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란 밑천마저 소진해버렸다. 조기 등판이란 승부수를 던졌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이제 대선 패배 후 잠시 유예됐던 '책임론' 위에 서게 됐다.
그가 지방선거 패배에 얼마나 책임이 있는지, 그가 당대표에 도전해야 하는지 여부를 두고 당내 갈등 조짐도 보인다. 자신의 출마 자체로 전국 선거판의 반전을 기대했던 이 위원장은 처음으로 국회의원 배지는 달게 됐지만, 이제 당장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이 됐다.
"패배 책임은 지도부에게" "이재명도 평가 피할 수 없다"
이 위원장은 55.2%를 득표해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이겼다. 지난 대선에서 이 지역 성적표가 52%였으니 좀 더 나은 결과를 얻은 셈이다.
하지만 이 위원장의 목표는 국회 입성 이상이었다. 대선 패배 후 잠행을 깬 명분은 "당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였다. 그래서 지방선거를 이끄는 총괄선대위원장도 맡았다.
물론 김동연 경기도지사 후보가 천신만고 끝에 신승을 거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위원장의 책임론이 희석되기는 어렵다. 애초 승리가 예상되던 호남·제주와 경기도만을 가까스로 지켜냈기 때문이다.
되레 지금 모양새는 '이재명이 김동연을 도운' 것이 아니라 '김동연이 이재명을 구원한' 셈이 돼 버렸다. 이 위원장이 선거운동 마지막 날 '올인'하는 등 힘을 쏟았던 인천과 경합지로 분류된 충청 일부 지역은 '이재명 등판 효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내 여론은 분분하다. 지방선거 후 그에 대한 평가 및 다음 발걸음, 특히 당대표 출마 여부를 두고 분란의 기운마저 보인다. 당장 이원욱 의원은 "이재명 친구. 상처뿐인 영광! 축하합니다"라며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을 야유하는 글을 올렸다.
한 초선 의원은 "이젠 (대선 이후 하지 못했던) 이 위원장에 대한 평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 위원장이 신이 아닌 이상 평가를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라며 "이 위원장 측 사람들도 대선 직후엔 당대표에 무조건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왔다갔다 할 거다. 이 위원장의 당대표 도전을 비판하는 의원들도 꽤 있다"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 중진 의원은 "큰 선거에 대한 책임은 지도부가 지는 것"이라며 "선거를 계획하고 전략을 짜는 건 지도부다. 이 위원장은 어쨌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총괄선대위원장이라고 하더라도) 직접 지방선거 전략을 짠 게 아니잖나. 책임은 지도부가 지는 것이고 이 위원장에겐 득실이 있었는지 여부를 따지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 캠프 인사는 "지방선거 패배의 책임을 이 위원장이 전적으로 지고 거기에 맞춰 당대표 출마 등 행보를 고려해야 한다는 건 맞지 않다"라며 "처음부터 어려운 선거였고 어떻게 보면 다 무너져 가는 더불어민주당이었는데 이 위원장이 등판하며 그나마 선거 후반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나"라고 주장했다.
말 아낀 이재명 "따가운 질책 엄중히"... 박지원 "당이 살고 자기가 죽어야 감동"
이재명 위원장은 말을 아꼈다. 출구조사 발표 직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상황실을 빠져 나간 그는 국회의원 보궐선거 승리가 확정된 후 인천 계양을 캠프에서 "국민의 따가운 질책과 엄중한 경고를 낮은 자세로 겸허하게 잘 받들겠다"라고 말했다.
이어 "인천 계양을 지역구민이 바라는 대로 성실하게 역량을 발휘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최대한 잘 해내겠다"라며 "많이 부족했다. 좀 더 혁신하고 또 새로운 모습으로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 측 핵심관계자는 "이 위원장의 다음 발걸음에 관해선 지방선거 결과뿐 아니라 향후 정국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당이 위기인 만큼 당내 의견을 잘 수렴하고 국민들의 요구 또한 어디로 향해 있는지 면밀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1일 출구조사가 나온 후 페이스북에 이 후보를 겨냥한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전 원장은 "(지방선거 패배에 대한) 이 책임을 누가 질까"라며 "자기는 살고 당은 죽는다는 말이 당내에 유행한다더니 국민의 판단은 항상 정확하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세계적 항공사 JAL(일본항공)이 방만한 경영으로 상장폐지됐다가 3년 간 피나는 구조조정 후 다시 상장하며 당시 회장이 '망하니까 보이더라'라고 말했다"라며 "당이 살고 자기가 죽어야 국민이 감동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