떻게 돕겠다는 것인지 구체적이진 않지만, 적어도 남편은 누군가 먼저 죽는다는 생각보다 함께 한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 기왕이면 다가오지 않을 우울한 상상보다는 기대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자발적으로 밥을 열심히 했다. 가족들은 밥을 먹고, 모두 자신의 공간으로 떠났다. 나는 현실의 밥 위에 하고 싶은 걸 누리고 죽겠다는 다짐을 반찬으로 얹었다. 밥과 반찬이 오랫동안 가족뿐 아니라 내 몸도 건강하게 해주리라 기대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