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4년 전의 5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오히려 원외 정당인 진보당이 울산동구청장을 배출하고 광역·기초 의회 선거에서도 20명이 당선되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녹색당과 기본소득당, 노동당의 성적표는 형편없었다. 소수정당이 살아남는 길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지난 5월 24일 부산시청을 찾았다. 시청 앞에서는 진보 4당(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의 정책 협약식이 열리는 모습을 보였다.
원래는 부산지하철 노동자 대회를 취재하려는 계획이었지만, 기록 차원에서 진보4당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 도중 "우리도 뉴스에 나오나 보다"라는 말이 들렸다. 주변을 살펴보니 기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취재를 여러 차례 했다. 그때마다 소수정당도 나름 꽤 취재를 했다. 그 이유는 기성 언론은 그들을 취재하지도 뉴스로 다루지도 않기 때문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구성한 2022 지방선거보도감시단 조사를 보면 소수정당 후보만 다룬 보도는 3건 (1%)에 불과했다. 실제로 소수정당이 아무리 보도자료를 뿌려도 현장에 가보면 기성 언론은 거의 오지 않는다.
언론 보도가 없으니 사람들이 소수정당이 있는지도 모르고 투표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수정당이 언론의 불균형과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늘 초라한 성적표를 받을까?
시민들은 왜 소수정당에 투표하지 않는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비례대표 투표에 고심했다는 유권자를 많이 만났다. 국민의힘이나 민주당 모두가 싫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소수정당에 투표했다는 사람도 있고, 아는 정당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거대 양당에 또다시 표를 줬다고 한다.
보수나 진보나 중도 성향의 유권자 모두가 거대 양당 체제에 반감을 갖고 있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얘길 한다. 정의당, 진보당, 녹색당, 기본소득당, 노동당이라는 소수정당이 있지만, 뭔가 과격해 보여 선뜻 표를 주기가 애매하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특히, 중앙당의 명령(?)과 정책, 방향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모습은 기존 정치 체제의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를 사로잡기에는 부족했다.
소수정당에 표를 주지 않는 유권자에게 2018년 지방선거에서 녹색당 고은영 후보가 보여준 모습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녹색당 고은영 후보는 원희룡, 문대림 후보에 이어 3위를 차지했고, 녹색당은 4.87%를 득표했다. 비록 의석할당 조건인 5%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유의미한 성과였다.
녹색당이 약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제주 도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개발에 대한 반감과 자연을 지켜야겠다는 의지가 결합했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에서 활동해온 녹색당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이번 제8회 지방선거에서 제주녹색당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만약 고은영이라는 인물이 제주에서 꾸준히 활동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그녀는 다른 정치인처럼 '중앙'에 올라갔고, 녹색당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은 줄어들었다.
지역정당이 필요한 시점... 그러나 현행 정당법으로는 불가능
지역을 돌아다니며 취재할 때마다 '사람은 좋지만 정당 때문에 투표를 하기 싫다'는 말을 듣는다. 특히 지역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에서 거대 양당보다는 '지역정당'이 꼭 필요해 보였다.
지역 주민을 위해 활동하는 '지역정당'은 다른 나라에서는 보편화된 정당의 형태이다. 오히려 유권자에게 '지역정당'은 거대 양당만을 선택할 수 있는 불합리한 정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지역정당' 설립은 불가능하다. 현행 정당법은 반드시 중앙당은 수도 서울에 있어야 하고, 5개 이상의 시·도당으로 구성해야 한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27년이 넘었는데도 지역정당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정치 구조가 얼마나 편협했는지를 보여준다.
시민단체 등에서 수차례 지역정당 설립을 위한 정당법 개정안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거대 양당은 묵묵부답이다.
투표를 독려하고 정치를 외면하지 말라는 훈계도 필요하지만, 유권자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정치 시스템도 만들어져야 한다.